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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Jun 26. 2020

너의 미래를 축복해

- 졸업생 푸름이




코로나 19로 한동안 닫혔던 교문이 다시 열렸다.

학생들이 일주일씩 교대로 나오고 있다.

매일은 아니라도 아이들 소리가 들리니 학교에 생기가 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떨까.

처음에는 학교가 그립고 급식도 생각났지만,

막상 또 나와보니 지루한 모양이다.

집에서 있다 보니 그게 좋고 편하기도 하겠지.

일주일씩 학교에 오는 일조차 영 시큰둥이다.

그럴수록 학교가 재밌고 즐거운 곳이란 걸

알려주려는 생각에, 선생님들 모두 고군분투 중이다. 2학년에 주당 1 시수를 받아 수업을 하는 나 또한

같은 생각으로 온 재주를 다 부리고 있다.

오늘은 4교시 수업을 하는 날이다.

발뒤꿈치 까진 것부터 화상까지,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외상에 대한 수업을 했다.

수업 종소리에 꼬르륵 소리가 묻힌다.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배가 고프다.  

후다닥 급식실로 갔다.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가장 신나는 시간은,

급식시간인 것이다.

못 보던 얼굴 하나가 보인다.

취업부 선생님들 사이에

화장을 곱게 한 졸업생 하나가 앉아 있다.

밥을 먹다가도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인사를 한다.

그런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 혼자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마 보건 선생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지.

그런데 나는 저 아이가 기억이 난다.

"야, 잘리지 말고 잘해."
"직장생활은 재밌니?"
"후배들한테 좋은 얘기 좀 많이 해주고 가."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느라 바쁜 아이를

자꾸 훔쳐본다.

모야모야.
얼굴을 보자마자 떠오른 그 이름, 모야모야.
졸업생 푸름이는 모야모야였다.

모야모야는 뇌 기형의 일종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나오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아

문제가 생긴 뒤에나 알게 된다.  

일반인이 이유 없이

돈들여 뇌 사진을 찍어볼 일은 없기 때문에,

뇌가 기형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한창 중환자실에서

예후가 안 좋던 모야모야 수술 환자를 돌볼 때,

과연 내 머릿속은 멀쩡할까 하는 생각에 골똘했던 적이 있다.

푸름이는 어려서 뇌수술을 받았다.

고 1 건강조사를 할 때 그 아이의 질환명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3년 내내 기억하고,

요보호학생 명단에 올려

선생님들이 주의를 다할 수 있도록 살폈다.

여고생이 보건실을 방문하는 건강문제 1위는 두통이다.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가더라도 나오는 진단명은

대부분 긴장성 두통이다.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이 주원인이고,

딱히 별다른 해결책도 없다.

나는 BTS 비타민과 청포도 사탕 등을 1차로 먹여본다. 2차로는 두통약을 주고,

3차로는 보건실에서 한숨 재우기도 한다.

그러나 푸름이는 모야모야라서

머리가 아프다 하면 크게 걱정되었다.

이미 수술을 했고 정기검진도 하니

오히려 병원 한번 안 가본 아이들보다 낫겠지만

걱정이 덜어지는 건 아니었다.

푸름이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나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 돌보았다.

보건교사로서 징크스라면 징크스가 있다.

졸업식날 같이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거나,

내가 좋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보건실 도움을 별로 받아보지 않은 아이들이다.
특별한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잘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병을 지니고 학교생활을 하며 고군분투하느라 자기들도 힘들었었나 보다, 짐작한다.

푸름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학교 다니는 동안만큼은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아주기를.

우주의 기운을 포함하여

선생님들의 기원과 노력이 함께 했다는 것,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따랐으니

절대로 혼자가 아님을 알기를 바란다.  

나는 다 먹은 식판을 들고 나서며

마지막으로 한번 더 푸름이를 돌아보았다.

굳이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좋다.

건강히 잘 지내며 직장생활까지 잘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으니 되었다.

푸름아, 너의 푸르른 미래를 응원해.

선생님이 항상 너를 축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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