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기록4
우리는 종종 우리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시선으로 보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동일한 세계를 살아가지 않는다. 스스로를 얼마나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세계가 함유한 가능성의 양이 바뀐다 할까.
어떤 사람의 세계는 가능성이 충만하고 어떤 사람의 세계는 그저 그런 모습으로 유지되거나 점점 작아진다. 아마 후자의 상태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성 충만한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즉, ‘나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올바른 답이란 무엇일까.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는 ‘영생’이란 단순히 죽지 않고 사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이 인간의 삶이 지닌 정확한 한계를 그린다면 영생은 가능성이 충만한 상태다.
즉,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어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어진 세계를 충만하게 누릴 줄 아는, 확장할 줄 아는 삶을 회복시키시겠다는 거다. 굳이 이렇게까지 애쓰는 이유는 하나, ‘이처럼 사랑하사’이고.
우리가 좋은 강연이나 좋은 관계, 좋은 시간을 줄 어떤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사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무엇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풀이를 찾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의 선택에 의해 답이 결정되는 거라면, 나는 보잘 것 없는 나의 존재를 생명을 다해 사랑한다는 신, 하나님의 답을 취하기로 했다. 나와 나의 세계의 가치에 대한 물음에 ‘사랑’만큼 멋진 해답이 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