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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Apr 04. 2020

'하이에나' 정금자가 이끌어낸 변호사로서의 '야성'

천성이 느린 여자는 글을 씁니다

SBS 드라마 '하이에나' 공식 홈페이지1


SBS ‘하이에나’(연출 장태유, 극본 김루리)의 변호사들이 일하는 방식은 언뜻 정의롭지 않다. 그들의 목적은 맡은 사건의 변호를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인 까닭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소 혹은 수익성 높은 합의를 이끌어낸다. 변호사도 생계를 위한 하나의 직업이니까, 게다가 거대 로펌에 소속되어 있기까지 하니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까진 팔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 ‘하이에나’다.


‘하이에나’, 배를 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않고 뼈째 먹어치운다. 정은영이기도 하고 김희선이기도 한, 변호사 ‘정금자'(김혜수)의 방식이다. 수임료 높은 데다 유명세 탈 수 있는 사건을 맡기 위해 재벌가 자녀들의 사적인 파티에서 체면도 불사하고 음주가무를 선보이며,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 변호사를 유혹해 정보를 빼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결국 로펌계의 거인 송&김의 눈에 띠어 파트너 변호사의 자리마저 차지하고 만 그녀는, 최상급의 하이에나다.


흥미로운 건 그렇다고 또 권력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스타일도 아니다. 무리를 짓는 하이에나의 습성과 달리 어디에 쉽게 섞이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 쓰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치로 최대의 가능성을 획득하며 본인의 좌표를 높일 뿐이니, 돈만 밝히는 속물 변호사라 손가락질 당할지라도, 아닌 척 고상한 척 다 하면서 뒤에선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제 배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위선적인 변호사들보다야 훨씬 낫다.


SBS 드라마 '하이에나' 공식 홈페이지2


“누가 그래? 내 방식이 그딴 재미없는 엔딩이라고”

그래서 정금자의 존재와 등장은 송&김의 변호사들에게 다소 꺼림칙하다. 알아주는 배경을 가진 것도 아니고 동문 출신도 아닌 듣보잡(잘 알려지지 않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에다 건달들을 주로 맡았던 뒷골목 전문 변호사가 콧대 높은 송&김의 파트너 변호사라니. 하지만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정금자가 이런 시선에 기 죽을 일 없고 고개 빳빳이 세운 변호사들의 공간을 제 방식대로 휘젓고 다닌다.


앉아서 쾌적하게 업무 보는 게 익숙한 이들을 현장으로 내몰아 발에 땀 차는 느낌을 겪게 만드는가 하면, 한 번도 내뱉어보지 못했을 과격한 말투로 의뢰인의 진짜 속내를 이끌어내 보게끔 한다. 이 과정에서 정금자와 함께 일하는 송&김의 변호사들이 무엇을 깨닫냐면,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과 직접적인 부딪힘 혹은 현장에서 얻은 정보만큼 승산 있는 게 없다는 것. 그리고 변호사답지 못하다 여기며 얕봐 왔던 정금자가 자신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태도를 취하며 의뢰인과 사건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


SBS 드라마 '하이에나' 공식 홈페이지3


즉, 정금자의 방식의 중심엔,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다만,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존재했다. 그러니 아무 사건이나 맡고 정의 따위 신경쓰지 않는 거 같다가도 혹 자신에게 공격당하는 쪽이 더 억울한 약자일 경우 승리는 거두되, 그러니까 얻을 수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되 해당 약자 또한 당하게만 두지 않는다. 남몰래 에프터서비스까지 제공하며 주어진 조건에서 억울함이 덜 남는 방향으로 현실적인 조치를 취해주는 것이다. 매순간 사건 전체를 통찰하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하겠다.


그리하여 정금자가 합류한 송&김엔 활기가 돌기 시작하고, 그녀를 바라보는 변호사들의 눈빛도 달라진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정금자가 서초동 도련님 윤희재(주지훈)를 앞세운 곱게 자란 송&김 샌님들에게서, 그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었으나 알지 못했던 변호사로서의 ‘야성’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는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만은 팔지 않을 때 비로소 발견되고 발달되는 것으로, 상처를 받고 무리에서 버림받아 하이에나처럼 살았을 뿐 실은 금수 중의 금수, 호랑이였기에 가능한, 정금자의 영향력이다. 동시에 초반의 싱거운 반응을 받은 ‘하이에나’가 회를 거듭할수록 사랑받는 이유다.


by. 윤지혜


SBS 드라마 '하이에나' 공식 홈페이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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