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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Apr 01. 2020

'오수아'에서 '조이서'로:여성 캐릭터의 변화

천성이 느린 여자는 글을 씁니다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공식홈페이지1


JTBC ‘이태원 클라쓰’(연출 김성윤, 강민구 극본 광진)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박새로이(박서준)를 사이에 둔 두 여성, 조이서(김다미)와 오수아(권나라)의 각기 다른 사랑법이 드러난 대화 장면인데, 이는 오늘의 대중이 드라마에 요구하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이 과거와 비교하여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난한 남자 싫다고 했는데 부자가 되겠다 하더라고, 장가 부수고 백수 만들어 주겠대. 내가 더는 힘들지 않게 말이야.” ‘이태원 클라쓰’에서 새로이의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사랑의 주인, 수아가 평정심을 잃었다. 눈 앞의 이서는 더 이상 예전의 당돌한 상큼이, 애송이가 아니었다. 새로이의 회사 IC가 4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한 것처럼 이서 또한 어느새 자신을 긴장시킬 만한 매력적인 여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굳건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새로이와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음이 감지되자, 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내면 깊숙한 곳에서 그 자리를 넓혀 온 두려움을 내비치고 말았다. 즉, 새로이가 얼마나 자신을 좋아하는지 과시한 것인데 여기서 이서에게 ‘혐오스럽다’라는 말을 들을 줄은, 그렇게 허를 찔릴 줄은 상상도 못했으리라.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공식홈페이지2


“나는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요? 부자? 내가 만들어 줄게, 대표님 힘들게 하는 장가? 내가 부숴줄게”

이서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수아는 새로이의 모든 사정과 자신을 향한 마음을 알면서도, 이 두 가지가 응축된 백수 만들어주겠다는 청혼 아닌 청혼까지 받았으면서도 그의 원수 아래에서 일을 했고 그러한 미안함을 핑계로 제대로 마음 한 번 받아준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랐기에 새로이를 놓을 수도 없었다.


이서는 달랐다. 새로이를 향한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생기자 바로 그 마음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그의 꿈을 이루는 데 쏟아부었다. 언뜻 새로이를 위해 그녀 자신을 희생한 듯 비추어지지만 알다시피 소시오패스인 그녀는 누굴 위해 희생할 캐릭터가 아니다. 즉, 새로이라는 뚜렷한 목표와 언젠가  그의 마음을 얻고 말겠다는 이서만의 자신만만한 확신이 앞날을 위한 희생이 아닌, 계획적인 투자를 하게 만든 것. 이게 바로 조이서의 사랑법으로, 자기중심적인 오수아의 사랑법이 혐오스러울 수밖에.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공식홈페이지3


실은 드라마에서 로맨스의 중심에 놓인 여성 캐릭터로서 이서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해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미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 남자의 마음을 도로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삼겠다는 거니, 고작 몇년 전만 하더라도 주인공과 적대관계에 위치한 악녀로 시청자들에게 온갖 미움 다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드라마에서 악녀란 호칭은 제 욕심 다 부리는 여성에게 붙곤 했으니까. 혐오스럽다는 말은 이서가 들었을지도 모른단 소리다.


하지만 오늘의 대중은 낯설 지언정 앞뒤 재지 않는 이서의 말과 행동에 통쾌함을 느끼며, 수아가 아닌 그녀에게 몰입하여 드라마를 즐기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 설사 그렇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절망하거나 주어진 현실을 원망하며 포기하기보다 플랜B를 읊조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이서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서글픈 눈빛을 한 채 바라기만 하는 수아보다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에 적합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10년 동안 한 여자만 바라봐온 남자의 마음이 변한 것에서 오는 배신감보다, 마음을 빼앗아 남자의 사랑의 새로운 주인이 된 대상에게 가지는 얄미움보다, 힘 없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여성의 모습에 더욱 큰 분노를 느낀다. 주어진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체적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조이서가 오수아에게 건넨 대사, ’진짜 혐오스럽다’가 당신에게 불쾌감보다 통쾌함을 안겼던 이유다.


by. 윤지혜


JTBC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공식홈페이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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