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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Dec 02. 2019

보건실에 왜 왔니?

아픈 사람만 들어오세요, 제발!

사람은 어떤 때 병원에 가는가? 당연히 몸이 불편하고 아플 때다. 병원을 재미삼아 산책 가듯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되도록 가기 싫고 어떻게든 미루는 곳이 병원 아닌가.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보건실을 떡볶이 집 드나들 듯 찾아온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그냥, 심심해서, 지나가다, 쌤한테 인사하려고, 어젯밤 꿈 얘기를 해주려고 기타 등등.       

찾아오는 아이들을 막지는 않지만 업무에 지장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휴식과 안정이 필요한 친구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고민 끝에 보건실 문 앞에 큼지막한 문구를 써 붙였다.    

 -아픈 사람만 들어오세요!-     

“선생님, 이것 좀 빨리 고쳐주세요.”

아이가 발을 질질 끌고 절룩이며 들어섰다. 접질린 걸까? 인대가 늘어났나? 긴장한 내 눈앞에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으음... 슬리퍼가 떨어졌구나. 왜 나한테 온 거니...”

“선생님은 고치는 사람이잖아요. 빨리 고쳐줘요. 화장실 가고 싶단 말이에요.”

꼬물대는 발가락을 보자니 기가 막힌다. 응급처치로 반창고를 둘둘 감아 슬리퍼를 되살려냈다. 

“여기가 보건실이지, 구둣방이냐? 내가 네 방광을 걱정해서 특별히 고쳐준 거야. 다음부터는...”

잔소리를 피해 아이가 후다닥 보건실을 뛰쳐나갔다.    

어느 날은 위중한 상태의 환자가 실려 온 적도 있다. 환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참새였는데, 아이들이 과자상자에 담아 데려왔다. 참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었다는 것이다. 하도 난리법석을 피우며 참새를 걱정하는 통에 ‘여기가 보건실이지, 동물병원이냐’ 소리도 못했다. 

어떻게든 치료해볼 테니 수업하라고 돌려보낸 뒤, 나는 과자상자 앞에서 깊은 명상에 돌입했다. 작은 생명이지만 귀하게 여겨 보건실까지 데려온 아이들의 마음이 예쁘고, 내가 이 새를 살려줄 거라 믿어준 믿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어쩌면 좋담?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을 할 수도 없고. 

참새는 이미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죽은 새를 만지는 일이 즐거울 리 없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처리를 해야 할 텐데, 거즈에 싸서 운동장 구석에 묻어야 하나. 

“꺄아악!”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나는 교사의 지위와 체면을 내던지고 의자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번쩍 눈을 뜬 참새가 보건실 안을 마구잡이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참새는 죽은 게 아니라 잠시 기절했던 것이다. 녀석은 결국 보건실 창문에 꽝 부딪혀 하루에 두 번 기절하는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아이는 손가락이 아프다면서도 자꾸만 손을 감췄다. 보여달라 해도 머뭇댈 뿐이었다. 어르고 달래다 억지로 손을 잡아 뺐다. 

“세상에!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금이랑 은은 비싸잖아요. 그래서...”

눈물 없이 듣지 못할 사연은 이러했다. 단짝친구와 팬시점에 가서 우정반지로 스탠 반지를 맞춰 꼈단다. 손가락이 두꺼워 살짝 끼는 느낌은 있었지만 마냥 기분이 좋았다. 씻을 때도 빼지 않았다. 밤이 되자 출출해 라면을 끓여먹고 잠이 들었다. 밤사이 손은 퉁퉁 부었고, 반지는 빠지지 않았다. 거무스름하게 부어오른 손가락은 상한 소시지 같았다. 


이런저런 용을 써보다, 유투브 동영상을 보며 실을 끼어 빼는 방법까지 시도해본 뒤 나는 나의 실패와 무능력을 인정하고, 분연히 수화기를 집어 들어 숫자 세 개를 눌렀다. 

“119죠? 상황이 이러합니다. 제 잔재주로는 도저히 뺄 수가 없겠습니다. 학교 인근에 도와줄만한 병원이 있으면 추천 부탁드려요.”

내 이야기를 듣던 대원님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어차피 응급실에 가도 저희가 출동해서 반지를 잘라야 될 거예요. 학교가 어디세요? 저희가 바로 가겠습니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이, 싸구려 스탠 반지가, 야식으로 먹은 라면이 불러올 거대한 나비효과를. 이렇게 굉장한 대공사가 될 줄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학교 운동장으로 앰뷸런스가 달려왔다. 소방대원은 무려 다섯 명이나 출동했다. 한명은 지시를 내리고, 한명은 아이를 지지하였으며, 한명은 반지 밑에 얇은 철판을 끼우고, 한명은 물을 똑똑 떨어뜨리며 기계의 온도를 떨어뜨리고, 한명은 아주 작은 톱으로 반지를 조금씩 갈아냈다. 

고맙게도 아이는 잘 견뎌주었다. 얼어붙은 채 가만히 있었다. 소방대원들의 얼굴에서 굵은 땀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반지가 끊어지고, 아이는 작은 족쇄에서 해방되었다.     

한때 나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했다. B형 간염이나 에이즈같이 감염질환이 의심되는 환자의 혈액을 채취할 때에는 바짝 긴장을 했다. 물론 베테랑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지만,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큰 병이 옮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하지만 위험수당은 당시 겨우 월 2만원이었다. 쥐꼬리만한 위험수당을 보며, 소방관이 높을까 중환자실 간호사가 높을까 자조적인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기쁜 소식이 있었다. 마침내 소방관이 지방직에서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걸 넘어 우리 학생의 손가락까지 구해주신 소방관분들께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나저나 오늘도 보건실에는 손님이 들끓을 모양이다. 그냥, 갈 데가 없어서, 외로워서, 친구 흉보려고, 시험을 못 봐서, 속상한 일이 있어서 아이들은 보건실을 찾아온다.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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