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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Jun 30. 2018

나영석PD, '마이다스의 손'이자 '돈 키호테'

천성이 느린 여자는 칼럼을 씁니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 포스터


‘꽃보다 할배 리턴즈’로 돌아온 예능계의 마이다스의 손, 나영석PD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었으니 ‘숲 속의 작은 집’이다. 소지섭과 박신혜를 섭외하고, 숲 속의 작은 집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시도해보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라는 것만으로 시작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으나, 뚜껑을 열고 보니 그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낮은 시청률이 나왔으니까.


시청자의 요구와 상관없이 제작진이 하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렸다는 ‘숲 속의 작은 집’은 나영석 사단에게도 꽤나 큰 도전이었을 테다. 그 동안 각각의 캐릭터를 지닌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며 주어진 미션을 실행하는 에피소드를 주력으로 한 것에 반해, ‘숲 속의 작은 집’은 오로지, 그리고 철저히 출연자 개인의 매력에만 달려 있는 까닭이다.

 

tvN '숲 속의 작은 집' 포스터


‘소지섭’과 ‘박신혜’라는 휘황찬란한 섭외라인이 발동된 것도 낯선 시도에서 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나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소지섭은 생각도 못한 출연자이고, 박신혜는 ‘삼시세끼’에 이미 얼굴을 내비친 바 있으나 나영석의 예능프로그램에 거의 단독 형식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물론 추측에 불과하다.

 

이들은 각각 피실험자A, B가 되어 현대인을 대신해 조용하고 한적한 숲에 들어가 ‘행복 실험’에 임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제 손으로 삼시 세끼를 차려 봄은 물론 필요한 물품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진정한 자연인의 삶, 재미없고 지루할 거라는 나영석PD의 부연설명에도 그의 단조로운 콘셉트에 익숙해져 있는 시청자들에겐 크게 문제시될 바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프로그램의 구성이야 ‘삼시세끼’에서 이미 경험한 바인데, 이상하게 ‘숲 속의 작은 집’은 좀 더 인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유감스럽게도 소지섭과 박신혜가 자연스러움이 강조되는 다큐멘터리 형식엔 취약한 캐릭터들이지 않나 싶다. 정말 제대로 홀로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출연자라면 오히려 ‘노잼’ 형식이 그의 진솔한 매력 뿐 아니라 ‘숲 속의 작은 집’의 취지까지 제대로 살렸을 것이다.


뭐, 여기까진 지나간 이야기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영석PD의 ‘숲 속의 작은 집’이란 도전의 가치를 높게 매기는 이유는, 아무리 당시에 기고만장해서 벌린 일이었다 해도 예능의 세계로서는 프로그램의 폭을 넓히는데 꼭 필요한, 누군가는 반드시 해보아야 할 모험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보통 프로그램 하나에 많은 이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어느 누가 쉽사리 이런 시도를 내지를 수 있단 말인가. 상당한 기반을 쌓은 나영석PD였기에, 게다가 지향점을 위한 시도에 있어선 도전의식이 강한 그였기에 가능했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고귀한 이상을 향해 죽는 것, 잘못을 고칠 줄 알며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는 것, 불가능한 꿈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네.“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에 나오는 구절이다.


물론 ‘불쌍한 이상주의자’라 놀림을 당한 돈 키호테와는 달리, 나은 환경, 좀 더 뛰어난 지혜로움, 행운까지 겸비한 나영석PD이긴 하다만, 다른 이들은 불가능하단 꿈을 꾸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선 어쩐지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무리한 요구를 하자면, 나영석PD이기에 가능했고 또 필요했던 ‘숲 속의 작은 집’과 같은 모험과 시도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예능계의 마이다스의 손이자 돈 키호테가 되어달라는 소리다.


by. 윤지혜


영화 '맨 오브 라만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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