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2026 목요일

3차 시도: 펜실베이니아 정착 성공!

by 윤준희

내 정착 시도들은 2016년을 종점으로 끝났다.


미국에서 내 커리어의 시점이기도 했다.


마치 백지에서 시작하는것 처럼.


한국에서 쌓은 7년의 경력, 미국에서 받은 석, 박사, 다 없는것처럼 하고.


그래서 억울하냐고? 억울하다.


그래도 얻은게 더 많아서 불행하지는 않다.


이때부터는 정착이냐 아니냐, 한국이냐 미국이냐, 이런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정착하느냐, 내 커리어를 어떻게 발전시켜 가느냐, 아이들은 어떻게 낳아서 기르는가, 라이프 스타일은 어떻게 되는가 등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1-2년 정도 지나면서, 그 이전의 끔찍했던 H-1B 스테이터스 문제, 생활비 문제, 등등이 해결되어 간다.


회사 일이 익숙해지면서, 자신감도 쌓여 간다.


그러나, 전혀 다른 문제들이 두드러진다. 나르시시스트/소시오패스 적당히 버무린듯한 나의 보스.


팀원 숫자보다 나가는 팀원이 더 많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보스.


매니지는 안하면서 원하는것이 알아서 나오길 바라는 보스.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케이스다. 한국이 지나치게 마이크로 매니징이 문제라면, 미국에서는 미국인이던 외국인이던 방치하다가 뒤통수를 치던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데 마무리를 못하는 매니저가 많다고나 할까.


엿튼, 영주권 스폰서를 해준다고 했다.


지금도 그 회사에 감사한다.


너무나 수월하게 받았다. 1년 반 남짓 진행했다.


2017년 영주권 접수 마감이 7월인가 였는데, 이 때 변호사가 기한 맞춘다고 일주일 사이에 미친듯이 신체검사를 마무리한 기억이 난다.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 사회의 일면 - 내가 푸시하면 한도 없이 느리다가, 진행중인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싶으면 무진장 신속해지는 단계들. 엑스레이, 방사선 검사, 피검사 등등.


2019년 7월에 영주권이 나오면서, 내 정착 시도는 끝이 났다. 성공했다.




집을 샀다. 회사에서 40분 가량 거리에, 더블 카 거라지, 4베드, 2.5배쓰, 뉴 디벨롭먼트, 싱글 패밀리 홈.


나도, 와이프도 그냥 꿈 속을 헤메는것 마냥, 너무나 쉽게 진행된다.


잔디를 어떻게 깎아야 하는지 몰랐다. 방치할 수도 없다. 이웃집이 싫어한다.


와이프가 친분이 있는 사람 남편에게서 중고 잔디깎는 기계를 받아왔다.


카뷰레터가 반쯤 막혀있어서 리빌드 킷 사서 고쳤다.


개솔린이 새서 잔디 깎을때마다 개솔린이 샌 경로따라 잔디가 죽어간다.


카뷰레터 다시 고쳤다. 개솔린이 다시 새지 않도록.


7월 후반에 마르고 더워지면 크랩그래스라는 잡초가 미친듯이 올라온다.


너무나 화딱지가 나서 큰 가드닝 용 쓰레기봉투 들고 나가 꽉 채울때까지 크랩그래스를 뜯어낸다.


백야드에 큰 블랙 월넛 트리가 있다.


블랙 월넛은 미국 동북부 원산이다.


2년에 한번씩 큰 아이스박스 두개가 가득 찰 정도로 열매가 떨어진다.


은행만큼은 아니지만 악취가 제법 난다.


한번은 다 모아서 껍질 다 까서 보관해놨다.


월넛 까 먹어보려고.


블랙 월넛은 맛은 있는데 속살 발라내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포기.


겨울이 됬다.


싱글 홈, 그리고 펜실베이니아의 겨울은 차원이 다르다.


밤새 윙윙거리는 웃풍 소리.


눈 한번 오면 무릎까지 쌓인다.


드라이브웨이까지 치우는데도 일주일치 운동 다 한다.


거기서 인도 치우는거랑, 스노우 플로우 트럭이 입구에 잔뜩 밀어놓은 눈 둔덕 치우는게 화룡점정이다.


