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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Dec 25. 2023

85일째 영어필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고그림책방 네이버카페에서 영어필사를 시작했다. 사실 영어필사는 이전에도 해본 적이 있었다. 더블엔 출판사는 다양한 필사교재를 출간하고 있다. 그중에 하루 10분이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 왠지 만만해 보이는 교재를 선택했다. (실제 해보니 절대 만만하지가 않더라) 하루 10분~ 30분은 족히 걸리는 영어필사는 노력과 정성의 투입결과물이었다. 한글필사는 이전에도 독서노트를 적는 등 익숙하지만, 영어필사는 또 달랐다. 영어는 예나 지금이나 잘하고 싶은 언어였다. 그리고 어떤 모임이나 필사를 한다고 공지할 때 '영어'는 대부분 우리에게 잘하고 싶은 언어분야라서 그런지 초기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10명의 필사회원님과 함께 영어필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10여 일이 지나갈 때까지는 어린 왕자의 주옥과도 같은 구절을 필사했다. 우리에게 <어린 왕자>는 특히 익숙하다. 어린 시절부터 흔히 접했던 동화라서 그런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늘 익숙한 제목이다. 하지만 뚜렷한 내용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워낙 유명한 제목이기도 하고 작가의 책이지만, 책과 친하지 않던 나에게는 <어린 왕자>는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었다. 그런 어린 왕자는 영어필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영어필사를 하면서 특히 좋았던 점은, 정말 쉬워 보였던 단어도 실제로 어렵기도 했고 어려운 단어로만 생각했던 문장이 쉬운 문장으로 표현되는 걸 느낄 때였다. 책 속에 좋은 구절로 표현되는 주옥과도 같은 문장들을 알게 되는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한글로 번역되어서도 곁에 두고두고 적어두고 싶을 정도로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목차 부분을 보기만 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지나온 책의 주인공들이 나누는 이야기와 삶에 대해 알려주는 조언들이 더욱더 인생의 참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나에게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 특히 더 와닿았다. 사실 이 책은 중학생 시절 책을 좋아하던 수진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선물해 준 책이었다. 한글 번역본으로 받아 든 그 책은 당시 인기베스트셀러이기도 했지만,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 친구가 선물해 준 유일한 책이기도 했다. 


목차 중 일부만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어떻게 죽을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지

자녀를 갖는 것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경험이야

지금 현재 자네의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해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우리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게

죽음으로 생명은 끝나지만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하루에서 완벽함을 찾는 거야

인생에서 너무 늦은 일 따위는 없단다

<하루 10분 100일의 영어 필사> 중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그날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생명은 끝나지만 관계가 지속된다는 말도 깊이 공감하게 된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12월의 김포그림책모임이 최고그림책방에서 열렸다. 한 달에 한두 번씩 그림책모임을 진행한다. 각자 공유하고 싶은 그림책 한 권을 가지고 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하면 할수록 그림책에 대해 더 빠져들게 되고, 혼자서도 보지 못했던 다양한 그림책세상을 알게 된다. 이번 모임에서도 그랬다.

실제로 한 어머니가 가지고 온 그림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넘겨봤을 그림책이었지만, 어머니의 선택에 의해 그림책모임에 올려진 것이다. 그림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일하다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먹구름 속에 갇힌 엄마와 그를 지켜보는 아이의 감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그림책이었다. 죽음을 준비할 수 없었던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남겨진 가족이 일상을 어떻게 지나가고 치유하는지 그 과정을 그림책을 통해서 전달받을 수 있었다.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사건사고현장에서 갑자기 목숨을 잃게 되거나 상실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자조모임'에 관해서도 언급해 주었다.


