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의 음악가
현대 문화를 연 니체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 사랑한다.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피가 곧 넋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책을 뒤적거리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피로 쓴 글만 진리다. 어디서 보고 들은 말을 옮긴 글은 거짓이다. 그런 글에는 생명이 없다. 오직 죽은 단어들만 산송장처럼 늘어서서 서로를 주장할 뿐이다. 그 글은 누군가의 감동이 될 수 없다. 읽는 사람을 속일 순 있어도 변화시킬 수 없다.
별일 없이 격투 시합에 나가 '링 위의 음악가'를 계속 쓸 줄 안 내게 올해는 피로 물든 해였다. 링 위에서 흘린 피는 삶의 피보다 진하지 않았다. 링 위보다 처절한 아픔이 연이어 찾아왔다. 언젠가 이 일들에 관해 깊이 묵상하는 글을 쓰겠다.
하지만 내가 하루를 견딜 수 있었던 힘 또한 링 위에서 흘린 피로부터 나왔다. 나는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아무리 치고받아도 언젠가 라운드는 끝난다. 가끔 연장전이 있거나 기절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끝은 난다. 두들겨 맞아도 버티면 된다. 쓰러질지언정 기권은 하지 않겠다. 링 위에 서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스스로 배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력한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나 나는 믿지 않는다. 가끔은 노력도 배신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노력이 내 편이기를 하염없이 바라기보다 내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게 더욱 쉽다. 포기하지 않으면 나는 노력을 배신한 적 없게 된다. 지더라도 떳떳하게 질 수 있다. 울더라도 떳떳하게 울 수 있다. 그때 흘린 피, 이것을 손가락에 찍어 쓴 글만 진리다.
나는 청년 음악인의 창작을 돕는 기획자다. 큰 프로젝트가 끝나고 어느 날, 밀린 잠을 자며 꿈결에 잠꼬대했다. 유독 자기 음악에 대한 기대가 큰 참여자가 있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타인에 대한 기대와 무례
도 컸다. 그가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며 떼를 쓰고 불평했다. 꿈속의 그에게 난 답했다.
"좋은 음악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악입니다. 자기를 관찰한 음악을 만들다 보면 타인에게도 그가 만들고 싶은 음악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를 나처럼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좋은 사람이 됩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이 모든 여정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입니다."
좋은 음악은 피로 쓴 음악이다. 피로 흘린 나만의 경험에서 길어 온 음악이다. 피로 쓸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피도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나만큼 진한 피가 흐름을 받아들이고 응원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링 위의 음악가는 격투에서 음악을 배운다. 피를 흘리며 배운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엿본다. 음표와 쉼표는 사실 흑과 백이 아니다. 적색과 적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