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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Sep 12. 2020

내가 볼펜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좋은 볼펜을 써야 하는 이유

늘 내 주머니에는 볼펜이 자리한다. 일주일에 다섯 번 일을 하고 유니폼을 걸친다. 단순한 반팔의 유니폼이 편하다. 매일 차를 운전할 때도 기기를 운반할 때도 활동성이 편해야 한다. 수시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볼펜을 꺼낸다. 일을 할 때도 차에서 대기를 할 때 볼펜을 자주 사용한다. 필기할 것들이 많고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늘 가지고 다니는데, 볼펜도 마찬가지다. 핸드폰에 적어두기도 하지만 볼펜으로 슥슥 글자를 적어두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필기를 하면 내 머릿 속에 한번더 기억이 되고 기억에 남는다. 쉽게 터치만으로 핸드폰에 입력하는 방식보다는 꾹꾹 눌러쓴 한 글자 한글자가 나에게 더 의미가 있다.


내가 볼펜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국민볼펜. 똥이 잘 묻어나오는 볼펜. 어딜가나 있는 볼펜. 카페나 식당에 가면 늘 항시 그 자리에 있는 그 볼펜. 나는 그 볼펜을 마다한다. 나는 내 유니폼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내 볼펜을 꺼낸다. 악수를 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를 두는 요즘, 방문명단에 적는 볼펜은 이 사람 저 사람이 만진다. 아무 거리낌 없이.. 늘 하는 일인데 어느 순간 이상했다. 볼펜이야 말로 각자가 가지고 다녀야 하는 필기류가 아닐까. 핸드폰은 화장실을 갈 때도, 식당에 갈 때도 늘 챙긴다. 나는 지금의 유니폼이 편하다. 꼭 가방을 들지 않아도 손만 넣으면 내 볼펜을 만지게 되니까 말이다. 일을 할 때도 그렇다. 늘 내 손은 볼펜을 찾는다. 언젠가 방문한 집에 볼펜을 두고 온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집에 놔두고 온 것 같다. 출근하는 길에 늘 볼펜 '2개'를 챙긴다. 하나는 내가 작성해야 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상대방이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서류를 작성할 일이 많다. 그래서 늘 볼펜 2개를 챙긴다.

볼펜을 하나만 가지고 간 날은 불안하다. 혹여라도 볼펜이 없는 날에는 근처 편의점에 들른다. 그곳에는 거의 모든것이 자리한다. 볼펜도 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임시방편으로 볼펜을 하나 구입한다. 내가 늘상 사용하는 볼펜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면 다 아는 국민볼펜은 똥이 잘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그볼펜을 사용하지 않는다. 물건 자체에도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물건이야말로 오죽할까. 볼펜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볼펜을 잡을 때의 감촉, 슥슥슥 글자를 적어나갈 때의 기분, 그런 사소로운 감정과 사소로운 부분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온다. 부드럽게 써지는 나의 글자를 보고, 사인을 한다. 뻑뻑한 볼펜을 사용하거나 필기를 할 때 똥이 너무 자주 묻어나오는 경우는 좋아하지 않는다. 물건을 대하는 마음이야 말로 나를 대우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소한 것에 열광한다.

아주 세밀한 부분인데, 어느 집에 방문을 갈 때면 현관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신발이 있는 곳이 있고, 가지런히 정돈된 가정이 있다. 나의 집은 어떤지 떠올려보게 된다. 한번은 현관문에 자주 붙어있는 전단지나 우편함에 넣어져잇는 필요없는 잡다한 홍보 꾸러미들은 집 안으로 들여오기가 싫었다. 어느 책에서 본 아이디어를 떠올려 현관에 조그만 휴지통을 비치해두기도 했었다. 필요없는 전단지나 광고홍보물들은 현관에서 걸러진다. 현관에 자리한 휴지통이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보통 종이류가 많기때문에 쓰레기버리는 날에 한꺼번에 모아서 버리곤 했다.

