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을 읽고
어릴 적부터 나는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손을 들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 침묵 속에서 눈총받기 일쑤였다. 질문은 적막을 뚫고 나온 송곳이자 궤도를 이탈한 별똥별이었다. 학창 시절이 무르익을수록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아 질문을 줄여갔다. 적막 속에 몸을 숨기고 싶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해 2학기를 맞이했다. 동양 철학의 대가인 한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또렷한 눈을 한 채 선언했다. 질문은 살아있는 생각이고 정답은 죽은 생각이다. 음악한다는 핑계로 여느 날처럼 술에 절어 1학년의 가을을 맞은 내 귀에 낙엽이 떨어졌다. 말이 울렸다. 옳다! 질문이 답이다. 질문은 재미있다. 질문은 의미 있다. 죽어 가던 야성이 겨울잠에서 일어났다.
생의 마지막을 앞둔 파블로 네루다. 그는 80년 가까운 인생 여정을 정답이 아닌 질문으로 마무리했다. 시인이자 외교관으로서 남미 곳곳을 돌아본 작가가 도착한 곳은 정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답 없는 물음이었다. 노인은 다시 아이로 돌아왔다.
'왜 거대한 비행기들은 / 자기네 아이들과 함께 날아다니지 않지?’로 열린 문은 ‘땅 밑에서 정해진 / 장미의 약속은 언제인가?’로 마무리된다. 열린 채로 시작한 채 열린 채로 끝난다. 열린 대문을 통해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대화를 마치고 나갈 때도 문을 닫지 않은 기분이다. 학생인 나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문을 닫고자 했다. 그러자 선생은 “문을 열고 나가시오!”라고 소리쳤다. 다음 사람이, 그리고 다음 세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배려하고자 했다.
질문은 친절하지 않다. 정답은 친절하다. 이것을 이해하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질문은 친절하지 않다. 이것을 이해하면 더 모르게 된다고 속삭인다. 너의 질문이 너를 더 큰 미궁으로 밀어 넣으리라 말한다. 질문할수록 모른다. 모르니까 또 질문한다. 그래서 질문하는 사람은 부지런하다. 생각의 문을 닫을 새가 없다. 질문의 불친절이 질문하는 사람의 게으름을 꾸짖는다.
질문은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알고자 노력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이다. 그는 미궁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다. 영원히 그곳에 갇혀 굶어 죽을까 봐 두렵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미궁을 즐길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는 곧 펼쳐질 탐험에 설렌다. 보물찾기처럼 숨겨진 이야기는 그의 유일하지만 강한 동료다. 용기 있는 자가 아름다움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