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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Sep 05. 2020

차는 긁었고 기름은 만땅 넣었다

차에는 스크레치 마음에는 강크레치

방문을 다니다 보면 차를 주차하는 것이 매번 어렵다. 주차가 쉬운 아파트 단지를 만나면 다행이다. 복잡한 거리,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다니는 일이 다반사다. 그 날도 그랬다.. 매주 방문하는 어르신 댁인데 방문가방에 짐이 많다보니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주차할 곳을 찾는다. 시간이 간당간당이다. 기다린 다는 것을 알기에 환자 집 주차장에 주차하기로 했다. 


약간 이런 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주차장이다. 입구는 보호자가 키를 가지고 나와 열어줘야 열리는 문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기다렸다가 보호자가 문을 열어주면 들어가야했다. 차가 좀 큰편인데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 대고 싶었지만, 늘상 바깥 골목에는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한 자리가 남아있었는데 너무 좁았다. 옆에 까만색 K5 자동차가 있었다. 차를 몰아서 가까이 ㄱ 자 모양으로 꺽어들어가야 했다. 보호자는 옆에서 주차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크게 한 바퀴 돌아 차를 넣었다. 그런데...


지익... 버버벅... 어라? 느낌이 좋지 않다. 보호자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상황을 다 보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이따금씩 나에게 찾아온다. 옆 차를 긁은 것이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자, 긁었는데 또 빼야 하니 또 뒤로 가야 한다. 긁으면서 옆차와 나란히 붙은 내 차는 뒤로 차를 빼면서 또 버버벅.. 차를 긁고 만다. 아뿔 싸. 이런.. ooo...... 보호자가 어떻해요~ 그러니까요.. 어떻해요. 정말 울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르신 방문을 와서 다 내팽겨치고 갈 수는 없는 일.. 우선은 뒤에다 차를 뺐다. 보호자에게는 차 주인에게 연락하고 정리하고 간다고 했다. 먼저 올라가시라고.... 방문와서 이게 뭔 일이람. 그동안은 아마도 위태위태 아슬아슬하게 주차를 했었고, 여러번의 경우의 수가 있었기에 나는 오늘 여기에 주차를 한 것이다. 한 번쯤은 겪어나가야 할 과정인 걸까? 차를 긁지 않았으면 제일 좋았겠지만, 앞으로는 여기 대지 마시오 라는 의미였을까? 나는 바로 차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차를 긁었고 차 주인을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매번 새롭고 낯설다. 보호자가 옆에 있어 태연한 척 했지만 내 차도 그 차도 긁혀서 너무 속상했고, 당황스러웠다. 차 주인은 사진을 여러번 찍었고 보험사를 불러 처리를 부탁했다. 삼성화재에 사고접수를 하고 어르신 댁으로 올라갔다. 쿵쾅쿵쾅 심장은 뛰었지만, 별일 아니라고 애써 나를, 그리고 어르신을 달래야했다. 그렇게 집에서 있기를 십 여분,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근방 주소가 그랬고 집 골목골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주차하기에 집을 찾기도 매번 어려웠다. 나도 그랬는데, 보험사 직원도 그랬을 것이다. 주소를 문자로 찍어주고 주차장 근처로 마중나가 있기로 했다. 금방 올 줄 알았지만, 십 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에 어르신에게는 책자하나를 건네며 보호자와 함께 보고 계시라고 말해두고 나왔다.


지난 번 그런 경우도 있었다. 이 집 주차장 바깥에도 주차할 곳이 있었는데, 마침 자리가 비어있어 대고 댁으로 갔다가 나오는 데 자기 지정자리에 주차를 했다고 전화상으로 나에게 큰 호통을 낸 적이 있었다. 나도 이 곳에 방문을 왔을 뿐인데, 일을 끝마치고 나와 주차 관련해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안전한 곳에, 방문하다가 뛰쳐나오는 일이 없는 곳에 주차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또 언젠가 한번은 인천의 주택가, 그 곳도 역시 주차할 자리를 찾다가 두 세번을 뱅뱅 돌았던 곳이었다. 집은 찾았지만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고 아주 좁은 골목이었다. 빌라들 사이에 한 곳에 자리가 있어 울며겨자먹기로 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올 것이 왔구나. 차를 빼달란 내용 이었다.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보통 방문을 하러 집에 들어가면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소모되는데, 그 사이에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오면 나는 방문한 집에도 양해를 구해야 하고,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차와 관련된 사건들이 꽤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자기 집이 있고 자기 주차장이 있으면 제일 좋은데, 우리 나라 한국에서는 그런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매번 주차로 곤혹을 치르지만 이 역시도 내가 하는 일에 포함된 영역이니 함께 안고가는 상황이고 그때마다 헤쳐나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보험사고처리 직원이 주차장에 왔고 주차장 사고현장으로 왔다. 내 차가 긁힌 곳, 상대방 차를 긁은 곳을 아주 상세히 사진을 찍고 사고 접수를 해주었다. 보험회사에서 처리하는 경우는 가장 간편하고 편리하지만 이후 나의 보험료는 또 올라갈 것이다. 무엇보다 내 차가 지금 긁혔으니 이 수리비 조차도 만만치 않다. 보험사에서 소개해주는 수리업체에 문의하여 사진을 보내주고 견적을 받아보았다. 하필, 내 차는 외제차에 속하는 차종이라 수리비만 90~100만원을 불렀다. 그나마 자차보험을 들어놓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겠지?