눈 많이 오는 겨울엔 그래서 꼭 한 두명 눈치우다 심장마비로 간다.


이런 겨울이 4월 중순까지 간다.


그래도 5월부터는 천국이 펼쳐진다.




와이프가 성당 아는분에게서 도움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집 이사하자 마자이니 2018년 여름 즈음일 것이다.


미국 동북부 지역은 18-19세기에 형성된 동네가 많다.


이 때에는 여자들이 결혼할때 혼수가 있었다!


보통 12인용 식기 풀셋트다.


차이나 캐비넷과 함께. 다이닝 룸 식탁 옆에 장식해 놓고, 포멀 디너때 꺼내 쓴다.


지금은 물론 다 없어진 옛날 문화다.


이런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헝가리, 미국산 도자기들이,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이 안 쓰니 지하실에 처박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십여년 후에 집안 정리할때 처분 대상으로 나온다.


올드 머니들이 많은 지역일 수록 도자기들의 브랜드도 비싸진다. 로열 크라운 더비, 헤렌드, 웨지우드, 리모쥬, 야드로 등등.


미국 현재 세대들이 이런걸 즐길 리도 없고 값어치도 쳐주질 않으니 싼 가격에 시장에 풀린다.


이걸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도매업자 - 사실 수집자에 가깝지만 - 랑 비즈니스를 트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하고 있다. 쿠팡도 열고, 스마트스토어도 열고.


생계에 도움이 많이 되는건 아니지만, 미래를 보고 한다.





44 살에 둘째를 가졌다.


이제 진정 풀 스케일 가정의 남편이 되었다.


4인 가정, 자가 주택, 직업, 영주권, 와이프 비즈니스, 등등.


탈라하시 시절이 불과 3년전인데, 모든것들이 업사이드 다운 바뀌어 간다.


행복하냐고, 물론이다.


꿈도 못 꾸던 것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져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무엇보다도, 회사 안에서와는 별개로, 회사 밖에서 내 위치가 달라지는게 느껴진다.


더 이상 가난한 이민자 스탠스를 취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내가 돈을 주는 위치에 있어서는 난 갑으로서 행동한다. 미국인들에게.


물론 지금까지도 그게 안 통하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정부 기관, 그리고 의료 기관.


위의 두 곳을 매일마다 들락거려야 하는것도 아니니.


그리고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사는게 그닥 대단한게 아니다.


물론 한국에서 같은 위치에 사는 사람들이랑 비교하면 풍족하게 사는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냥 같은 사회에서 생계 유지하고 하는 서민들일 뿐이다.


브로큰 잉글리시는 배째라고 하고 산다.




첫째가 데이케어에서 유치원으로 넘어갔다. 드디어 스쿨 버스를 탄다.


이 때가 2021년.


드디어 쌓이고 쌓이던 보스와의 갈등 폭발.


코비드 때라 집에서 일하니 시원하게 소리지르기도 쉽다.


2018년인가, 코리안 아메리칸이였던 전 동료와 보스와 오피스에서 싸울때보다도 더.


스테레오타이핑은 하기 싫지만, 중국이나 동구권 출신 보스들, 40대 넘어가면 그 사회주의 국가 출신 특유의 탄압형 매니지먼트가 있다.


그게 가장 어글리하게 나타나는게 중국 여자가 보스이거나 시니어일 경우인데, 이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자.


내 보스는 우한 출신 남자였다. 중국 공산당 발상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셀프 이미징과 매니지먼트와의 경악할만한 불일치.


엿튼,


두번 대판 싸웠다.


난 이 회사가 너무 좋았다. 영주권도 줬다. 안정적이다. 할일 하고 빠지면 된다. 이미 내 일의 대부분은 다 자동화시켜 놓았다.


이걸 다 놓고 옮겨야 하는 것인가?


얼마를 주던 어디를 가던, 그 변화가 너무 버거운 나이였다. 46세로서.


잡을 찾기 시작했다.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잡 마켓이였다.


물론 이 때가 사일런트 큇, 그레이트 레지그네이션, 등 잡 마켓이 폭발하던 때이긴 했다.


2-3군데에서 긍정적인 진행이 되었다.


