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책임(responsibility)에 대하여
7살 때 기억 중 아직도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기억이 있다. 유치원에서 혼자 하원 하는 기억이다. 당시 나는 집 앞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내 기억상으로는 하원 시간이 되면 부모님이 유치원까지 데리러 오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 정문 밖에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선생님이 남은 몇몇 아이들 손을 잡고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가끔은 선생님과 함께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왼쪽 오른쪽을 살피고 손을 들고 교문 앞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정문 앞의 도로는 사실상 막다른 길이었고, 번잡한 동네도 아니었기 때문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횡단보도를 혼자 건넜다. 정확히는 횡단보도 왼쪽을 혼자 가로질러 갔다. 선생님이 한 번에 돌볼 수 있는 아이의 수가 적기 때문에 모두가 선생님 손을 잡고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심히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던 선생님도 나중에는 나를 믿고(적어도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혼자 길을 건너는 특권을 누리게 해 주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신나게 가로지르고, 당시 인도가 없어 대신 놓여 있던 흙바닥 위 화장실 타일 비슷한 것을 한 걸음에 하나씩 밟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왜 내가 집에 혼자 가야 했는지, 혹은 진짜로 집에 혼자 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아무리 십 년이 넘은 이야기라고 해도 7살 어린이가 부모 없이 하원 하도록 내버려 두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 주었다는 느낌, 스스로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또래 친구들보다 내가 뛰어나다는 일종의 우월감이었다. 이때 이후로도 종종 느꼈던 우월감은 나중에 국제학교에서 전교 꼴등(...)을 하고 좌절감을 여러 번 맛보며 거의 없어졌지만, 인정받았다는 느낌과 성취감은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성취감은 길을 건너는 행위에 대해 responsibility를 가지며 얻은 것 같다. 나는 평소 한국어를 하면서 쓸데없는 영어 단어를 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responsibility만큼은 영어로 써야겠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responsibility에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는 '책임'인데, 뜻이 내가 responsibility를 사용하는 맥락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책임(責任):
1.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2.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즉, 책임이란 해야 하는 일이거나 어떤 일을 했는데 잘못되면 져야 하는 부담이다.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 Responsibility는 이런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조금 다른 뜻을 갖고 있다.
Responsibility:
- The opportunity or ability to act independently and take decisions without authorization. (출처: Oxford Languages)
->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 결정을 내릴 기회나 능력.
따라서 (맥락에 따라) "It's your responsibility"는 "네가 책임져"가 아니라 "이건 네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야"에 가깝다. 굳이 비슷한 표현을 찾아보자면 '자기 주도적이며 행동에 책임을 지는'이 아닐까 싶다.
어린이는 언제 어른이 될까? 나는 어린이가 responsible 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며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시길,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라고 한다. 자신의 일에 대해 responsible 하게 행동하는 것이 곧 독립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학교에서도 훈육할 때 responsibility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실험 도구를 빌려갔다가 제때 반납하지 않으면, 돌려놓지 않은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혼이 나지만 "날짜를 잘 확인하고 돌려놓는 건 네 responsibility야"처럼 내 responsibility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혼이 난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은 반납 날짜를 까먹은 것이 아니라 기한 내에 반납한다는 행위에 대해 responsible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학부모들의 관심사인 공부 역시 아이의 responsibility다. 중학교 입학도 못 해본 내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말을 얹을 자격은 없으나 공부를 잘하기 위한 기초는 역시 responsibility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혹은 선생님이 하라니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또래 친구들에게 수학, 과학부터 코딩까지 가르쳐 볼 기회가 많았는데, 공부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것은 새 퍼즐 조각의 자리를 찾는 것과 같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연결시켜서 생각해보고,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면 왜, 어느 부분이 연결이 되지 않는지를 찾아내고 어떻게 하면 연결할 수 있을지를 질문해야 한다. 그런데 공부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은 이 과정이 잘 되지 않거나 하려고 들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공부 머리'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responsibility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공부에 responsible 하려면 먼저 자신의 삶에 대해 responsible 해야 한다. 평소 아이의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하고 해 주다가, 공부를 할 때만 갑자기 responsible 하기를 바라면 안 된다. 사소한 것까지 자신이 responsibility를 갖도록 내버려 두고, 실수하거나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 실수에서 배우게 내버려 둬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responsible 할 기회가 많았으니 운이 좋다. 부모님이 영어로 소통하기를 어려워하시기 때문에 학교로 보내는 이메일도 내가 작성해서 보내고, 학부모 면담도 실질적으로는 내가 했고, 전학과 장학금 시험 준비도 모두 학교와 내가 직접 소통했다. 학원에 가라고 강요하신 적도 없어서 공부도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져가면서 혼자 할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이 금전적으로는 전부 지원해 주셨고 도울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지만 많은 일을 내가 해야 했다. 당시에는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다 알아봐 주고 해 주는데,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놓여 있는 지금, 앞으로 어른이 되어도 responsibility를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라는 사람이 나답게, 또 '어른답게'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responsibility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