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실하고 서운하던 청소기는 갔습니다.
우리 학교는 서울에 있는데도
숲이 가깝다.
심지어 학교건물을 올리느라
터파기한 흙을 차마 갖다버리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운동장 한편으로 높게 쌓아두었는데,
그 흙과 숲이 맞닿아 있어서
그 흙에다가 텃밭을 하고 있다.
그런 흙에서 농작물이 잘 자랄리가 없다.
그래서 이런저런 퇴비나 비료를 잔뜩 부어서
농작물을 기른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사시사철
서울 학교답지 않은
은은한 거름 냄새가 난다.
계분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계분 냄새를 정확히 안다.
그런 환경에 있다보니,
늘 벌레가 있다.
벌레라고 하면 좀 그렇네.
곤충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더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곳의 곤충은 더러울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 곤충은 더럽지 않다.
텃밭의 싱싱한 상추나 배추 등을
우리 학생들보다 먼저 먹고 자라는 애들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아침에는 출근을 하는데
조그만 새앙쥐가
냅다 보건실 철문 밑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렇다.
우리 학교 텃밭에는 새앙쥐도 산다.
더한 것도 살지 모른다.
다른 곳의 새앙쥐는 더러울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 새앙쥐는 더럽지 않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도시의 시궁창이나 하수구를 돌아다니는 새앙쥐와 다르다.
우리 학교 새앙쥐는
우리 학교 텃밭의 감자나 고구마, 토마토를 먹고 산다.
아니 먹으려고 온다.
그래서 나는 새앙쥐가 보건실로 들어온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작고 귀여운 새앙쥐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라따뚜이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쥐는 행정실 주사님께 부탁드려
전통적인 방식으로 끈끈이를 이용해서 퇴치하였다.
그러나 곤충들은 행정실 주사님께 부탁드릴 수 없었다.
그정도는 해내야 어른일 것 같았고,
나는 보건교사라 보건실을 지키니
보건실 위생이 곧 나의 얼굴이고
나의 능력이다.
이럴 때는 정말
모기 하나만 날라다녀도
직접 와서 잡아주고, 퇴치해주고
원인을 찾아서 다시는 모기따위가 나타나지 않도록
완벽히 해결해주던
중환자실 간호사 시절이 그립다.
아아아,
텃밭의 곤충들은 다양도 하였다.
나는 아침마다 매의 눈으로
보건실에 없어야 할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그러나 놈들은 늘 나타났다.
다양하게도 나타났다.
읽으시는 분들이 윗부분에 나오는
새앙쥐를 견디신 분들이기에
목록을 밝혀보겠다.
바퀴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 학교 곤충들은
텃밭때문에 나오는 애들이기 때문이다.
집게벌레는 흔하다.
달팽이도 흔하다.
하지만 놈들은 보건실까지 오기는 쉽지 않다.
놈들이 보이는 이유는
텃밭에서 상추를 따올 때 놈들까지 따온 탓일 것이다.
거미도 흔하다.
거미는 이곳을 좋아한다.
쥐며느리, 그래 너
쥐며느리는 왜 나오는 거냐
나는 쥐며느리가 싫다.
그러나 가장 많이 나오는 애들이 쥐며느리였다.
혹시 쥐며느리가 뭐냐고 모르시는 분들이 있으시거나,
새앙쥐로 시작해서
쥐의 며느리까지 알아야 하냐는 분들이 계실까봐
다른 이름을 알려드리겠다.
공벌레
공벌레 그 녀석이다.
이 녀석에게만큼은 곤충이라는 존칭을 쓰지 않겠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지
사나흘에 한번은 보게된다.
나는 그래서 늘
좋은 청소기가 갖고 싶었다.
흡입력이 좋고,
공벌레 정도는 훌떡 치워주는 그런 청소기 말이다.
나는 동생네 집에서 새 청소기를 산다음
더는 쓰지 않는 로봇청소기를 데려다가
보건실에 놓고 애지중지하며 썼었다.
심지어 '깔끔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보건실에 온 학생들은 '깔끔이'가
'깔끔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왔다갔다 청소하는 것을
재밌게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깔끔이는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부실한 보건실 비품 예산에서
최대한도로 쥐어짜서
핸디형 청소기 중에 제법 비싼 것을 샀다.
쇼핑몰 화면으로 볼때는
꽤 괜찮아 보였고,
후기도 좋았지만,
이녀석은 나에게 이름을 얻지 못했다.
외관과 능력 모두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늘 곤충들을 주둥이 주변에 모아만 주었지
제 스스로 들이켜서 치워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녀석과 헤어질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자그마치 2024년 1년 내내
보건실에 '다이슨'이 없는 보건교사는 나뿐이더라며
교감샘,
행정실장님,
우리부장님이 보일 때마다 신세타령을 했었다.
그결과 나는 작년 12월에
보건실 비품 예산으로
무려 100만원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학교는 매년 말에
다음 학년도의 예산을 미리 신청하고
관리자의 통과를 기다리는데,
매년 30만원 남짓 올려도 통과가 될까말까하던
나의 비품 예산이
무려 100만원인데도 통과가 된 것이다.
나는 이 예산이 통과되자,
2025년 1월 1일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나도 엄청 쎈
마치 캡틴아메리카 같은 핸디형 청소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저께,
나의 소중한 '삼송이'를 맞이하게 된다.
벼르고 별러
다이슨을 사려 했지만,
그새 신상이 나와서
100만원으로 사기 어려웠고,
내가 사지는 못하고
나만 없다고 슬퍼하던 몇년간
다이슨은 너무 모델명이 많아져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사야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애국심이 있다.
국산을 사야지!
마데 인 코리아!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예산에서
가장 화력이 좋은 280마력의
삼송이를 맞이했다.
그리고 어제 오늘
1일 2청소를 하며 신이 나는 중이다.
교육부는
이상한 AI 교과서나
그 교과서를 구동하기 위해
학생 1명당 지불해야 하는 구독료 같은 거에
예산 낭비하지 말고
모든 보건실에 삼송이를 들여주길 바란다.
아마도 나처럼
쓸쓸히 물티슈로 공벌레를 잡고 있을
차마 예산서에 100만원을 적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보건샘들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행복하다.
삼송이가 있는 보건교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