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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Jun 16. 2020

사춘기



초등 6학년이 된 내 아이가, 사춘기로 한참 몸살이다.

말을  걸어도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도 잘하지 않는다. 어쩌다 나오는 소리는 몰라, 싫어 두 글자뿐이다.

려서도 말이 늦어 그렇게 애를 태우더니,

엄마, 물! 하는 두 어절을 기다리게 하더니,

이제 다 커서 새삼 두 글자 단어로만 의사소통 중이다.

내가 왕년에 중환자실 간호사였으며,

현재 보건교사로 수백 명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는 별도로

내 자식  사춘기는 처음이라

선배 엄마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겨우 열세 살 짜리에게 사춘기가 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다들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자기 때가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조언이 대부분이다.

잠자코 내버려 두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지.

하루는 무난하고, 하루는 난리법석의 반복이다.

코로나 19로 학생들을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

아니, 인터넷으로 만나긴 만났다.

3분의 1 등교니, 3분의 2 등교니..

학교는 이것저것 준비하고 바꾸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을 학교에서 보게 되니 즐겁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던 보건수업도 얼굴 보고 하게 되었고, 요보호 학생 파악을 위한 건강상담도 매일매일 하고 있다.

생각보다 꽤 무거운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매년 희귀 질환 및 중대질환을 가진 아이들,

장애 등급을 가진 아이들을 꼭 파악해야 한다.

어느 질환 하나 무겁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 한 때 큰 이슈가 되었던 질환이 소아당뇨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질환보다 소아당뇨에 대해서

콕 집어 도와주라는 공문이 내려온다.

보건 선생이라면 잘 알 것이다.

소아당뇨 학생에게 무엇을 갖춰줘야 하는지 말이다.
작년까지 우리 학교에는 소아당뇨 학생이 없었다.

이제 겨우 입학식을 치른 신입생들을 파악해도

소아당뇨 학생이 없었는데,

2학년 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다.

반에 소아당뇨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두어 달 전 갑자기 쓰러져 입원을 했는데,

당뇨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이 아이를 불러 상담을 했다.

아는 얼굴이지만 보건실 단골손님은 아니었다.

얌전하고 조용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고 2에 발견된 소아당뇨는 2형 당뇨라고 생각되었기에 면담을 진행했다.

질병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평소 다른 증상은 없었는지 물었다.

눈에 띄는 체형상의 문제나 식습관의 문제가 보이지 않는데 무엇이 이 아이에게 당뇨를 얻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아이는 차분히 대답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을 나가 연락이 닿지 않고, 아버지는 고 1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결혼해서 어린아이가 있는 언니와

자취하는 오빠 사이를 오가며 지낸다고 했다.
뭐랄까, 나는 행간이 읽히는 기분이었다.

넘겨짚기 미안하지만

아마도 아이는 학교 급식 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편의점 음식이나 군것질로 끼니를 대충 때웠을 것이다.

내 걱정과 달리 아이는 의연했다.

입원 후 두어 달 사이에 당뇨에 대해 많이 배웠다며,

건 선생님 도움은 딱히 필요 없다고 했다.

주사 맞는 부위와 순서며

주사기 다루는 법도 잘 알고 있었다.

혈당 검사 시간과 식이요법에 대해서도 파악한 아이가

퍽 대견했다.

아이는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벌면 괜찮다고 했다.

자격증도 딸 거라 했다.

지금 바라는 것은 오로지 개근뿐이란다.

아, 나는 너무나 기특해 덥석 업어주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학교에는 보건실이 있으니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꼭 오라고 다짐하며 상담을 마칠 무렵, 다분히 개인적인 질문을 건넸다.

-너는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니?

-사춘기요? 사춘기가 언제 지나갔는지를 모르겠어요.

그 짤막하고 건조한 답변에 또 한 번 마음이 찌르르했다.

모든 것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농담 삼아 말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아니더라도,

울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면

결국엔 폭포가 되어 터지지 않던가.

나는 학생들이 보건실에 와서 울먹거리면 맘껏 울라고 한다. 나중에 두배로 울지 말고 지금 울라고 한다.

문을 잠근 뒤 크리넥스 휴지를 꺼내 주고

물 콧물을 줄줄 흘리라 말한다.

보건실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에

내 아이의 그림자가 겹친다.

이른 사춘기인지, 아님 그냥 못돼 먹은 건지,

요즘 들어 꼴도 보기 싫은 녀석.

저 아이는 얼마나 고되었으면

사춘기가 지나갔는지도 몰랐을까 싶어 안쓰럽다.

그에 비하면 우리 집 자식은 정말.. 말을 말자.


마음속 폭풍을 묵묵히 견뎌낸 사람의 사춘기 총량은 성숙함으로 채워지리라 믿는다.

그 아이의 바람인 개근을 이룰 수 있도록 살뜰히 보살펴야겠다.

힘들어하면 쉬게 해 주고

서글퍼하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게 사춘기를 먼저 지나온 어른들의 책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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