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많은 이민자들은 처음 정착한 동네가 제 2의 고향이 된다고 말한다.
나 같은 경우엔 텍사스가 그런 경우인데, 정을 못붙였으니 가고싶지도 않다. 사실 별 볼것도 없는 황막한 동네.
내가 보기엔 처음 정을 붙인 동네가 제 2의 고향이 되는것 같다.
두번째로 정착한 게인즈빌 플로리다는 지금도 가끔 갈 정도로 추억이 많다.
내 친구도 보스턴이 처음 정착한 동네이지만 제 2의 고향은 캘리포니아인것 처럼.
나에게는 나름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도 경험했겠지만,
자아를 리셋하는 경험.
물론 리셋한다고 인생이 장밋빛이 되는것은 전혀 아니다.
그 이후에 겪은 일들이 더 끔찍했으니까.
그러나 그 이전의 치기어린 20대 식 "내가 어디까지 잘 나가는지 해보자" 마인드셋에서,
30대 초반의 절망, 혼란, 방황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났다는것을 좋게 평가할 만 하다.
정말 모든것을 비워내던 시절.
학위를 따면 대학원 아파트를 나와야 했다.
그래서 새로운 아파트를 찾아다녔는데,
꽤 좋은 곳이 나와서 가보니 새로 부임한 파이낸스 교수 집의 In-Law 하우스였다.
별채라고 볼 수 있는데, In-law, 즉 처가나 시가 노인분들 곁에 사시라고 만든 조그만 집이다.
이 인도인 교수가 나보다 어렸다. 그리고 불과 몇년 전에 수강했던 수업을 가르치러 온 사람이였고.
난 그 수업을 듣고 박사를 땄는데 교수는 둘째치고 교수의 별채를 들어갈 수도 있는 신세였다. 들어가진 않았지만.
저저번 글에서 밝혔듯이 그때는 엄마 간암 문제랑 내 정착 문제가 정면 충돌을 벌이던 때이기도 했다.
또한 금융위기 직후라 잡이던 뭐던 내 능력치에서 할 수 있는것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내 지도교수가 테뉴어 못받고 산업공학과에서 파이낸스 논테뉴어 포지션으로 옮겨갔다.
그래도 그곳이 그립다.
아무것도 없고 간절할수록 정신은 맑아진다.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안되고 안되도 또 한다.
안되고 안되도 어느 순간 보니 되어있더라.
정말 죽어야 할 것 같은 순간을 여러번 겪어도, 어쩌다 보니 살아남더라.
그래서 살아남으면 부귀영화가 기다리고 있던가? 하하 물론 아니다. 찌질하다 찌질해.
그래도 난 내 노력은 인정해줄 수 있다.
이게 플로리다에서 배운것이다.
그 덥고 눅눅한 여름, 나무마다 축축 늘어진 스패니쉬 모스, 엄지손가락 만한 바퀴벌레, 손바닥만한 거미들, 악어, 박쥐, 자라, 등등.
학교 캠퍼스 한가운데에 있는 레이크 엘리스에는 위의 모든것을 볼 수 있다. 요즘도 기회되면 가는데, 애들이 싫어해서 이번엔 못갈듯.
특히 겨울이 좋다. 올랜도 탬파 지역은 한겨울에도 20-25도 하니까.
삶은 어딜가나 언제나 뭘해도 버겁다.
그래도 그 사이사이에 행복이라는게 온다.
신기한것이, 행복은 내가 찾으면 잘 안온다. 그런데 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보면 길 여기저기에 하나씩 놓여있다.
힘들고 버거운것에 너무 매몰되지 말자.
이런 다가오는 행복에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