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노하우
나는 워케이션이 트렌드로 떠오르기 이전인 2018년부터 워케이션을 다녔다. (참고 글: 나의 워케이션 연대기) 그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때 워케이션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마음가짐도 환경도 일이 아닌 여행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보니 일의 효율이 높을 리가 없었다. 밀도 있게 쉬지도 못한 것 같다. 이도 저도 안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간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이제 워케이션을 잘할 수 있게 됐다. 워케이션을 ‘잘’ 한다는 건 뭘까? 결국엔 워케이션의 목적은 새로운 환경에서 환기하며 일과 쉼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몰입해서 일하고 밀도 있게 쉬는 것’이 워케이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워케이션 노하우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전에 내가 워케이션을 떠났던 이유는 여행을 길게 가고 싶은데, 휴가를 길게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일을 가져가면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그래서 휴가에 일하는 날을 더해 워케이션을 떠났다. 여행이 주연이고, 일은 카메오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떠났던 워케이션은 보기 좋게 망했다. 일도 쉼도 밀도 있게 누리지 못했다. 이럴 거면 그냥 여행을 올 걸 싶었다. 그게 2019년의 치앙마이 워케이션이었다.
그리고 2022년, 다시 치앙마이로 워케이션을 떠났다. 이미 한 번 다녀왔던 곳이기에 여행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연차를 많이 쓰고 갔지만, 이번에는 연차를 거의 쓰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일하는데, 장소만 달라진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은 퇴근 후, 주말에만 즐기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게 있는 날에는 반차를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여행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니 일의 효율이 높아졌다. 그리고 쉬는 시간을 더욱 밀도 있게 활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오후 5시까지 일하고 이후에는 야시장을 즐긴다거나, 주말에는 근교로 하이킹을 떠난다거나. 열심히 일한 내게 보상을 준다는 느낌으로 일하니 동기부여가 됐다.
워케이션에서 주변 환경과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건 ‘마음가짐’이다. 일할 때는 확실히 일하고, 쉴 때는 제대로 쉬겠다는 마음. 그런 마음가짐이 워케이션의 만족도를 높여줄 것이다.
나는 P형 인간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는 교통과 숙소 정도만 예약하고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워케이션이라면 다르다.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워케이션을 여행처럼 떠났다가 시간을 세상 비효율적으로 낭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숙소와 일할 장소(코워킹 스페이스, 카페 등)의 동선과 소요 시간, 식당 위치 등을 미리 확인하고 계획해야 한다. 나는 치앙마이로 워케이션을 떠났을 때, 다양한 공간에서 일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다른 공간을 찾아 다녔다. 생각보다 숙소에서 멀어서 이동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고, 주변에 식사할만한 곳이 없어서 식당을 찾다가 점심시간을 넘겨버린 적도 있다. 또 매번 다른 공간을 찾다 보니 지쳐버렸다. 예쁜 카페에서 일하는 환상은 와장창 깨졌고,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반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워케이션을 떠올려보면, 숙소와 일할 장소가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로 일할 장소를 찾아다닐 필요 없이 정해진 장소로 출근하면 됐다. 일할 장소를 찾는데 고민하는 시간, 이동 시간을 줄여주니 효율적이었다. 만약 숙소와 일하는 공간이 붙어있지 않다면, 숙소에서 가까운 한곳을 일할 장소로 정해놓고 출근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과 쉼의 비중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상 워케이션에서 일 50%, 쉼 50%의 완벽한 균형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워케이션마다 목표를 정한다. 이를테면 ‘이번 워케이션에서는 70%는 일하고 30%는 쉬겠다.’, ‘평일에는 한국 시차에 맞춰 8시부터 17시까지 일하고, 저녁 시간을 활용하겠다.’, ‘주말에는 절대 노트북을 열지 않고 여행을 즐기겠다.’ 같은 목표다. 개개인의 업무 패턴과 업무량, 협업 상황 등을 고려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수많은 워케이션 중 가장 몰입해서 일하고, 밀도 있게 쉬었던 워케이션은 ‘바다공룡 워케이션’이다. 이 워케이션이 진행됐던 곳은 경남 고성의 한 시골 마을이다. 작은 농협마트(마트라고 하기에는 농협에 붙어있는 작은 구멍가게)를 제외하고는 편의점조차 없는 그야말로 ‘깡시골’이다. 이런 깡시골에 끌렸던 이유는 ‘카라반’을 숙소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명확했다. 일과 캠핑. 카라반 바로 옆에는 공유 오피스가 있다. 워케이션 참가자들은 공유 오피스에서 일하고, 점심이 되면 바다공룡에서 제공하는 건강한 한식을 점심으로 먹는다. 점심식사 후에는 주변 호수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휴식을 취한다. 다시 일에 몰입하다 보면 저녁이 된다. 저녁에는 바다공룡에서 진행하는 바베큐 네트워킹 파티에 참여한다. 밤이 깊어지면 술 한잔을 기울이며 불멍을 때리거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감상한다. 아침에는 마당에서 다 같이 야외요가를 한다.
어디서 일할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일과 쉼의 경험에 있어 걸리는 것 없이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간다. 오히려 선택권이 적으니 일과 쉼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단점도 명확하다. 교통편이 불편하고, 주변 인프라가 부족하다. (마트나 병원 등에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걸 감수할 정도로 일의 몰입도와 쉼의 밀도가 높았다.
다양한 액티비티와 관광을 결합한 워케이션 프로그램들이 종종 보인다. 워케이션의 본질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다. 사람들이 워케이션에서 기대하는 것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방해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일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펼쳐지는 자연의 풍경’, ‘새로운 환경, 사람으로부터 얻는 영감’ 같은 것들. 힘을 주기보다는 힘을 뺐을 때 더 힘이 생기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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