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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Jan 13. 2022

시골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귀촌을 결심한 이유


시골 로망이 있는 내 아내에 비해 나로선 귀촌에 대한 기대, 설렘은 없다. 과거 1년여 동안 해외봉사차 네팔 촌구석에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어떠한 장소나 환경도 시간이 경과하면 익숙해지고 설렘도 사그라든다는 것이다. 흥분이 가라앉으면 그때부터 삶(현실)이 시작된다.


우리가 귀촌을 결심할 수 있었던 용기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미국, 네팔에서 20대의 20%를 보냈고 아내는 2년 동안 세계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꽤 이른 시기에 깨달았다.


시골로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국 어디든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일자리는 반드시 있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경제적 수입은 비슷할 것이다. 우린 잃을 게 없다. 직장은 계약직이며 집은 남의 집이다. 아직 아이도 없다. 가지지 않은 것이 곧 용기가 되었다.


친구도 없고 즐길 거리도 없는 시골은 지루할 것이다. 그렇다고 도시는 지루하지 않은가. 어차피 하루 8시간 이상은 직장에서 빌빌댈 것이며 퇴근 이후에는 넷플릭스나 보며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물론 가까운 거리에 친구가 살면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결혼도 이미 한 마당에 친구를 얼마나 자주 보겠냐는 거다. 오히려 친구를 오랜만에 보게 되면 더욱 반갑고 할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린 자주 만나지 않아도 연결될 수 있는 언택트 시대에 살고 있잖나.


도시에 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부산은 아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도시는 서울과 위성도시들뿐이다. 서울은 문화, 트렌드, 정보, 예술, 인재 등의 집약체다. 부동산을 사도 서울에 있는 집을 사야 돈을 벌 수 있고 아이를 키워도 서울 학군에서 키워야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야망을 가지고 있는 청년은 모두 서울로 상경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서울에 집중돼있다.


기능적 측면으로 봤을 때 도시가 우리에게 이득을 주려면 서울로 상경해 살아야 한다. 그 이외의 도시라면 난 거기서 거기라고 본다. 단지 생활 반경 내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뿐. 많은 사람들이 시골로 가면 생활이 불편할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탁기와 청소기 등 가전제품으로 인해 우리는 손빨래하고 빗자루질 할 시간을 벌게 됐지만 여전히 불행해 보이는 현대인의 삶을 보면 도대체 편리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린 오히려 바빠지지 않았는가?


편리함을 버려보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 불을 지펴 아궁이를 때워 방을 덥혀보고 우리가 먹을 채소를 직접 기르고 우리 집을 관리하면서 보수도 해보는 것들 말이다. 그게 최소한 유튜브로 먹방 보는 일보다 보람찬 일이지 않겠는가?


내가 이따금씩 삶이 공허한 것은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들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신발 밑창을 대량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과 하나의 온전한 신발을 만드는 장인 중 누가 더 보람을 느끼겠는가.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돈을 벌기 위한 과정은 행복하지 않다. 나는 월급날만 행복한 사람이 아닌 한 달 30일 전부가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아이 낳기 무서운 세상이다. 요즘 아이들은 마치 태어날 때 스마트폰을 쥐고 나온 것처럼 행동한다. 가족/친구 간에는 소통/대화의 단절을 야기하고 건강상으로도 좋을게 하나 없다. 솔직히 어떤 부모에게 물어도 핸드폰 사용의 단점을 더 많이 말할 것이다. 이젠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도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 이용하게 할 정도로 세상은 각박해졌다.


시골에 가면 아이들 공부는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어차피  있는 집안의 아이가 학업에선 훨씬 유리하다. 공부를 잘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하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내 아이가 머리가 특출나지 않는 한 학업을 밀어줄 생각은 없다. 다만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 손해 볼 줄 아는 아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런 교육 방법은 딱히 도시에 살지 않아도 가능하다. 


지금은 지역 선정 때문에 주말마다 경남권 지역들을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평생 살 곳일 수도 있기에 고심에 고심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살아보지도 않고 좋은 곳을 선택할 수 있겠나. 다만 지나치게 낭만과 로망에 취하지 않고 좀 더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어서 귀촌이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난 지금의 삶이 매우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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