특히 현관입구에서 발판이나 실내화가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 사소한 부분이 그 가정집의 인상을 크게 좌우한다. 아주 많이 좌우한다. 실내화가 너무 더러워져 있거나 어딘가 헤져서 구멍이 날 정도가 될때까지 사용을 하는 경우, 또는 발판을 세척하지 않아 발때가 묻어나온 경우, 여러가지 다양한 경우들이 있는데 방문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기좋지 않다. 이전에 딸아이 학습지를 한 적이 있다. 선생님 댁에서 수업을 듣는데 가정집의 인상 자체가 현관에서 많이 갈리게 되었다. 실내화가 너무 헤져있었고 현관이 어수선하게 왠지 정리되어 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첫인상도 중요하듯이 가정집의 첫인상은 현관이 좌우한다.


우리집에는 하루에도 여러명의 사람이 들어온다. 오전 돌보미선생님이 오시고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도 있다. 오후 돌보미선생님,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많은 분들이 하루 동안 함께 한다. 그 출입구에 현관이 있다. 바닥이 깨끗하고 현관매트가 잘 정돈되어 있으면 기분이 좋다. 향기로운 아로마 오일이 있으면 더욱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향은 의외로 강한 효과가 있다. 향기를 좋아하고 라일락 꽃향기를 좋아한다. 쎈 향수냄새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 은은하게 흘러퍼지는 아로마 오일향이면 충분하다. 현관에 아로마 오일 스틱이라도 비치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가정집에 또 다른 얼굴은 어디일까?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양치를 한다. 화장실에 들러 용변을 해결하고 가끔 그곳에서 잠깐이지만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화장실을 한번 스윽 둘러본다. 매일 사용하는 수건과 비누가 있다. 수건에서 좋은 향이 나면 좋고,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으면 편안하다. 수건을 매일 사용하는데 갈아주지 않으면 냄새가 나고 특히 수건 가운데부분만 시커멓게 손때가 묻어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특히 화장실은 휴식의 공간이자 가장 내면의 소리까지 들어주는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물건에 사람의 정성과 마음에 깃들어 있듯이 내가 매일 사용하는 비누와 수건은 좋은 것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향기가 나는 비누, 거품이 잘 일어나는 비누, 이 비누 저 비누를 사용해본다. 어떤 비누는 한번 열었는데 향이 싫으면 다시 사용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무엇이든 사봐야 알고 써봐야 하는 것 같다.

화장실은 제일 눈에 띄는 장소다. 사실 손이 잘 안가게 된다. 화장실 청소는 정말 아주 가끔 하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신 쓰레기는 그때그때 비우고 수건은 깨끗한 것으로 준비해둔다. 비누는 많이 써서(남편은 비누로만 머리를 감는다) 아주 얇게 닳아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기 전에 수시로 향기로운 새 비누로 바꾸어 준다. 손을 씻는 데 특히 중요한 손세정제는 늘 비치해두고, 누가 오더라도 자주 손을 씻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내가 잠시 잠깐 머무는 공간이지만, 우리 가족을 돌보아주는 손님들이 매일 드나드는 곳이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고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손님을 대하듯 나의 가족을 대하고 매일 사용하는 물건에 정성을 부어주는 일, 깨끗하고 사용감이 좋은 물건을 준비해 두는 일 이 모든 것이 나를 대우하는 첫번째 순서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생각하는 대로 산다.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다. 우리가 24시간 매일 매 순간 생각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을 만든다. 나는 주로 집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한다. 매일의 밀어닥치는 일들을 소화해 내느라 바쁘고 운전을 하느라 하루종일 긴장을 하는 틈틈이 다른 생각을 한다.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유지하는 일은 모두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둘째를 생각하고 조만간 배변훈련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배변훈련 팬티가 필요할 것이다. 첫째는 하루에 몇시간씩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아이가 좋아하는 비즈나 퍼즐, 책을 주문해주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생각한대로 퐁퐁 집으로 배달되면 참 좋겠지만, 생각하는 그 물건을 사야하고 장을 봐야한다. 배달 택배를 주로 이용하고 필요한 그때그때의 물건을 검색한다.


