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다

이건 못참지

by 매콤S

오늘 이야기는 학교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어느새 쉰 번째 생일이다.

사실은 49세의 생일이다.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말은 결코 헛말이 아니었다.

올해도 이런 저런 난관을 거치며

연말과 연말에 있는 생일을 맞이한다.


아홉수가 싫었는지,

나 반백년 살아낸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고 싶었는지

나는 내 생일케잌에 기다란 초 5개를 꽂고

기어코 쉰 번째 생일이라고 우겼다.


나의 남편은 찐 공대생이다.

내가 생각한 찐 공대생은

웬만한 기구를 다 다룰 줄 알고,

웬만한 겨냥도나,

설계도를 척척 그려내는 그런 자들이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고서,

아, 공대생은 그냥 공부를 많이 하느라

다른 많은 것들을

못익힌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작은 이렇게

생각보다 이것저것을 못한다고 말하는 남편을

놀리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날 처제의 생일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남편을 구박하려고

얼른 그림이라도 한 장 그려서 줘라.

처제는 양띠다.

처제가 얼마나 서운하겠냐 그러면서

몰아부쳤다.


공대생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공대생들은 대부분 착하다.

그래서 시키는 일이면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 남편은 너무 괴로워하며

처제를 위해 양을 한마리 그렸다.

어린왕자도 양을 그려달라고 했었다.

어린왕자는 상자에 담긴 양 그림을 받았다.

나는, 아니 나의 여동생은

땅콩같이 생긴 양그림을 받았다.


정말로 땅콩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었다.

땅콩에 앞발, 뒷발이 달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선 전기나 중기, 후기 어드메쯤에서

정말로 종이도 연필도 없던 어느 산마을에서

그렸을 것 같은,

복슬복슬한 양털 대신에

땅콩 곰보를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런 양 그림이었다.


나는 너무나 만족하고 흡족했으며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래서 내 생일마다 용띠인 나를 위해

용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공대생 남편은 매우 난처해 하며

극심한 저항을 했지만,

결국 매년 용그림을 그리게 된다.


아주 초창기의 작품들은 차마 보여줄 수가 없어서

비교적 최근의 작품을 가져와 보았다.




3년 전의 생일선물이다.

용인데, 오리너구리의 꼬리를 하고 있다.

내가 항시 냉동실에 무뼈와 유뼈 닭발을 챙겨두는

닭발 마니아인 건 사실이나,

용이 닭발을 하고 있는 것은 좀 그렇다.

어찌 보면 가을의 단풍잎 같기도 하다.

이런 그림을 그리게 하는 부인에게 저항을 하듯

화난 한숨을 뿜어내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2년 전의 작품이다.

이전보다는 용의 주둥이가 길어지고,

내뿜는 불에도 성의를 다한 것이 느껴진다.

닭발이냐는 질타를 1년동안 기억한 듯,

약게도 다리를 하나만 보이게 그렸지만,

그 하나의 다리에 꽤 성의를 보인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버나 오리너구리 같다는 꼬리의 지적도 신경쓰였는지

꼬리 자체를 살짝 숨긴 것이 기가 막히다.

내 남편이 이렇게 머리가 좋다.





1년 전의 작품이다.

이제 흑백작품은 지루하니,

색깔을 써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때쯤부터 나는 남편의 작품을

좀더 좋은 화폭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손바닥만한 캘리그라피 용지를 주었다.

남편은 자신의 광활한 화풍을 담기에는

종이가 너무 작다며 불편이었지만,

어디선가 적당한 이미지를 찾았는지

용의 여기저기 그리기 힘든 부분을 없애고

꽤 역동적인 용을 그려냈다.

그러나 용비늘을 비비탄 총알처럼 색칠하는 바람에

환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감상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색칠까지 오더가 내려오자

많이 부담이 되었는지

용의 눈이 짝짝이인 것이 꼭 공황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양새이다.

용의 볏이 말갈기 같은 것도 매우 이상하다.

이 작품은 색감도 조화롭지 않고,

여러모로 매우 이상하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몰래몰래 작업해 온 것을 감안해서

크게 기뻐하며 받아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나의 생일에 우리 남편은

화백님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심지어 그 귀한 여의주를 물고 있다)

나는 받자마자 너무 놀라서

박장대소를 하고 큰절과 앞구르기를 하며

이 그림을 맞이했다.

남편, 고마워.

남편, 사랑해.

내년에도 부탁해.








다들 남편이 주는 생일선물이 그저 그렇다면,

맞벌이라서 내가 번 돈, 남편이 번 돈이

그저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남편이 공대생이라면,

그림선물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계속 사랑하기로 맘먹게 된다.

사랑은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만 두면 사라진다.





그리고 올해 받은 선물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하나머니 100원...

그래도 금융권에서 준 유일한 선물이니 기념하련다.

다들 부자되세요!

한때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우당탕탕 아이쿠의 아이쿠 백작같아서 맘에 든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