변방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습

나는 연습하는가?

by 사공사칠

어떠한 변화는 변방에서 일어난다. 실은 많은 혁신은 변방에서 일어났다. 메이지 유신은 막부라는 중앙에서 떨어진 해변가의 웅번들이 이끌었다. 바흐는 평생 독일 시골 교회의 음악 감독이었다. 변방은 중앙이 보지 못하는 것을 연습할 수 있는 가장자리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좋다. 유행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서양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각주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철학사의 주요 인물이다. 진짜는 저 어딘가에 있다고 주장한 스승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땅에 진리가 있다고 주장한 현실론자였다. 스승을 뒤엎는 파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변방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기 때문 아닐까? 그의 입장을 상상해본다.


스승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중심 국가인 아테네 시민이었다. 그는 귀족이자 철인이었다. 지적인 엘리트이자 팔레스트라라는 레슬링 수련장에서 육체도 갈고 닦은 상남자였다. 노동을 하지 않아 사유할 여유가 있었던 자유민이었다. 중앙인인 그에게는 현실 세계가 만족을 주지 못했는지 최선의 세계, 이데아를 꿈꿨다.


이에 반해 그리스 북부 변방 마케도니아에서 온 외국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앙에 사는 플라톤과 다른 창의를 펼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땅에 집중했다. 최선의 꽃은 이미 꽃 안에 있다. 최선의 사람은 이미 사람 안에 있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이상 세계의 그림자라 믿어 현실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 스승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해답을 일상에서 만난 사물과 사건에서 찾았다.


변방의 철학자가 일상에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강조한 것은 연습(praxis)이었다. 사물을 깊이 바라봐(theoria) 얻은 통찰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들고 표현(poiesis) 하기 위해서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연습이다. 연습은 말로 엮은 진심이 아닌 몸으로 빚는 정성이다.


변방의 철학자가 강조한 연습은 한두 번 맛보기 체험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두세 번의 위선은 더욱 아니다. 변방의 철학자는 습관이 곧 그 사람이라고 믿었다. 습관은 단순 반복이 지은 집이다. 연습이 쌓은 시간의 강이 습관이다. 한 사람의 습관은 곧 그 사람이다. 연습이 그다.


변방의 철학자는 왜 그토록 연습을 강조했을까 생각한다. 바쁜 중앙과 달리 변방에서는 고요 속에서 스스로 프로젝트를 일으켜야 한다. 자신이 할 일을 스스로 정한다. 목적을 품고 이를 이루기 위해 아무도 보지 않는 노력을 한다. 자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이다. 연습은 그의 프로젝트에 진정성을 더하는 도구다. 아무도 그가 연습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안다. 오늘의 나는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징검다리를 놓았는지. 혹은 연습을 게을리하다가 물에 빠졌는지.


보는 눈과 떠드는 입이 많은 중앙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변방에서의 연습이 더 중요하다. 오늘의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연습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