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거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슨데요...
보통 어떤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그 일을 평균보다는 잘한다. 개발자는 개발을 잘하고, 작가는 글을 잘 쓴다. 그런 점에서 수학을 못 하던 우리 수학 선생님은 큰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었다.
S 선생님은 10학년부터 11학년까지 우리 반을 가르쳤던 수학 선생님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실력별로 1반부터 4반까지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는데, 가장 잘하는 (그리고 내가 속해 있던) 1반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니 당연히 수학을 가장 잘하는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했다. 수학을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데 S 선생님의 수업은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가르쳐야 할 내용과 개념은 잘 알고 게셨지만 식을 풀다가 양의 부호와 음의 부호를 헷갈려서 틀리는 일이 잦았다. 부정적분 끝에 +c를 붙이는 걸 깜빡하기도 하고, 여하튼 보통 학생들이 저지르는 실수란 실수는 죄다 하셨던 것 같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수학 실력에 우리 반 모두가 당황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10명 남짓이 모인 반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실수를 하면 대부분 금방 알아챘다(원래 본인 실수를 알아채는 게 어렵긴 하지만). 지적하면 혼날까 봐 실수를 실수라 부르지 못했고, 선생님을 쪽팔리게 한 책임(...)을 피하고자 몇 명이서 "쌤 거기 틀렸어요"하고 합창하듯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자신의 실수를 지적하면 아 그렇네, 하고 자신의 실수를 고치고 넘어간다. 수학처럼 실수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과목이 아니거나,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자신이 맞다고 우기고 어물쩡 넘어가는 선생님들도 많다. 어쨌든 자신의 실수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S 선생님의 반응은 다른 선생님과는 달랐다. 실수를 지적당할 때마다 아예 반 전체한테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설명을 했다. 중요한 실수라면 그렇게 실수하게 된 이유(이 부분에서 헷갈렸다거나, 깜빡했다거나)도 설명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위계질서에 0을 곱해버리고 수업하는 선생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S 선생님은 모르는 개념을 모른다고 말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second derivative (2계 미분방정식?)을 배울 때였다. 그때 배운 개념은 처음 미분한 식에서 찾은 함수의 극값의 좌표를 2계 미분방정식에 대입해서 f''(x)가 음수면 극댓값, 양수면 극솟값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지를 설명하지 못하셨다. 이건 일부 교과서에도 설명되어 있는 내용인데!
S 선생님이 찾은 해답은 우리 반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다. 선생님은 잠깐 고민하시더니 옆 교실에서 4반을 가르치던 수학 선생님한테 가서 이걸 잘 모르겠는데 우리 반 애들한테 설명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우리 교실로 데리고 들어오셨다. 그 선생님은 친절하게 f''(x)가 음수면 f'(x), 즉 f(x)의 기울기가 감소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극댓값이고, 양수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극솟값이라고 얘기해 주시고 쿨하게 떠나셨다. S 선생님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들에게 한번 더 내용을 설명해준 뒤 수업을 계속했다. 솔직히 이때 "원래 그런 거니까 그냥 외워라"라고 넘어가고 다음 시간에 알아와서 설명해줬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S 선생님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부터 모른다고 말하니 친구들도 자신이 모르는 내용을 거리낌 없이 물어보는 분위기가 됐다. 보통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일수록 모르는 걸 들키기 싫어하고 실수를 숨기는데, 우리 반만은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 문제를 풀다가 모르면 너도나도 같은 테이블 친구들한테 "이 문제 어떻게 푸냐?"하고 물어보고, 친구가 설명해준 게 이해가 안 가면 "여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하고 이해가 될 때까지 다시 물어봤다. 좀 어려운 문제가 나온 날이면 다 같이 얘기하느라 토론장이 됐다. 그렇게 해서 친구에게 물어볼 때에는 모르는 개념을 배웠고, 가르쳐줄 때에는 더 확실히 개념을 알게 됐다.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지는 일은 최소한 나는 전혀 겪지 않았다.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니까.
이렇게 써 놓고 보니 S 선생님이 상당히 무능한 수학 선생님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선생님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이전에 배운 개념과 새롭게 배울 개념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나는 선행학습을 전혀 한 적이 없어서 거의 모든 수학적 개념을 S 선생님 수업에서 처음 배웠는데, 그중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개념이 이전에 배운 개념과 잘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S 선생님은 미분을 처음 가르칠 때 이게 미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라는 얘기를 전혀 해 주지 않고, 함수 단원의 소단원인 것처럼 가르쳤다(어떻게 보면 맞긴 하지만). 이게 differentiation이라는 건 기본 개념을 다 배운 다음에 알려주셨고, 나는 differentiation이 그 미적분의 미분이라는 것을 그보다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S 선생님의 수업은 내게 '무엇을 배우는가' 만큼이나 '어떻게 배우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같은 내용을 배우더라도 교과서를 읽으면서 배우는 것과, 옆 반에서 수업하고 있는 선생님을 데려와서 설명해달라고 하고 배우는 것은 즐거움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적분 진도를 나갈 때는 오늘은 또 어떤 내용을 배울까 기대하면서 매일 수학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을 만큼, S 선생님은 수학을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의 재미를 가르쳐 준 선생님이었다.
S 선생님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내가 S 선생님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고기를 어떻게 잡는지 모르겠을 때 모르겠다고 말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S 선생님은 가장 뛰어난 '수학' 선생님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가장 뛰어난 수학 '선생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