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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Mar 30. 2020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세계를 다루고 조명하는 방식

“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거에요”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공식 홈페이지1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사회의 기본적인 틀에서 자의로 혹은 타의로 탈락된 사람들을 다루더니, 이번에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바랄 만한 자녀들의 미래, 엘리트 계층이라 불리는 의사들이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설정상 제일 좋은 대학의 의예과까지 나온, 어쩌면 ‘슬기로운’에 가장 적합할지 모를 이들이 사는 세계를 조명하는 방식은 여전히 동일하다는 점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연출 신원호, 작가 이우정)은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지만, 우리들의 시선에서는 당연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지닌 의사들의 세계를 다룬다. 어떤 의사는 연봉 두 배를 제안해도 모친과 좀 더 놀고 싶다며 일을 거부하며, 또 어떤 의사는 사정이 어려운 환자의 수술비를 지원받기 위해 제 일인 것마냥 신경 쓰고, 또 어떤 의사는 알고보니 재단 이사장의 막내 아들이면서 병원을 이어받을 욕심보다 후원 자금을 마련할 욕심을 더 부린다.


의사들 뿐 아니다. 재단 이사장의 아내는 남편이 죽기 전까지 머무른 VIP실의 고액의 입원비를 어떤 차감도 없이 지불했으며 여기에 자녀들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는다, 아니 받지 못했다고 하는 게 옳겠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하나같이 종교계에 입문했으니까. 그리고 유일하게 ‘휴먼’이라는 의사인 막내 아들에게 남편의 자리를 이어 받으란 강요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안달복달한다 할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담아내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 선에 부합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어쩐지 우리들은 낯설고 어색하다. 개인의 이익을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권력다툼과 사내정치라 불리는 행동들을 거리낌없이 하는 이들이 더 낯익고 익숙하여, 왠지 모르게 어디 환상동화나 전설에나 존재할 법한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공식 홈페이지2


"생긴 게 뚱해서 남들은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오해들 하는데, 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거에요”

그리하여 첫 방송을 시청하던 우리들은 스스로 당연하다고 평범하다고 여기던 수많은 예상이 빗나가는 걸 목격하며, 우리의 시선이야말로 당연하지 않은 욕망에 찌들어 있었단 사실을 깨닫는다. 대표적 예가 배우 김갑수가 연기하는 인물, ‘주종수’다. 저치는 분명 재단의 새로운 이사장이 되고자 하는 야욕을 가졌다 확신했다. 하지만 후에 극 중 대사를 통해 그냥 표정이 그런 거라고, 실은 별 생각이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무언가 낯부끄러운 느낌마저 든다.


편견과 선입견 어린 시선을 뒤엎는 것, ‘슬기로운’ 사단이 세계를 다루고 조명하는 방식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앞길 창창한 야구선수가 예기치 못한 불행을 맞닥뜨리며 범죄자들과 한 공간을 쓰게 된다. 우리는 우리와 동일한 입장이었던, 감옥에 갇힐 이유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어야 했을 이 사람의 눈을 통해 평소 접할 일 없고 접하지도 말아야 할 범죄자, 사회의 낙오자라 낙인 찍힌 이들의 면면을 마주하며, 실은 그들이 우리와 별다른 존재가 아님을 새삼 상기한다.


그들이나 우리나, 내면에 어느 정도의 선과 악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나 우리나 선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해줄 리 없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했다. 어쩌면 약간의 운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순간의 선택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 오히려 어느 면에서 감옥 밖에 있으나 위선적인 우리들보다 감옥 안에 있으나 위선적이지 않은 그들이 나아 보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드라마적 판타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만, 편견이나 선입견을 거두고 그들이나 우리나 한끗 차이임을 인식한다는 것은 덜 위선적인 시야를 지닌 인간이 되기 위해 너무도 중요한 작업이다. 위선, 욕망에 찌든 세계를 비난하며 자신은 그렇지 않은 체 하지만, 정작 본인이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상태. 정작 바라보고 추구해야 할 진실은 왜곡하거나 존재할 수 없다고 여기는 위선적인 이들, 혹은 우리들을 위해 또 한 번의 시선의 전복(顚覆)을 꾀하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반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리라.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공식 홈페이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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