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콤S Jun 15. 2022

보건교사의 지구사랑 3

다육이를 분양합니다

나는 좀 직장을 많이 옮기고,

면접도 많이 다닌 편에 속한다.

한번은 강남 노보텔에서

VIP를 돌볼 간호사를 뽑는다기에

영어로 '레쥬메'를 작성해서 면접을 보러 간 적도 있다.

의외로 면접은 호의적이었고

일해볼 마음도 있었지만

아직 어려 철이 없었는지

출근할때 정문을 이용할 수 없고

각종 화물과 세탁물, 쓰레기가 드나드는 입구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

헬스장이 있는 5층에서 근무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지하에 창문도 없는 좁고 퀘퀘한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된다는 것에 놀라

결국 근무를 포기했었다.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하다가

처음 보건교사가 되어 근무를 시작했는데

학교가 특이하게도

산등성이의 비탈 한면에 자리잡고 있었고.

보건실은 지하에 있어서

창문을 열면 지하주차장이었다.


밖에서 천둥번개가 쳐도

함박눈이 와도

나는 누군가 말해주기 전에는 알수가 없었고,

알려할 틈도 없을만큼 바빴다.


그러다가 학교부지가 팔려

학교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흔치 않은 일로

난 십여년만에 커다란 창문으로 해가 들고

비와 눈을 내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간호사로 일하며

온갖 고생을 다한다고 가슴아파 하시던 엄마가

교사가 되었다고 기뻐하셨고

잠깐 들러 딸내미의 컴컴한 보건실을 보고는

또 슬퍼하며 돌아가셨다.

새 보건실은 해가 있다 말씀드렸더니

꽃 노란꽃 빨간꽃이 핀 세 개의 화분을 선물해주시며

매우 기뻐하셨다.


무슨 꽃인지도 모르고

물만 부어가며 기르던 애들이

칼랑코에라는 다육이였고,

이 아이들은 떨어진 잎사귀만 흙에 꽂아도

새로 자라나는 강인한 아이들이었다.


올해도 일찍 꽃을 본뒤

분갈이와 학생들에게 분양할 계획을 세웠다.


왔다갔다 쓰레기통에서

애들이 버린 우유곽을 모아서 깨끗이 씻어두었다.


그리고 좋은 날을 골라 칼춤, 아니 가위춤을 추었다.

우유곽은 입구를 자르고

궁뎅이에 X자로 구멍을 내어서

다육이 영양제와

흙을 넣어 다육이를 심어주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맡겨진

인큐베이터 속 아가들처럼,

일주일쯤은 내가 좀 돌보다가 학생들에게 주고싶었는데,

아이고야. 그날로 완판되어

다육이들은 새 엄마를 만나 떠나갔다.


되도않는 가드닝이지만

학생들에게 초록색 즐거움이 되었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보건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