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정 Sep 08. 2020

네비게이션은 가끔 엉뚱한 길을 알려준다

빨리가서 뭐할건데??

지금은 네비게이션 시대. 우리는 길을 모르면 네비게이션을 켠다. 아니, 길을 알아도 네비게이션을 켠다. 더 빠른 길을 찾기위해서다. 예전에는 꼬깃꼬깃 접혀진 지도를 펴고 아빠가 길을 물었다. 모르는 곳에 가면 이웃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다녔다. 요즘은 자동차를 살 때도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휴대폰에 이미 깔려있는 T map을 켠다. 아는 길도 네비게이션을 켜면 좀 더 빠른 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빠른, 조금더 빠른 길을 찾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네비게이션을 가끔 믿을 수가 없다. 이쪽으로 그대로 가면 될 길을 굳이 우측으로 틀어 나간 후에 뱅뱅 돌린다음 다시 기존의 그 길에 데려다놓기 때문이다. 약간의 정차가 된다는 이유로 네비게이션은 1~2분 조금이라도 더 빠른(우측으로 빠졌다가 막힌 구간을 지나고 다시 돌아오는) 길을 안내한다. 그 길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아..뭐야? 아까 그 길이잖아? 이럴 거면 왜 빠지라고 해? 나 혼자서 속 터져라 이야기해봤자 소용없다. 네비게이션은 그저 조금더 빠른 길을 안내했을 뿐.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는 나. 일을 할 때도 네비게이션에 의지한다. 아는 길도 두드려보고 가자? 네비게이션을 찍고 간다. 그러다가 정말 애를 먹고 고생고생한 기억도 많다.


방문을 다니는 일을 하다보니 주로 차로 일을 한다. 차가 나의 기동력인 셈이다. 차가 없으면 택시를 타더라도 5만원, 10만원이 훌쩍이다. 하지만, 내 차로 움직이면 많아야 1~2만원 주유비 선에서 해결된다. 차가 없으면 대중교통을 타야하고, 지금의 일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챙겨야 할 짐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 번 관악구를 간 적이 있다. 이미 한번 가 본 동네이긴 하지만, 골목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두 번째 방문에도 조금 헤맸다. 주차를 하고 방문을 끝내고 나왔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은 상황. 네비게이션은 두 가지의 길을 안내해준다. 관악에서 주욱 서울한강로 쪽으로 올라가는 길, 또 다른 길은 'ㄴ'자 형국의 인천으로 빙~둘러가는 길을 안내해준다. 당연히 나는 출발할 당시 첫 번째 길, 올림픽 대로 쪽으로 가서 김포한강로를 주욱 타고 집으로 가는 코스로 안내해주는 줄 알았다. 그것이 최적길 임을 알기에.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대로 갔을 뿐인데, 터널을 지내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서 보니 인천 쪽으로 빙~ 둘러 가는 길을 이 못난 네비가 선택한 것이다! 아뿔싸. 나는 이 길이 싫었고 2배에 가까이 훌쩍 뛰어난 키로수에 다시 한번 좌절하고 말았다. 네비게이션은 그때그때의 상황을 잘 반영해 준 걸까? 나를 골탕먹이려 하는 걸까? 나는 이 길이 싫었다.

너무너무 멀고 막히는 도로라 더욱 그랬다. 그 날도 인천으로 향하는 내내 서울을 빠져나오는 골목은 계속 막혔다. 막혔다 섰다를 반복했다.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도착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아이들도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해 졌다.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해는 어두워지고 인천으로 향하는 길마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이놈의 네비가 왜 이런 길을 알려줘 가지고! 란 소리가 속에서 울먹였다. 네비는 최적의 길을 선택한 걸까? 최단 시간을 선택하면 원래 내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안내해 주었을까? 지금도 알 수 없고 그 당시에도 막막했다. 주유비도 많이 들고 키로수도 늘어나고 내 발목은 더 노력을 하겠지. 그래도 집에는 가야하고 멀어도 길을 모르기에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대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둑해지는 도로를 가고 또 가니 인천이 나오고 인천에서 김포로 향하는 외곽순환도로를 탔다.


급한거 싫어. 빨리가서 뭐할건데?

급한 건 싫지만, 방문약속을 맞추기 위해선 가능하면 최적의 길을 선택하기 보단, 최단 시간을 선택하게 된다. 일을 하다보면 늦어질 수도 있다. 일을 카페에서 할 수도 있고 사무실에서 할 때도 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 조금 더 집중은 잘 되는 편인데, 방문하느라 밀린 일들을 소화해내느라 조금만 더..조금만 더.. 하다가 방문일정 시간에 매번 간당하게 맞추게 되는 거다. 최적의 길을 선택하면 키로수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빨리 가는 대신 안 막히는 도로로, 그 대신 빙 둘러서 가는 길을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키로수가 늘어난 거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선택한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가끔 나를 제지하게 된다. 옆의 차들이 쌩쌩 달리는 속도를 보면 나역시 좀 더 빨리가볼까? 재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신호에 걸릴 때도 그렇고, 늘상 있는 일이지만 지금 서나, 조금 있다가 출발하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가능하면 초록불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보니 마음도 조급해진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급한거 싫어하는 나인데. 일을 할 때는 그게잘 안될때가 많다.

