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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매콤S
May 11. 2023
빙빙 돌아가는 회전문처럼
보건실 문도 돌아갑니다
수현이가 또 문을 열었다.
오늘은
다섯
번이구나.
6교시까지 있는 하루에 보건실문을
다섯
번이나 열려니
스스로도 쑥스러운지,
이번엔 진짜에요. 진짜 아파요. 하면서
먼저 호들갑이다.
뚜벅뚜벅 들어와서
진료의자에 털썩 앉는 수현이 때문에
곤란할 때도 있지만,
그나마 이 아이가 나라도 의지삼아
학교에 계속 다닌다면 다행이 아닌가 하고
너른 맘을 먹어본다.
수현이는 친구가 없다.
나는 수현이가 처음 보건실 문을 열었을 때 직감했다.
이 아이는 외롭겠구나. 힘들겠구나
머릿속으로 경광등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수현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저 외모에 딱히 관심이 없는,
아니 남이 보는 관점을
신경쓰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미 보여지는 것이
너무 중요해진 세상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꾸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기에,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고 가르치는 주제에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내 머릿속 경광등이다.
그러나 정글같은 여고에서
같이 다닐 친구의 기분과 관점을 무시하려면
정말로 강한 심장이 필요하다.
수현이가 꽂고 오는
알파벳이 다른 가짜 명품 삔과
그 삔이 꽂힌 위치,
날이 따뜻해졌는데도 포기하지 못하는
두툼한 교복용 검은 스타킹을 보자
나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조만간 아이가 외롭다고 오겠구나
짐작을 했었다.
그리고 아이는 나의 허술한 예측대로
보건실문을 하루에도 여러번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나마 보건실이
수현이 교실 바로 앞이라서 다행이다.
너무 멀면, 보건실에 오는 것조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와서 조잘거리는 것들을
되도록 성의껏 들어주려고 한다.
아이로서는 오늘 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말문을 열어본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을 해줄까 말까,
그 삔은 빼는 것이 좋겠다고,
교복 여기저기에 달라붙은 강아지털을 떼야 한다고,
이제 검정스타킹의 계절은 끝났고,
커피색, 살색의 경쾌한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이의 긴 머리는 자꾸 흘러 앞을 가리지만,
강아지털은 여전히 많아서
볼때마다 나의 돌돌이로 떼어주고 있지만,
아이는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주었고,
이동수업으로 같은 반 아이들이
모두 떠났을 적에 혼자 남겨져
'
큰일이 났다'고 말하는
수현이의 손목을 잡고
4층 특별실을 같이 찾아다녔다.
거의
두
달여를 그렇게 들락날락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한 척 하던 아이는
이제야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꺼낸다.
친구가 없다고,
전학을 가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아이는 너무나 절박해 보였다.
친한 친구가 있는
집에서 너무 멀고, 교육과정도 아예 다른 새학교로 가면
그 친한 친구는
나만의 친구가 되어줄 것이고,
새학교에서의 생활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학교로 전학을 가야만 하는 이유를
열가지도 더 말하고 있었다.
아이의 외로움이 가슴깊이 전해져
나는 허둥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에
수현이를
달래보았
다.
너의 미래에 집중해보자고
했
다.
네가 되고싶은 모습을 상상해보자고
했
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친구들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보이고,
같은 목적을 가진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아이에게 최면을
걸었
다.
전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새 학교에서의 생활을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더 지내보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말한 처방이
어른조차 힘든 일이란 것을 안다.
왜이렇게 아이들이 외로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인싸'인 아이들도
외롭다고 보건실문을 열고 들어와
엉엉 울다 간다.
우리가 사람인데,
사람 대하는 법을 다들 잊어버린 것처럼
아이들이 외롭다.
오늘의 보건실은 여기까지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현이를 위해 기도한다.
아이가 원하는 세상이 아이 앞에 열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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