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품위유지에 대하여
서랍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치마를 발견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 무늬옷도 좋아하는데
교사가 되고서는 1번 입고
입지 못했던 치마이다.
비싼 것도 아니다.
스페인의 SPA 브랜드 옷으로
2만원 남짓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치마를 입고 출근한 날,
교장선생님께서
그런 치마를 입고 오면 안된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영문을 몰랐지만,
교장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으려니 했다.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시 교장선생님께서는
보건실에 종종 오셔서
괜히 아이들의 일에
시시콜콜 관여하는 일이 있었는데,
나는 늘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이 학교의 유일한 의료인인데,
자꾸 비의료적인 일을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경기를 하는 아이에게
얼른 손발을 주물러 주라고 하거나,
물을 먹이라고 하는 것이다.
평소 약물치료를 잘해서
경기를 하지 않으면 제일 좋지만,
어쩔 수 없이 경기가 시작되었으면
안전한 환경에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을 없이하고
머리를 부딪히거나 팔다리가 다치지 않게
주변을 정리해준다.
혀를 깨물지 않도록 마우스피스 같은 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를 주무르는 것은
오히려 자극을 추가하게 되어
경기 시간을 길어지게 할 수 있고,
물을 먹이는 것은
사레들려 흡입성 폐렴이 되게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큰 병원으로 이송해서
검사를 하게 될 경우
금식 상태인 것이 오히려 낫다.
나는 과학교사셨던 교장선생님께서
초승달을 보고
저것은 그믐달이라고 확언하셨을 때도
아무말 안하고 네 맞습죠,
저것은 그믐달입죠 하고
맞장구를 쳐드렸다.
그렇지만,
잘못된 의료행위를 강요하면서
내가 무심하고, 냉정한 보건교사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참기가 어려웠다.
(나의 교원 성과급을 위한
정성평가 점수는 얼마였을까?)
너무 자주 보건실을 들락거리시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날은
나의 복장마저 지적을 하셨는데,
그것이 이 표범치마이다.
'그런 옷은 학교에 입고 오면 안돼'
왜 안되는 건지 잘 몰랐지만,
교장선생님은 아마도
이런 류의 치마를 입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계셨던 듯 하다.
초생달을 그믐달이라고 맞장구를 쳐드렸듯이
나는 이날도 패피가 되겠다는 소망을 버렸다.
교장선생님의 편견을
굳이 고쳐드릴 생각은 하지 않았고,
곱게 접어 옷장 어딘가에 넣어두었던 모양이다.
교장선생님은 그후로도
몇가지 에피소드를 남기셨지만,
다행히 정년을 하시고,
훈장도 받으시며 명예롭게 퇴임하셨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오랜만에 표범무늬 치마를 입어본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나의 복장에 대하여 누군가가
나에게 공무원의 품위 혹은
교원의 품위에 대해서
가르치고 싶어할까봐
보건실 밖을 되도록 나가지 않고서
일을 하는 중이다.
나는 내가 야해 보일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야해 보이고 싶은 적도 없다.
나를 야하게 보지 말아달라.
모든 여성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입거나 살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