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의 고백

‘Arvo Part - Nunc dimittis’를 듣고

by 사공사칠

Q. 나는 무엇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가?


Now thou dost dismiss thy servant, O Lord, according to thy word in peace;
Because my eyes have seen thy salvation,
Which thou hast prepared before the face of all peoples:
A light to the revelation of the Gentiles, and the glory of thy people Israel.
(Nunc dimittis​ 영어 번역)


나는 무엇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람을 느낄 때 보람을 느낀다. 그들의 보람에 쉽게 물든다. 이들이 "나는 해내고 있다"는 표정을 지을 때 나도 그 표정에 물든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적성에 맞다. 요즈음 주로 하는 일은 음악 창작자의 과정을 들어주고 표현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고 완성하고 싶은 음악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돕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가장 큰 혜택은 내 몫이다. 나는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기왕이면 개성 넘치는 음악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들은 적 없는 음악을 듣고 싶고 그것의 거칠지만 단단한 태동을 함께 하고 싶으므로 이 일은 나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음악 창작자들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품고 그것을 이뤄가는 과정이 늘 즐거울 수는 없고 이를 지켜보는 나 또한 괴롭다. 보람과 도파민은 동의어가 아니다. 잠시 보람을 맛보기 위해 이들은 나약하고 우울한 자신과 마주한다. 가장 후진 나와 만나는 이 시간은 괴롭다. 프로젝트를 완주했다고 괴로움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앨범을 내면 늘 아쉽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아쉬움만 범벅이다. 요즘처럼 음원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이 음악이 가져다줄 외부적 성과를 바라기란 더 어렵다. 제작에 들어간 비용 회수를 기대하는 건 더욱 사치다.



요즈음 좋아하는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art)의 곡들을 얀에이크 툴베(Jaan Eik Tulve)가 지휘하고 복스 클라만티스(Vox Clamantis) 합창단이 부른 앨범 [And I heard a voice]에 빠져 산다. 특히 첫 곡 ‘Nunc Dimittis’는 악보를 필사하고 연주하며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 곡은 성서 누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아기 예수를 만난 시몬의 고백을 가사 삼은 곡이다.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 아래 자기 민족과 다른 민족을 고통에서 구할 존재를 평생 기다려온 시몬은 구원자를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믿음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의 양심은 이 아기가 희망이라고 말한다. 환희에 찬 시몬의 고백을 합창단의 모든 목소리가 고음을 향해 달리며 표현한다.


그러나 이 곡의 묘미는 시몬이 고백한 영광의 순간이 아니라 해소되지 않은 마무리에 있다. 강한 믿음과 진실을 담은 아멘을 소프라노가 반복한다. 이 고백은 테너에 의해 메아리처럼 반복되는데 둘이 함께 머무는 순간마다 반음씩 어긋난다. 강한 아멘 뒤에 숨은 그림자다. 믿음은 언제나 확신과 의심의 뒤섞임이다. 희망과 절망도 한 패다. 이 곡에서 시몬은 예수에게서 희망을 본 동시에 그와 민족이 겪을 절망까지 함께 봤나 보다. 두 음 사이 자리한 불협은 해소되지 않은 채 곡이 끝난다. 곡이 서서히 잠잠해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구원자를 간절하게 기다린 시몬을 찾아 온 예수는 희망일까 절망일까?


아기의 탄생이라는 희망과 십자가 처형이라는 절망이 뒤섞였음에도 시몬의 고백이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찰나의 보람을 느끼기 위해 평생을 바쳐 기다렸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보람을 느끼기 위해 지리하고 추한 시간을 버티는 음악 창작자와 자신과 이웃을 구할 구원자를 기다린 시몬의 마음은 같다. 기다리는 시간이 보람을 꽃피운다. 설령 그 꽃이 더 큰 절망으로 향하는 관문일지라도 꽃을 상상한 자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꽃이 피어나길 감히 상상한 댓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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