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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Jul 13. 2022

보건샘의 즉문즉답

언제쯤 관계를 갖는게 좋을까요?

보건수업 첫시간에는 늘 무기명 질문을 받는다.

엎어서 내게 하고, 반으로 접지도 말라고 한다.

그렇게 모인 질문지들을 비슷한 것으로 묶어서

애매하게 수업시간이 남았을 때나,

요즘처럼 방학 직전이라 어수선할 때 하나씩 읽고

나름의 답을 주고 있다.


(그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주소를 권유한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mBeWBrev6YiTBA4zxXQkJw


이번 학기 마지막 질문은 이거였다.


한두번 받아본 질문이 아니지만,

지난 주부터 화두처럼 마음에 박아두고

이렇게 말할까, 저렇게 말할까

하지를 말까 여러가지로 생각을 했다.


드디어 어제, 마지막 수업시간이 되었다.

참으로 악조건이었다.

학생들은 오전 내내 외부체험활동을 다녀오고,

학교에 복귀하자마자 급식을 잔뜩 먹어

이미 주화입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너희들에게 딱 어울리는 노래가 한 곡 있다며

노래 한곡을 틀어줄 테니 일어나보라고 격려하고

보건수업을 시작했다.

틀어준 노래는

'마이클은 롹을 배운다'의 'Sleeping Child'다.


고심끝에 악수라더니...

나는 그만 고민하던 여러가지 중

가장 재미없고 가장 진부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틱톡 세대인 아이들은 자비심이란 없어서

나의 대답이 별 것 없다는 것을 알자

그대로  sleeping children이 되기로 결심한 듯 했다.


나도 이 아이들처럼 

진심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성관계에 대하여 궁금해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었다. 

나보다 먼저 혼인한 간호사 친구에게, 

유경험자로서 무경험자인 나에게 

성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줄 것을 종용하자, 

친구는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음. 성관계란 말이지, 

 아주 힘든 스포츠같아'라고 대답해주었다. 


나만 또 보건수업에 진심이라

집에 와서도 고민했다.


1. 고등학교 졸업하고 하세요.

2. 이미 경험하신 분들은 중지하세요.

3. 결혼하고 하세요.

4. 피임만 확실히 하면 가능하지만

    그래도 좀 더 커서 하세요.

5. 자위로 해결하세요.

6. 엄마아빠의 도움이 필요없고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의 힘으로

    살아낼 수 있게 될 때 하세요.

7. 이 관계를 통해 아이가 생겨도

   기를 수 있는 환경일 때 하세요.


어째 보건선생님 답이 '하세요'로 끝난다.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나는 작은 깨달음이 왔다.

스스로 옛사람임을 인정하고,

진부한 가르침을 일부분 이어가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을 말이다.


나의 고교시절과

내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의 고교시절에는

30년의 간극이 있다.

나는 30년 전의 내가 성교육을 받을 때에도

진부하다고 여겼던 그 가르침을,

마을 입구를 지키는 장승처럼 이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아도,

아직도 우리 아이들이

편견없이 고통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답을 찾아야한다고 말해야겠다.

너희는 아직 어리다고, 어른들의 말이 맞다고 믿지말고,

너희가 더 잘 알거라고,

당당하고 씩씩한 삶을 살라고 말해주어야겠다.


다음번의 도입곡은 아래 곡으로 하려고 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너와 함께 지내고 싶은 밤.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겠지만~'


여덟번째를 추가한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거든 하세요.

그렇다. 하지 말란 말과 같다. 나는 옛날 사람이다. 


: 클레오 Good time

https://www.youtube.com/watch?v=GQ8GGdXk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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