길을 걸을 땐 특히 그렇다. 주변을 돌아보고 천천히 걸어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이다. 아이도 그런 나를 닮은 듯하다. 바로 앞에 신호등이 10여초를 남기고 있으면, 나는 말한다. "다음에 가자~"하며 아이의 손을 잡는다. 아이도 늘 그런듯 내 옆자리에 선다. 10여초를 남기고 있는데 뛰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기다렸다가 다음 신호에 건너기로 한다. 아이를 돌보아주시는 선생님이 어느 날 말했다. 자기는 신호등에 깜빡이는 등을 보고 건너려고 뛰어가려고 하는데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놀랐다고 한다. 다음신호에 건너면 될 일인데.. 자신의 행동을 다시 한번 돌알보게 되었다고 했다.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순간의 초록 신호등(혹은 주황 신호등)을 건널 것인가. 정규 속도를 지키며 안전하게 운전을 할 것인가. 당연히 후자를 하는 것이 좋다. 약속이 빠듯하다면 조금 늦는다고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다. 주변의 교통상황에 크게 좌지우지 하게 되는 일이다. 그런 만큼 늦어질 것을 생각한다면, 지난 번 처럼 늦게 도착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재촉하지 않기 위해 조금 일찍 출발하면 될 일이다. 걸을 때처럼 운전을 할 때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쉽고, 편하게, 안전하게' 를 생활의 모토로 가면 될 일이다.


좌회전 못했으면 직진해도 돼

좌회전을 못 할때가 있다. 네비게이션은 지금의 상황을 모른다. 여기서 300m 앞에서 좌회전을 하란다. 지금 이 형국은 구불구불 지렁이를 연상시키는 도로다. 그 와중에 그 길 사이를 파고들어서 좌회전을 하라니? 어림 없는 소리다. 자동차 사이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는 데, 늘 빠른길을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은 지금의 상황에선 어림도 없다. 좌회전을 못했으면 직진을 하면 된다. 직진을 하다보면 어느 도로에선가, 사거리에선가 뉴턴 하는 구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뉴턴 자리가 없으면 어떤가. 우측으로 꺽어 다시 돌아나오던지, 좌회전을 해서 다시 돌아오면 될 일이다. 그때는 또 다른 길을 안내해 주겠지.

책도 인생도 그렇다. 나에게 딱 맞는 책은 없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집어든 책이지만 나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책들도 있다. 나는 지금 이런 상황인데,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방법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나의 상황은 지금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책은 그저 이쪽으로 가는 길도 있어요!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일 뿐. 선택은 나의 몫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런 길을 선택하면 그대로 주욱 가면 될 일이고, 가다보니 막다른 길이 나오면 다시 돌아나오면 될 일이다. 어느 골목이든 어느 길이든 정답은 없다. 방문을 다니는 일을 하다보니 그때그때의 상황이 다 다르다. 각자 처한상황과 사정이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제일 중요한 것 한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미루어둔다. 지금 해결해야 할 상황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다른 이들에게 부탁한다. 가끔 엉뚱한 선택도 하고 길도 잘못 찾아간다. 매일이 새로운 상황이고 우리는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 다시 반복하는 인생도 없다. 그러니 실수하고 다시 찾아가는 수 밖에 없다. 한번 가 본 길이면 수월하다. 이전에는 이 길로 갔었는데 이쪽 길이 편하더라.더 좋았다. 라는 견해도 생긴다. 경험을 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기고 삶의 지혜가 생긴다.


네비게이션은 돌아가는 길을 모른다

저 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지? 궁금하면 가보는 거다. 네비게이션은 돌아가는 길을 모른다. 가다보면 그때 상황에 맞게 또 다른 길을 안내해준다. 너무 먼길을 바라보진 않는다. 목적지만을 향해서 가게 되면 지금의 상황과 순간을 기억할 수 없을 테니까. 나의 남편은 목적지만을 향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빨리 도착하고 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을 소중히 생각하고 잠시 멈추어서길 바란다. 잠깐 멈춰선 공원에서 아이들이 비둘기도 보고 꼬북이칩 부스러기를 살짝 던져주면 다가와 쫍쫍쫍 먹었던 비둘기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다. 비둘기도 좋고 아이들도 신난다.


매일 듣는 라디오에서 말하길, 순간, 찰나를 기억하라고 한다. 어느 주부의 사연인 즉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의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찍어두라고. 순간이고 찰나라고. 늘 나에겐 목적지가 생긴다. 서울이든, 일산이든, 인천이든, 나의 집이든.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면 좋을까? 그 조금이라는 시간은 그리 크지 않다. 아이들이 기다리면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나의 안전을 생각하고 '지금을, 순간을, 찰나를'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하늘을 나르는 새도 보고 비행기도 보고 노을지는 저녁하늘도 보고 감미로운 음악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잠시 정차하는 틈에 분홍색 립스틱도 살짝 바르고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지금처럼.


작가의 이전글 차는 긁었고 기름은 만땅 넣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