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은 나를 위해

링 위의 음악가

by 사공사칠

질문: 나는 나를 개간하는가?


며칠 전 수련이 끝나고 기분이 울적했다. 시합을 위한 감량 중이라 배도 고프고 기운이 없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바로 와서 한숨 돌릴 여유도 없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나? 한 해도 저물고 내 삶도 하릴 없이 흐르고. 이런저런 생각이 열심을 다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트를 치고 체력 운동을 했지만 열심 내지 않고 딱 적당할 정도만 했다. 이 즈음 하면 되었지 뭐.


수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참 울적했다. 잠시 의자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석연치 않음이 올라왔다. 이 기분은 도대체 무엇인가? 올라오는 기분을 느끼는 와중에 깨달았다. 나는 열심을 내지 않았고 열심은 나를 위해 내는 마음이다. 열심은 나라는 땅을 갈아엎기 위해 필요한 쟁기다.


열심은 뜨거운 마음이다. 용암보다 뜨겁다. 뜨거운 열은 얼어붙은 마음을 완전히 녹인다. 어제까지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같은 마음을 먹었지만 열심을 내는 오늘 하루는 우주에 존재한 적 없던 시간이다. 습관이, 관성이, 선입견과 무사 안일이 녹는다. 나만 옳다고 믿는 얕은 자의식도 녹는다. 타인을 향한 질투와 시기도 녹는다. 열심은 변화하길 거부하는 모든 것을 녹인다.


나를 녹이지 못하는 예술은 남의 영혼을 녹일 수 없다. 스스로 감동하지 않은 음악은 듣는 사람의 환희가 될 수 없다. 내 혀를 기쁘게 하지 않은 음식을 내온들 남의 혀가 기뻐할 리 없다. 여러 미사여구를 곁들여 감동스러운 척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나를 감동시키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 또한 열심이다.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열심이 아닌 나를 녹이기 위한 마음이다. 열심을 다한 음악은 지금까지 내가 아는 소리들이 쌓은 모래성을 허문다. 이제껏 믿어온 창작의 공식은 무너진다. 모든 이론은 열심 앞에서 오늘은 더 이상 맞지 않는 가설이 되어 사라진다. 음표라 믿은 소리가 쉼표가 된다. 쉼표는 사실 음표였다. 열심을 내기 전에는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지식들이 모두 녹아서 변한다. 아는 바가 흐르기 시작하고 뒤섞여 만드는 나도 변한다. 그렇게 감동한다.


열심히 합시다! 열심은 나를 위해. 온전히 새로워질 나를 위해 갈고 닦는 쟁기다. 이번 수련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싶다. 열심이 나를 녹여버릴 만큼. 딱 그만큼만 열심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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