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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Dec 05. 2019

남자는 절대로 참을 수 없다는데

혼란스러운 해린이



해린이를 보면 흐느적대는 해파리가 떠오른다. 마른 몸에 긴 팔다리를 휘저으며  다가오는 아이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귀밑이 아프다는 둥 우물거리는 걸 보니, 할 말이 있는데 주변 아이들 눈치를 보는 듯하다. 귀를 살펴보고 괜찮다고 해줘도 미묘하게 웃으며 ‘그게 아니고, 저기’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기다려 주었으나 아이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결국 종이 쳤다. 해린이는 느릿느릿 보건실을 빠져나갔다.
“선생님, 상담할 게 있어요. 내일 다시 올게요.”

다음 날 해린이는 예고한 대로 보건실을 찾아왔다. 바닷속 해파리마냥 천년의 시간이 유유히 흐른 뒤에야 꺼낸 이야기는 이랬다.
“지금 서른 한 살짜리 오빠랑 두 달 째 사귀고 있어요.”
“너보다 14살이나 많은 사람이네. 어디서 만났어?”
“컴퓨터학원에서 만났는데, 강사에요. 키도 크고 잘생겼어요. 연예인 누구 닮았냐면...”
그리고 해린이의 ‘남친’ 자랑은 오천년 동안 이어졌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도 발휘하지 못한 일생의 인내심을 끌어다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핵심에 다다랐다.
“키스까지 했어요. 학원 원장님이랑 다른 아이들한테 들키지 않게 사귀는 중이에요. 나이 차이는 있지만 정신연령이 잘 맞아요. 그런데 최근에 고민이 생겼어요.”
“그게 뭔데?”
“갑자기 오빠가 ‘남자는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너랑 자고 싶다’고 했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해린이에게 남성의 성욕은 결코 참을 수 없는 게 아니라고 단언했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사람은 세렝게티 초원에서 발가벗고 뛰어다니며 야생동물과 함께 살아야 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때와 장소를 가려 참거나 조용한 곳에서 적절한 수준의 자위로 해결하는 것이 성숙한 성인 남성의 태도라고 말해주었다. 또한 서로 마음이 맞아 성관계가 이루어지더라도, 해린이가 미성년이므로 성폭력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과격했는지 해린이는 혼란스러워했다. 겁먹은 아이를 보자 가슴이 아팠다. 어른과 연애를 하고 있으니 어른이 된 것 같겠지만, 아직은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이자 어린 학생일 뿐이다.   

중고생의 이성교제는 비슷한 연령대와 경제력, 역시 비슷한 정도의 발달과업을 지닌 남녀가 하는 것이 옳다. 나는 해린이의 이성교제가 무리 없이 끝나기를 바랐다. 성생활은 남친이 원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일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해린아, 너는 지금 네가 친구들에 비해 정신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주는 원숙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란다. 선생님은 미성년의 성생활을 절대 반대해. 교사로서, 또한 어른으로서 간곡히 부탁할게.”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해린이가 다시 보건실을 찾아왔다.
“요즘은 어떠니? 그 사람 아직도 만나는 중이야?”
“학원에서 매일 보니까 자주 만나기는 하는데요. 제가 그랬어요. 이제 성인용은 안할 거라고요. 키스랑 스킨십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오빠가 너무 좋아요. 헤어지기 힘들 것 같은데 계속 사귀면 안돼요? 만나기만 하는 건 괜찮잖아요.”
해린이는 내 표정만 보고도 무슨 말을 할지 알겠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해파리...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아이였다. 나는 해린이에게 성인남성이 미성년을 만나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자고 했다. 제대로 된 성인이라면 절대 미성년과 깊은 연애를 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금세 시무룩해진 해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깊어진 마음을 끊기란 쉽지 않겠지만, 해린이가 곤란할 때 부디 나를 기억해주길 바랐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과 진심을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데 세상엔 두 종류의 어른이 있다. 청소년을 이용하려는 어른과, 지켜주는 어른. 나는 언제까지나 후자의 입장에 설 것이다. 더 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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