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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Dec 10. 2019

내가 깡패인가

가해자이며 피해자, 현지

     

경광등을 번쩍이며 운동장으로 경찰차가 들어왔다. 우리 학생이 관련된 학교 폭력 사건이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현지는 도리어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때린 건 맞지만 이렇게까지 커질 일인가, 하는 태도였다.     

그 후 사건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피해자의 부모님과 현지의 어머니가 학교로 달려왔다. 

“빨리 잘못했다고 빌어.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니가 깡패야? 당장 무릎 꿇어!” 

보건실에 잠시 피해있던 아이를 찾아온 현지 어머니는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보건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어머니는 현지를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주먹으로 머리를 후려치고, 산발이 된 아이를 발로 차 쓰러트렸다. 순간 현지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혼동될 정도였다. 말리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현지는 경찰이 주관하는 폭력 예방 교육을 받고, 전학을 가기로 결정되었다. 다시 볼 일이야 없겠지만 자꾸만 눈에 밟혔다. 나는 현지를 한 번 더 보건실로 불렀다. 아이 마음을 정돈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피부가 하얗고 예쁘장한 현지가 수줍은 듯 머뭇대며 들어왔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천진난만하게 떠드는 모습은 어린아이 같았다.   

“나한테 맞은 애 있잖아요. 걔는 내 생각만 하면 괴물 같고 악몽을 꾼대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안 때렸는데... 걔, 엄청 잘 지내던데요? 경찰 앞에서는 엄살 핀 거 같던데.”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것을 보니 아이고 소리가 터져나올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현지는 어휘력이 좋지 못했다.  

“현지는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내가 때렸으니까 잘못했죠, 뭐. 억울하지는 않아요. 후회되죠.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전학가면 잘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반성이 깊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현지가 극단적인 비행청소년이 될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낮기를 바랐다. 다만 판단력이 낮아 나쁜 일에 휩쓸릴까 걱정이 되었다. 또다시 폭력사태를 일으켜도 그다지 죄책감을 느낄 것 같지 않았다. 

“현지는 꿈이 뭐야?”  

질문을 바꾸자 아이의 귓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딴청을 피우며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인정 받아본 적 없는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허무맹랑해도 좋으니까 뭐든 말해봐.”

“음.. 제가 화장하는 걸 좋아하니까 메이크업이나 피부 관리 같은 거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현지의 가정형편은 좋지 못했다. 아버지와 소식이 끊긴지 오래 되었고, 담임 선생님에 따르면 어머니가 ‘상황이 어려우니 장학금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기록이 있었다. 지금 현지에게 필요한 것은 진로를 정하고 건전하게 성장하는 힘이라고 판단하고, 나는 현지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국가공인 자격증 중 미용(일반), 미용(피부) 항목에 대하여 검색했다. 필요한 자료를 출력해 파일에 묶어주었다. 

“현지야, 꼭 시험보고 자격증을 땄으면 좋겠어. 무료로 공부하거나, 약간만 부담하고 학원에 다니는 방법도 있으니까 돈없다고 포기하지 마. 나는 네가 아주 잘할 것 같거든.”

우리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사이트에 접속했다. 필기검정, 실기검정시험의 가격도 알아보았다. 총 60문제 중 36문제만 맞추면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음을 알게 된 현지의 눈이 모처럼 반짝 빛났다. 

현지는 파일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 보건실을 나갔다.     

2018년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17년 고등학교 학업중단 학생은 총 24,506명이다. 그 하나하나의 숫자가 너무나 무겁다. 오늘의 상담으로 현지의 인생이 확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워낙 의지가 약하고, 학습능력이 부족한 만큼 실제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길을 일러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현지 혼자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꿈을 이루기는 어렵다. 곁에서 끊임없이 응원해주고 격려해줄 어른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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