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귀촌 허락받기
"엄마. 저희 귀촌하려고요. 내년 3월에."
분명히 가족의 화목한 밥상 분위기를 조질 주제였기 때문에 말할 타이밍을 찾다가 이내 말씀드린다. 말을 꺼내기까지 내 손바닥엔 땀이 흥건해서 젓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이니 우리 맘대로 하면 되는데. 저 말 한마디가 목구멍에서 나오기까지 왜 그렇게 긴장이 됐는지 모르겠다.
"뭐?!? 귀촌?! 언제? 어디로?"
예상했던 레퍼토리다. 옆에 와이프가 없어서 다행이다. 분명 이렇게 소리 지르실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엄니를 잘 모르는 와이프가 충격받을까 봐 데려오지 않았다.
"차, 창녕으로 갈 건데요. 내년 3월에 우리 전세 끝나는 거 아시잖아요."
"왜!!"
"솔직히 도시에서 살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제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다 SNS 커뮤니티로 연결돼있는데 굳이 여기 살아야 해요? 더구나 우리는 사회복지사랑 간호사라서 어딜 가도 직장이 있어요. 여기서 180만 원 버나, 거기서 180만 원 버나 어차피 똑같잖아요."
엄마의 감정적인 반응엔 늘 합리적인 답변이 최고다. 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기 때문에 엄니를 만나기 전에 철저히 준비했던 이유들을 말씀드렸다. 사실상 부모님에게 의견을 여쭈려 말씀드린 게 아니라 통보인 셈이다.
"아니 거기 가서 할게 뭐 있다고 가노?! 살기 불편해서 못 산다!!"
시나리오 작가 한번 해볼까. 다~ 예상했던 말들이다. 역시 어른들은 다 비슷한 이유로 귀촌을 꺼리는구먼. 아니 근데 이렇게 말씀하시면 뭐라고 논리를 들이대지.
"우리 사서 고생하는 거 좋아하잖아요. 괜찮아요~"
위기다. 저런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나와 와이프는 정말 사서 고생하는 것을 좋아하긴 한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암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겠는가. 어떤 삶의 방향이 더 우리에게 적합한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해야지. 아직 우린 젊잖아.
"이때까지 다닌 직장은 아까워서 우짤라고!!"
"엄니. 저 사회복지사 3년 하는 동안 5번 이직했어요. 사회복지사는 미래엔 어차피 그만둬야 할 직종이에요. 이 직업 답도 없는 거 잘 아시면서.."
당당히 말하긴했는데 맘이 저린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처한 아주 슬픈 현실이지.
"그래? 하긴 시골에 들어가면 물가도 싸고 살 만은 하겠다."
옳거니.
"그래요 엄니. 우리.. 소박하게 살고 싶어요. 돈 좀 못 벌어도 분수에 맞게, 만족하면서 살면 그게 행복이죠! 우리 주말이면 자연 보고 싶어서 맨날 시골로 놀러 가는 거 아시잖아요. 그럴 바엔 그냥 이렇게 젊을 때 가서 정착할래요."
누가 보면 철없는 아들인 줄 알겠다. 돈 좀 못 벌어도 분수에 맞게 만족하면서 살겠다니. 사실 저 가설에 대해서도 실험 중인 상황이라 실제로 돈이 충분치 않아도 행복한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시도해봄직 하잖아. 돈 있는 사람이 돈 많이 버는 부익부 빈익빈 시대에 내가 부자 될 확률이 얼마나 있겠냐고. 만족할 만큼만 벌면서 하루하루 의미 있게 지내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나.
"그래? 근데 엄마는 좀 걱정이 되긴 한다. 도시에서 자란 네가 시골에서 어떻게 정착하려고 그러냐."
"처음엔 읍내 아파트에서 살다가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안으로 들어갈게요. 우리가 귀농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창녕에 살면서 우리 하던 업으로 먹고사는 거예요. 그냥 환경만 바뀌는 거죠."
"그럼 한번 해봐라. 인생 그렇게 쉬운 거 아니다~"
거참 싱겁게 끝나네. 나를 길러 주시면서 평생 내 인생에 관여 한번 안 하셨던 부모님이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해서도 결국은 반대하시지 않으시리라 예상했었다.
그나저나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해결됐고.. 이제 장인, 장모님은 어떻게 설득드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