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임을 했다. 정확히는 일대일 미팅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글쓰기 모임도, 그림책 모임도 잠정 중단이었던 시간이 있었다. 책방 준비를 하면서, 외래 수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 그건 아니었다. 모임을 준비하고 모임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5월 29일, 오늘은 글쓰기 모임을 오랜만에 진행했다. 오늘 모임에 참석한 트롤맘 님은 네이버밴드에서 주로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림책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만난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트롤맘님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누구일까? 어떤 모습일까?
트롤맘 님이 수줍게 들어왔다. 오늘도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귀가했는데, 아이들도 함께였다. 미리 자란다(놀이 선생님) 신청을 해두었는데, 아뿔싸! 자란다 선생님이 다른 일정이 있었다며 오늘의 일정을 취소한 것이다. 다행히 트롤맘님이 충분히 이해해주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글쓰기 모임(미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글쓰기라는 것이 그렇다. 흔히 알고 있는 미사여구, 문법의 맞춤, 맞춤법 등을 엄청나게 고려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예비 소설가나 등단을 꿈꾸는 신인들에게는 단연 중요한 부분이지만,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나의 경험이 스며든 책을 쓰는 예비작가들에게는 미사여구나 문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글파일을 열고 제목을 정하고, 처음 생각나는 바를 툭! 던지면서 그렇게 나의 생각과 나의 경험을 에세이 식으로 써내려가는 거다. 책쓰기라는 것 또한 방법이나 형식이 필요한 부분은 있다. 그래서 오늘 모임에서도 한글파일을 기준으로 어떻게 글을 적기 시작하며, 어떤 식으로 책의 구성이 이루어지는 지 다른 책들을 참고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이 들어간 나의 글을 보여주었다.
트롤맘 님과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름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트롤맘 님의 이름은 너무나도 예쁜 이름이다. 귀에 쏘옥 들어오는 이름이었다. 당신은 이야기한다.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적이 많지 않았다고.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지금처럼 어떤 모임에서 각자 소개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나의 이름을 말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어쩌면 엄마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고 있는 지 모른다. 누구누구의 엄마, 예비부모가 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이름은 잊고 사는듯하다. 나의 이름이 불리는 경우는 점점 적어진다. 아이들의 엄마로 지내면서, 누구누구의 엄마로 호칭이 되고 불리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이 아이들의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름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기까지 내 이름 ‘정희정’이라는 글자가 굉장히 어색했다. 직장에서 불리어지는 이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 이름이 단연히 내 이름 자체로 돋보이려면, 나 라는 존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지,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지. 등등.
그 동안 마흔이라는 나이를 먹도록 ‘나 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나를 진정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진적이 있었는 지 의문이 들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의 자리’는 어느 정도였는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했는 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최근 나는 나를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내가 나를 사랑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런저런 일을 하고, 육아도 살림도 하고, 일도 하며 나를 지키고 버티었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충분히 사랑했었는 지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 였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알았다. 진정으로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시선은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나도 힘들게 했고 상대방도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있는 힘껏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늘 바빴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귀가시간을 서둘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바구니를 채우고 아이돌보미 선생님 퇴근하는 시간에 조바심이 났다. 귀가를 서둘렀다.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봤다.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하며, 장보는 시간 조차도 나를 위한 시간이나 여유는 찾아볼 수 있었다. 가끔 맥주나 안주거리를 집어드는 것이 전부였다. 그거라도 나를 위한 시간이라면 포함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엄마가 웃음지으면 가족이 웃음짓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매일의 장볼 것이 수두룩하고 그 수두룩한 장을 보고나면 나를 위한 조그마한 간식도 사치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나를 위한 건 미루고 참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모든 걸 아이 위주를 맞추게 된다. 유아기를 지나 초등시기를 지나, 고학년이 서서히되면 서서히 아이들과의 간격도 생기게 된다. 나와 늘 밀착되어 있던 ‘나의 아이’가 독립된 ‘아이’로 우뚝서는 과정을 맞이하게 된다. 그럴 때 느낀다. 아.. 모든 걸 해줄 필요는 없다는 걸 말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말 안해도 해준 적이 있지만, ‘안 해줘도 되는 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온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마음이 드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나의 시간과 정성을 오롯이 쏟아부어냈기에 이제는 ‘나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돌볼 여유를 인정해주자’ 라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를 인정해 줄 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이름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정희정 이라는 이름 안에는 나라는 사람을 있는그대로 바라봐 주세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나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자.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의 이름을 적어보자. 내 이름 한글자 한글자를 적다보면, 불러주다보면 내 이름에 생기가 돌고 나만의 빛깔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회색빛으로 묻혀져있던 내 이름이 이제는 자주 불리어지고, 누구누구의 엄마이면서 정희정 이라는 한 사람을 있는그대로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아이들엄마 보다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대의 이름을 먼저 물어보고 불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