가족의 이별, 관계의 부재, 상실의 아픔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크고 작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일상을 영위해나가야 하는 걸까? 그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모임을 만들고, 사진이나 그림 글쓰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아픔을 담담히 표현하거나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림책은 말하고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림책 속 엄마 곁에는 아이가 늘 엄마의 밥냄새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아이곁에는 고양이가 늘 한켠에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곁에 자리한 고양이처럼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모임에 참여한 어머니의 말처럼, 그림책을 보고있노라면 그저 감상하게 되고 복잡한 생각보다는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느끼게 된다. 그림책 속 틈새사이에 삐죽삐죽 솟아나온 잎을 보면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고,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아' 라는 문구에 또 한번 위안을 받는다. 혼자 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그림책모임에 와서 주고받는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림책이야기를 공감하면서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눈물이 핑 돈다. 누군가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히 젖어있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있다. 왜 나만? 이런 일이 왜 나한테 일어나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은 주워담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남겨진 파편조각들은 그대로 있다. 깨져버린 유리조각이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다시 퍼즐을 끼워맞추거나 유리파편 조각들을 원상태로 붙일수는 없겠지만, 있는 조각들 그대로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나의 삶과 함께 걸음맞추어 나아간다. 

죽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게.

누구나 실수하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때로는 인생에 가혹할 정도로 풍비박산을 내기도 한다. 당시에는 잘하려고 한것이지만, 뜻대로 되지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한 일에는 내가 책임을 지는 것, 그리고 잘못하거나 미숙한 나였지만 나를 용서하는 일.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소중한 이들이 함께하고 단 한명이라도 (그림책 속 아이와 엄마처럼)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고 꼬옥 끌어안아준다면 우울하고 힘든 시기도 잘 견디어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최고그림책방에서 매일 좋은 그림책을 마주하지만, 문득! 너무 좋다! 라는 그림책을 느낄 때가 있다. 매번 책등을 보다가 어느날 한번 들추어보았을때, 아이 어린시절에 함께 읽었던 그림책인데 다시한번 펼쳤을 때, 이렇게 좋았었구나! 생각이 드는거다. 그림책은 마중물이고 기회이고 만남이었다. 


우울할 때마다 엄마와 오토바이 산책을 나가는 주인공 아이처럼, 혼자보다는 함께여서 그시간을 견디고 버티어낼 수 있다. 필사도 그림책모임도 그렇다. 나 혼자였다면 그림책의 묘미를 이토록 다정하게 풀어낼 수는 없었으리라. 영어필사도 그랬다. 나혼자서 시작했다면 85일간의 여정을 함께하지 못했을거다. 늘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최고그림책방 네이버카페는 내가 운영하는 카페다. 한 명으로 시작했던 카페는 어느새 110여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대표이미지에는 영어필사 인증샷이 매일 올라온다. 매일매일 꾸준히 하면 제일 좋겠지만, 육아도 하고 가족행사도 챙기고 일도하고 살림도 하느라 늘 바쁜 엄마들이 많기에 하루, 이틀 퐁당퐁당 쉬어가면서 또 다시 시작한다. 


필사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정했다. 매일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100일 간의 여정을 끝까지 한번 가보자. 중간에 아이가 아픈경우도 있고, 시댁이나 친정에 가야할 경우도 있고, 명절을 챙기거나 직장일 바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멈추지만 말자. 포기하지만 말자! 끝까지 한번 가보자!


그렇게 우리는 혼자가 아닌 함께 영어필사를 시작했고 85일째 유지해오고 있다. 하다가 멈춘 분들도 당연히 있고,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챌린지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 하루10분 영어필사는 1년 365일 진행되고 계속할거다. 100일 되는 시점에 또 다른 교재로 하루10분 영어필사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함께 하고싶은 분은 언제나 환영한다. <최고그림책방> 네이버카페에서 영어필사를 함께 시작해보자. 멈추지만 말자. 일단 시작해보자.


필사함께해요 회원모집

1월 10일 시작

어린왕자 영어필사 교재로 시작

방법: <최고그림책방> 네이버카페 가입 후 가입인사에 '필사 함께하고싶어요' 글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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