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시도: 펜실베이니아로.
탈라하시를 떠나는 날.
이삿짐은 이미 보냈다.
75도 언저리였나. 매우 쾌적한 탈라하시의 겨울.
2016년 2월의 언젠가.
미니밴에 가재도구를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4개월 된 딸내미는 다행히도 장거리 운전에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다.
아마도 직장생활은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즐거운것 아닐까.
이런 저런 환송회. 많이 도와주신 우리 성당 교우분들.
친절하게 많이 도와준 아파트 리징 오피스 직원에게 작은 선물 하나 남겨놓고.
가끔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화장실에 떡 하니 붙어있던거 제외하면 나름 만족하면서 산 베란다스 아파트.
지금 가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 아파트 건너편 사우스우드 주택단지.
첫째 딸이 태어난 탈라하시 메모리얼 종합병원.
이제 곧 다 과거가 된다.
떠나기 직전에 시속 50마일만 넘으면 부르르 떠는 액슬 덕분에 천불 넘게 주고 고쳐준 혼다 오딧세이.
떠날 때가 왔다.
떠나는 날. 신화백님이 부른다.
그것도 저녁 다 되서.
신화백님은 나름 탈라하시의 명물이다. 서울대 - 시카고 아트 뭐시기 등을 거친 탑 라인 화백인데, 탈라하시에 집 한채 직접 짓고 은둔해 사신다.
탈라하시 한국인 최초로 딸냄이 하버드 갔기도 했다만, 막내가 오티즘이 있다.
그분 댁에 몇 번 가봤는데, 집안 전체에 아내분 모델로 그린 그림이 꽉 차 있다.
그 중 상당수가 누드화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저녁 먹고 가라고 한다.
덕분에 추억 하나 더 쌓는다.
전주 무슨 시장에서 산 아주 특별한 남비로, 직접 담근 김치로 끊인 찌개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지만, 부디 잘 건강히 사시길 빈다.
탈라하시에서 출발하자마자 와이프가 아르마딜로 한 마디를 밟고 갔다.
으드득 하는 아르마딜로 부서지는 소리. 액땜이라 치자.
딸내미는 잘도 잔다. 그 모빌의 잔잔한 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기 하나가 미니밴 안을 가족으로 만든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공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물론 추워진다.
삼일째였나, 펜실베이니아에 들어왔다.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드디어 눈이 오는 동네에 사는구나.
컬리지 스테이션 텍사스이던, 게인즈빌이나 탈라하시 플로리다던 눈도, 겨울도 거의 없는 동네였다.
눈이 발목까지 차 있는 호텔로 들어왔다.
동북부에 왔다. 미국 온지 15년만에.
와이프가 베드버그에 잔뜩 물렸다.
다행히도 같이 잔 아기는 멀쩡했다.
나도 멀쩡했다.
와이프가 동북부 오자마자 상심했다.
호텔에 가서 항의하니, 호텔 값을 전부 면제해줬다.
엿튼, 아파트를 찾아다녔다.
소득이 있을때 아파트를 찾는 거랑, 변변치 않은 소득으로 찾는거랑 너무 다르다.
아파트들이 이렇게 잘 관리되고 깨끗하다니. 돈이 좋긴 좋구나.
물론 그 만족감은 몇달 못 간다.
이삿짐도 받고, 살림이 빨리 정리되기 시작한다.
자, 회사를 다녀보자.
긴장도 이런 긴장이 없다.
이미 한번 와서 인터뷰를 했지만, 다시 한번 새롭다.
미국식 오피스의 그 묘하게 깨끗하달지, 뭔가 없다고 해야할지 헷갈리는 간결한 구조.
긴장감의 레벨이 다르다.
생명보험사의 에셋 매니저들은,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다.
다만, 일반 주식 펀드나 ETF처럼 증권 브로커리지 어카운트 열고 돈주고 사면 그거 관리하는 포지션이 아니다.
보험을 팔면 캐시플로우가 생긴다. 폴리시홀더가 보험을 청구할 요건이 발생하면 보험료를 지급한다.
이 사이의 기간을 듀레이션이라고 하는데, 보험사는 이런 캐시플로우가 매우 긴 대신에, 지급할 보험료가 크다.
에셋 매니저들은 이러한 캐시플로우를 가지고 채권에 투자해서 캐시플로우를 증폭시킨다. 듀레이션이 길기 때문에, 더 듀레이션이 긴 채권을 더 싸게 투자해서 더 큰 캐시플로우를 만든다. 또한 더 크레딧 스프레드가 높은 채권에 투자하거나, 파생상품을 사용해서 캐시플로우를 더 높고 고르게 만들 수 도 있다.
물론 보험료를 지급할 경우도 생기고, 보험 해약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럴 때를 대비해서 지출 캐시플로우를 기간 별로 예상하여 책정해 놓고, 이 지출 플로우에 맞춰서 수입 플로우를 확보하는 채권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보험 상품을 만들고, 지줄 플로우, 즉 준비금 혹은 리저브라 불리는 부채를 관리하는 사람들을 액츄어리, 즉 계리사라 하고, 자산을 관리하는 에셋 매니저와 더불어 보험사 포트폴리오 관리의 핵심을 이룬다.
향후 근 10년에 걸쳐 배우게 되는 위의 내용을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내용과 프랙티스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물론 배운다고 바로 일할 수 있는것 도 아니다. 주식처럼 진입장벽이 낮거나 적은 금액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것도 아니며, 몇명이 합심해서 보험사를 차릴 수도 없다.
2001 년 미국에 발을 디딘 후에, 드디어 내 서브젝트 매터, 즉 먹고 살 바닥이 만들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그분께 감사한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