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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Jan 12. 2021

절대악의 탄생기, '조커'

그가 계속 고담시의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면


영화 '조커' 스틸컷1


다크나이트 조커(히스 레저) 무르익은 절대악의 모습을 띤다. 스스로를 보아도 철저한 성악설의 신봉자일 밖에 없는 그는, 멀쩡한  선을 추구하는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악한 본성을 마음껏 드러낼 만한 상황을 만들어 그들의 본성에 외친다.

자,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어, 이게 네가 직면하는 세계이고 네 안에 일어나는 갈등이 너의 진짜 모습이야, 라고. 이쯤 되면 조커는 어떤 특정 빌런이 아닌, 악 그 자체, 악의 원형이라 하겠다.


영화 '다크나이트' 스틸컷1,2


‘다크나이트’의,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크나이트’ 속 ‘조커’의 프리퀄답게, 영화 ‘조커’는 조커(호아킨 피닉스)가 절대악으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담아낸다.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이 지극히 평범한 본명처럼 그는 낙후된 환경에서 병이 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광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언젠가 코미디언이 될 날을 꿈꾸는 보통의 사람이다. 특이점이 있다면 정신적 장애를 꽤 심각하게 앓고 있고 이를 돌보아야 할 고담시가 보조를 끊었다는 것 뿐.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바는, 한 시민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로서의 보조를 끊는 고담시의 모습이다. ‘다크나이트’가 인간의 내재된 악한 본성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조커’는 보통의 사람일 수 있었던 존재가 어떻게 스스로의 악함을 자각하여 범죄자가 되는지 좀 더 세밀한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조커' 스틸컷2


양극화가 극심한 고담시의 세계는 부요한 자와 빈곤한 자의 경계가 삼엄하게 느껴질 정도로 명확하다. 당연히 사회구조는 부요한 자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아서가 더 이상 고담시의 보조, 정신질환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 것도 그로부터 비롯된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의 반복은 빈곤한 자들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쌓기만 했지 풀 길 없던 분노와 설움은, 변할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언제까지나 불공평할 것 같기만 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뒤섞여 폭력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더 약자에게, 약자가 자신이 겪은 대로 또 다른 약자를 짓밟는 것이다. 가난한 테다 정신의 병까지 지닌 아서는 약자 중의 약자로, 순식간에 수없는 발길질과 농락을 당하는 대상으로 전락하지만 뚜렷한 반격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때까지의, 즉, 조커로 각성하기 이전의 아서는 도덕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민감하며 세계에 관한 인식도 미쳐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정확하다.


영화 '조커' 스틸컷3


그러니까, 자신의 본성 혹은 본래의 상태를 힘겹게 제어하며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미치지 않은 척 ‘해피’하게 살아가려 하는 아서에게, 정신을 치유할 상담의 시간마저 막아버린 고담시의 세계가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셈.


영화 ‘조커’에서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앞서 던진 화두인 보통의 사람들이 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동기와 연결된다. 무엇이 아서로 하여금 절대악이 되게 하고 고담시의 세계에 또아리를 틀게 했는가, 답은 부조리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저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으로 취약함을 겪고 있을 따름인 존재를 절대악으로 추앙받게 만들어 그를 하나의 명분이자 계기로 여기게 함으로써 보통의 사람들이 본연의 악함을 제어하지 못하고 범죄자가 되게 하는 비틀린 사회구조라는 것이다.


영화 '조커' 스틸컷4,5


이제 조커의 분장을 하고 악의 원형으로 거듭난 아서에게 유년 시절 겪은 학대의 기억은, 그로부터 얻은 정신 질환은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악을 일깨우고 발산하게 해주는, 매우 흡족한 동력이 될 뿐이다. 덕분에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명분을 얻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며 절대악의 위치에 올랐으니 아서의 불우한 유년기가 그를 조커로 만들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조커’는 고담시의 세계가 탄생시킨 절대악이다. 영화는 ‘조커’의 어느 한 부분도 미화시키지 않고 이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혹 그럼에도 미화된 것으로 느껴진다면, 어쩌면 슬프게도, 우리 또한 영화 속 고담시와 유사한 세계에서, 조커를 영웅으로 받드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조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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