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분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을 읽고

by 사공사칠

요즈음 하루가 사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시간은 똑같은 겨울이 지나 봄을 향하고 있었다. 한 해가 다시 지날 것이고 나는 기대감이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 ‘펄롱’도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열심히 일하는 아일랜드인 가장은 희망이 없었다. 절망도 없었다. 모든 것이 의미를 잃고 반복되었다.


그러던 펄롱은 하필이면 학대가 일어나고 있는 수녀원에 배달을 가 불행한 소녀를 만난다. 그는 그녀를 외면한다. 못된 수녀원장이 그가 떠난 후 소녀를 어떻게 잡도리할지 알지만 외면한다. 그러나 며칠 동안 소녀의 불행이 펄롱의 일상에 침투한다. 그는 연민한다. 하지만 일상 안에서 연민은 사치다. 힘든 처지에 놓인 수녀원 아이들에 관해 잠깐이나마 이야기하면 그의 부인은 “그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진다. 아무 상관이 없지.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든데. 진짜 아무 상관 없을까? 그녀는 내가 아닐까? 그녀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아닐까?


고뇌의 끝을 쫓으니 어느새 펄롱은 소녀의 손을 붙잡고 몰래 수녀원을 탈출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직 집에 소녀를 데려가지 못했고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뻔하다. 새벽 길을 걷다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은 그와 인사하기 위해 손을 들다가 소녀의 맨발을 보고 펄롱을 지나친다.


그래도 펄롱은…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대가를 치를 테지만. 호의, 친절, compassion, 이런 단어들은 늘 가혹한 대가를 매긴다. 벌을 받는 사람은 괴롭고, 상처받고, 가난해진다. 그래도 벌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머릿속을 맴돌아 평생의 씁쓸함으로 남기보다는 이 편이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