한꺼번에 일이 몰리는 경우가 있다. 그 날도 그랬다. 사고접수를 하고 견적을 받고 꿀꿀한 기분이어서 일찍 퇴근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방문이 필요한 환자가 꼭 오늘, 바로 오늘 당장 와달라고 한다. 이미 시간은 다섯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너무 피곤하고 할 일은 많이 남아있는데, 방문을 또 가야했다. 그러고마 대답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다시 차에 앉았다. 며칠 전부터 기름이 간당간당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타고 기름을 넣어야지 했다. 오늘 방문을 하고 나면 정말 기름이 간당한 순간이다. 오늘 기름을 넣을 수 있을까?


서울 마포에서 구로까지는 꽤 먼길이었고, 해는 점점 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우락부락한 빗 소리와 함께 비가 퍼부었다. 하필 또 이런 날. 지금? 비가 어마어마가 몰아쳤다. 환자 집으로 가는 길에 와이퍼를 제일 빠른 속도로 올렸다. 차를 몰아가며 신호를 대기하고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5시를 말한 상태였는데 차는 밀리고 비는 퍼부었고 속도는 점점 늦어졌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네비게이션 길을 보며 막혀도 너무 막히는 구나 생각했다. 집으로 찾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길도 복잡하고 새로가보는 길이었다. 주택가라서 겨우 빌라 근처에 주차를 해놓고 방문을 갔다. 시간은 늦어졌고 이미 아이돌보미 선생님에게도 늦는다고 말해두었다. 급한 방문 일정이 잡히고 평소 퇴근시간보다 훨씬 늦어질 것 같으면 미리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양해를 구한다.


그럴 때마다 방문을 잘 끝내고 안전하게 오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께 늘 고마운 마음이다. 아이들이 잘 지낼 거라는 걸 알기에 시간은 늦었지만 차분히 방문을 하고 설명교육을 했다. 오늘 오라고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 분에게도 괜찮다고,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방문을 무사히 끝내고 나오니 여전히 우르르 쾅쾅 비가 몰아치고 있었다. 와이퍼를 세게 올리고 주차장 골목 사잇길을 빠져나왔다. 이미 시간은 저녁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길을 어두웠고 시야는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쫙쫙 뻗은 도로를 달리는 데도 길이 어두웠다. 차선이 보이지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빗소리 사이를 운전해나갔다. 집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땐, 이미 기름이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래.. 지금이다. 이제 기름을 넣고 가자. 다행히 남편이 나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고 했다. 나는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집 근처 주유하는 곳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만땅으로!!!! 5만원 어치의 경유를 한가득 채웠다. 기름이 간당간당하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기름이 5만원 가득 주유를 하니 마음도 풍성해졌다. 간당간당 조마조마 했던 마음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여유가 생겼다. 


오늘 나는 차를 긁었고 기름은 만땅 넣었다. 내 차도 상대방 차도 스크레치가 났다. 내 하얀색 차는 까만색이 붙었고 까만 상대방 차에는 하얀색 스크레치가 묻었다. 차로 생활하고 차로 걸어다닌다. 오늘도 차로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차와 함께 했다. 늘 나의 발이 되어주고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차가 있어 다행이고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남편에게도 사고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속상했을 텐데, 너그러이 이해해주는 남편이 또 고마웠다. 일을 하면서 발생한 상황이라 회사에서도 방법을 찾아보자 이야기해주어서 또 고마웠다. 소심하고 좁아질 수 있는 마음이 기름을 한가득 넣으면서 또 넓어지고 여유로워졌다. 나의 발이 되어주는 고마운 차에게 기름을 한 가득 넣었고 또 하루종일 사고처리하느라 긴장한 나에게도 물 한잔과 따근한 밥을 대접해주었다. 또 그런 에너지로 하루를 지내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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