생각조차 귀찮을 때도 있다. 식재료는 특히 그렇다. 주로 카레,닭도리탕을 하지만 그건 주말에나 시간을 내서 하는 요리다. 평일 저녁은 특히 요즘엔 시켜먹는 경우도 많고, 주로 반찬을 사와서 먹는다. 반조리 제품을 사서 따근하게 데워먹기도 한다. 장을 많이 본 것같은데 매번 주말이 돌아올 때마다 또 새로운 장을 본다. 먹을거리는 늘 준비해두어야 한다. 아이가 집에서 혼자 챙겨먹을 수 있는 것도 준비한다. 오이가 그렇다. 오이를 쌈장에 찍어먹는 걸 좋아하는데 아침시간 오이를 잘라두고 쌈장과 함께 고이 넣어 반찬통에 준비해둔다. 아침시간 엄마와 함께 하는 식사는 없지만 오이가 아이를 반긴다. 밥이 당기지 않는 날에는 오이만 먹기도 한다.


물건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하나를 살 때도 고심한다. 하지만 내가 유독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있다. 볼펜, 필기류와 책이다. 돈만 생기면 (여윳돈)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을 질러버리고 (맥주를 한캔 한 날에는 용기가 생긴다. 더욱 과감히 지른다.) 볼펜이나 일하거나 집에서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오피스 필기류는 넉넉히 준비해둔다. 아이 학용품에도 그렇다. 문방구에서 흔히 파는 물감은 저렴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좋은 제품으로 준비해둔다. 사보고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똥이 많이 묻어나오는 볼펜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편하다.

구하기 쉽고 저렴하지만 긴 안목으로 본다면 오히려 돈을 버리는 꼴이다. 슥슥 기분좋게 필기를 하고 싶고 부드러운 재료의 물감으로 슥슥 칠을 하고 싶다. 내가 하는 그 순간만큼의 최고의 기분을 느끼고 싶은거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어차피 해야 할 미술 색칠이라면 좋은 물건으로 좋은 느낌을 간직하고 싶다. 아이에게도 그런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학용품을 하나 사더라도 한번더 생각해보고 이왕 살거면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제품으로 산다.

그립감이 좋은 볼펜, 색이 예쁜 볼펜, 부드럽게 종이위를 미끄러지는 볼펜, 그런 볼펜이 나는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함께 한다. 볼펜의 굵기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다. 0.38, 0.5, 0.7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책에 적기도 하고 서류에 적기도 한다. 사인을 하기도 하고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기도 한다. 침대에는 책과 그립감이 좋은 볼펜이 자리한다. 매번 치워도 침대 위는 책으로 어질러져 있다. 둘째는 가끔 잠을 청할 때 누워서 자그마한 책을 보기도 하고, 언니가 고른 만화책을 보기도 한다. 책에 낙서를 하거나 자신의 몸에 볼펜으로 끼적거리기도 한다.

카페에 방문을 하고 비치된 볼펜말고 나만의 볼펜을 꺼내보는 건 어떨까? 어제도 식당에서 나만의 볼펜을 꺼내 적는 것을 보고, 직원을 하하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상황이었고 특이한 상황이었겠지? 자신의 볼펜을 가지고 다닌다는 건 나를 더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되게 하는 무언가 있다. 몇 만원짜리 몇 십만원짜리 아주 비싼 볼펜, 만년필도 많지만 꼭 그리 비싼 걸 고집하진 않는다. 내가 사용하기 편하고 여유있는 범위내에서 너무 저렴이만 아니라면 오랜기간 나와 함께 할 수 있다. 오늘 나만의 볼펜으로 나를 더욱 대우해주자. 특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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