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이 거기 가서 새 삶을 시작하는 거야"
세계는 이미 충분히 지옥이고,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친구들이 위험한 모험에 나선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불법 도박장을 터는 것. 법 밖에 있는 세상이 더 무서운 거라는 이치를 알 길 없는, 아직은 자신의 주머니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 소중한, 세상 때 잔뜩 묻은 얼굴을 하고선 누구보다 때 묻지 않은 마음을 지닌 청년들의 이야기다.
감독 윤성현의 영화 ‘사냥의 시간’은 경제는 침체되고 환율은 폭락하여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유죄가 되는 근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황폐화된 서울의 풍경과 남루한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 뒷골목은 불법으로 가득하고 드러난 길가엔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 중이다.
이 잿빛 세계의 한가운데, 준석(이제훈)과 기훈(최우식), 장호(안재홍), 상수(박정민) 등의 젊음이 살아남기 위해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근데 우리 준석이 없는 3년 동안에 아무 짓도 안하고 나름 성실하게 살았어. 그래가지고 우리 인생 뭐가 달라졌어.”
감옥에서 갓 출소한 준석이를 비롯하여 각각 크고 작은 전과가 있는 이들에겐 성실할 수 있는 기회도, 성실하게 무언가 이루어낼 기회도 없다. 모아놓은 돈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려 이대로 가다 ‘영원히 밑바닥 인생’을 벗어날 수 없을 게 분명한 이들은, 불법 도박장을 털어 대만에 가서 새로 시작하자는 준석의 ‘꿈’이자 ‘미친짓’을 고민 끝에 받아들인다.
‘미친짓’은 젊은 패기 덕분인지 생각보다 순조롭게 성공하고, 이들은 곧 눈앞에 둘 에메랄드빛 바다를 상상하며 단꿈에 젖는다.
하지만 법 밖의 세상이 선사할 진짜 위험, 즉 ‘사냥의 시간’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걸 누가 알았을까. 때 묻은 손으로 움켜쥔 때 묻지 않은 꿈이 빌미가 되어, 자신들을 사냥감으로 전락시키고 끊임없이 달아날 운명에 처하게 만들 거란 사실을 감히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 그 꿈 절대 버리고 싶지 않다. 나 이번에 진짜 성공시킬 자신 있어. 우리 셋이 거기 가서 새 삶을 시작하는 거야.”
사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영화의 세계는 꿈이 살해될 때까지 핏빛으로 가득하여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네 개의 젊음이 지니는 절박함과 절망감을 극대화시킨다. 여기서 이들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증명되는데 죽음의 코 앞까지 내몰린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하고 챙기고 보호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두려움도 침범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연대감(옷을 나눠 입고 진 빚은 반드시 갚으며 함께 꿈을 꾸는)에서 비롯된 장면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이 스토리상 많은 아쉬움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으로 담은 건 한국의 젊음이들’이라는 감독 윤성현의 진심만큼은 인정되는 까닭이다. 작품을 보고 나면, 네 명의 인물들을 사냥감이 되는 극한 상황으로 내모는 가운데서도, 이들이 상징하고 있는 젊음과 청년을 향한 감독 특유의 각별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져 우리도 모르게 그들이 살아남길 응원하게 된다 할까. 물론 해당 배우들의 매력도 한 몫한 결과일 테지만.
열심히, 성실히 살아보았자 대가가 돌아오지 않으며 법이 눈을 반쯤 감고 있어 약자가 강자에 의해 약탈당하고 사냥 당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세계, ‘사냥의 시간’에서 ‘지옥’으로 표현되고 잿빛 혹은 핏빛으로 그려지는 세계다.
여기서 청년들의 때 묻지 않은 꿈은 때 묻은 손으로밖에 이루지 못하여, 결국 살해당할 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다. 어쩌면 좀 더 극화된 것일 뿐 오늘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냥의 시간’ 속에 담긴 네 개의 젊음이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자꾸 되새겨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