다 뉴욬 시티이거나 리모트 포지션.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인가.


같은 리모트 포지션, 가끔 필요할 때 가는 오피스, 70퍼센트 오른 연봉, 85퍼센트 오른 토탈 컴펜세이션.


보스랑 두번 싸웠다고 모든게 신기할 정도로 바뀌어 갔다.


다만, 이사를 가야할 상황이 되었다. 아무래도 오피스랑 너무 멀면 부담스러우니.




한참 이사하기 힘들 때였다. 2021년. 집값이 미친듯이 폭등하던 때.


특히 뉴욬 시티 근처로 가려 하니 그야말로 전쟁이였다. 비딩 워.


다행인것은 내 집도 그만큼 비딩 워가 붙었다.


내놓자마자 8팀의 매수자가 나왔다. 5-6만 불 애스킹 프라이스보다 높게 받았던듯.


문제는 집을 사는 과정이였다.


뉴저지의 어느 오픈 하우스를 가든 문전성시다.


그리고 뉴욬에 가까워지면 살 수 있는 가격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 서법들의 특성이지만, 사실 어디에 좋은 네이버후드가 있는지 정말 알기 힘들다. 물론 Areavibes 같은 웹사이트가 있지만, 사실 말도 안되게 틀리다.


그래서 전략을 세웠다.


뉴욬 주변 한인 성당이 10곳 가량 있는데, 그곳을 매주마다 한곳씩 들리며 미사를 드리고, 동네를 파악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분위기가 가장 좋은 성당 지역의 근방 동네를 찾는것이였다.


세군데 쯤 돌았나, 지금 나의 성당을 찾았다.


좋은 사람들이다. 경계심이 없다. 아이들이 잘 어울린다.


그 때부터 아예 그 때 집에서 근 한시간 걸리는 그 성당으로 옮겨 다녔다. 그리고 주변 동네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내 동네를 찾았다.




힌번 싱글 패밀리 홈에 살기 시작하니 단독 주택에 대한 내 기준이 만들어져 버렸다. 익숙해졌다고 봐야지.


그래서 직장이랑 멀고 한국마켓이랑 멀어도 학군 좋은 싱글 패밀리 디벨롭먼트를 찾게 된다.


문제는 센트럴 저지만 되어도 괜챦은 싱글 홈은 너무나 비싸다.


전에 살던 노스 펜 지역 싱글 홈들의 두배가 넘는다. 물론 그래도 뉴욕 근처 콘도보다 싸긴 하지만.


여차저차 해서 지금 사는 네이버후드를 찾았다.


거의 뉴욬 시티로 통근이 가능한 한계점에 있는 서법이다.


이것도 8군데 넘는 오퍼를 떨어지고, 센트럴 저지 지역 구석구석 듣도보도 못한 서법 다 뒤지고 다니다가 결국 찾은 곳이다.


드라마틱하게, 오퍼를 수락받았다. 물론 여기도 6-8 팀이 오퍼를 했다 한다.


이제는 클로징이다.


이제까지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다운페이먼트 준비해서 클로징하면 그만이였지만,


이제는 살던 집을 팔고 새 집을 들어가야 하는 처지다.


문제는 이 팔고 입주하는 그 사이 기간이 정확이 맞아떨어지기 어렵다는게 문제다.


더구나 그게 새 집 주인 모기지에 문제가 있다면 더 그렇다.


새 집 주인이 세컨드 모기지인지 HELOC인지를 걸어놔서, 내 모기지 회사가 클로징을 안해준다.


살던 집은 이미 팔았는데, 모기지 회사는 새 집 주인의 론 들이 클리어 안되면 클로징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처음 경험한 케이스였다.


살던 집에서 일 이주일만 더 있도록 클로징 날짜를 조절해줄 수 있냐고 내 리얼터에게 연락했더니, 바로 변호사에게 연락하겠다고 한다.


이 배신감.


미국에서 살면서,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제일 피해야 할 사람들 중의 하나가 리얼터, 자동차 딜러, 그리고 변호사 라고 하던데, 이말은 진리에 가깝다.


특히 자동차 딜러가 제일 악질인데, 그건 나중에 차차 얘기하기로 하자.


그래서 졸지에 홈리스가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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