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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Jan 03. 2024

버킷리스트에 적어둔 그대로

책방을 열어야겠다고 다짐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연히 '창업'이라는 걸 꿈꾸게 된 건 오래전부터였다. 내가 7년 전쯤 당시 적어둔 노란 종이 위에는 '창업'이라는 글자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영어회화, 엄마자존감 회사 창업이라는 약간은 엉뚱한 회사이름으로 창업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꿈꾸었다. 서른 중반의 어느 날, 자연스럽게 책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서울에서 아등바등 바쁘게 지내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다가 경기도 김포로 넘어오게 되었다. 단지 집값이 비싸서 라는 이유였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조금 더 넓은 곳이 필요했고, 가능하면 엘리베이터와 목욕탕이 있는 구조의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 신림동에 살던 우리는 경기도 김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허허벌판에 유일하게 나의 관심은 적은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책들을 만나면서 나의 책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 에세이, 신간 위주 코너로 자주 돌아다녔고, 재미있는 책이 있으면 바로 옆의 책들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이 나에게 스며들었고 책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자기 계발서라고 다 같은 자기 계발서는 아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가 실천할 만한 책들을 섭렵해 나갔다. 쉬운 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종이에 목표를 적어보라'는 말을 수십 번 흘려듣다가 마침내 나만의 종이에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수첩에도 다이어리에도 적고, 종이에도 적어보았다. 한번 적어볼까? 또 누가 보면 어떤가?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데. 막연하지만, 내가 그 당시 원하고 목표하는 바를 적어보았다. 그 속에 '엄마자존감 회사 창업'이라는 글귀도 적어놓았다.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이위주로 생활리듬이 급격하게 변하게 된다.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가 나이기도 했고 친정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내가 유일한 보호자이고 돌봄 제공자였다. 늘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일이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왔다. 주말에도 아이와 서점을 다니기도 하고, 짜장면을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잘 보살피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도서관이나 서점을 다니기 시작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입장을 알게 된다. 아이가 하나 일 때와는 또 다르게 더 막중한 책임감과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도 십 대 청소년 시절에도, 그 이후에도 엄마의 자리는 막중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엄마라는 자리에서 함께 성장해나가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나의 소망은 열망이었고, 갈망이 되었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어느 날 문득 아이 곁에 '엄마인 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원에서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하면서 집을 비우는 동안, 아이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엄마의 빈자리는 돌봄 선생님이 대신해 주었지만, 수시로 아팠고 수시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더 이상 모른 체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였고 간절했다. 돈을 벌고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이 가장 소중했다. 아이들이 지금 아파하고 있었다. 그간 쌓아온 커리어도 사실 아이들과의 생활을 위한 것이었다. 간절했기에 내려놓을 수 있었고 결단할 수 있었다. 잘 될 거라는 보장이나 확신은 없었지만, 나는 책방을 열기를 결단 내렸고, 그 이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회사에 퇴사의사를 밝히고 후임자가 구해지는 기간 동안 병원생활에 충실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쉬는 날마다 둘째 아이와 함께 상가를 돌아보기도 했다. 가끔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강의를 다니기도 했다. 사직서가 수리되고 인테리어업체를 알아보고, 일정조율을 해나갔다. 든든한 백이 있는 것도, 마련해 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 하게 될 책방창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운전하는 운전대 앞에는 사업자대출과 인테리어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정도로 간절하게 이루고 싶었다.


어쩌면 그 당시부터 난 할 수 있어! 모든 일이 잘 되고 있다는 긍정확언을 나에게 수시로 불어넣어 주었다. 그 누가 할까? 내가 아니라면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까? 내가 나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긍정의 언어로 매일 단련시켜 주었다. 단순한 직장인마인드였다면, 직장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건의하고 개선해나가기도 했다. 필요한 자료물이 있으면 만들어서 붙여두기도 하고, 소아과를 찾는 보호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네이버지도로 전화 오던 날도 기억난다. 쿠팡의 직원이었는데 책방운영에 대해 물어보는 전화가 왔었다. 나는 네이버지도로 등록시켜 놓고 (이전 글 참고해 주면 좋겠다)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 새삼 신기해하고 있었다. 네이버가 자동으로 연결시켜 주는 전화이기에, 내 번호가 노출되지 않았고 드문드문 걸려오는 전화에 '아 역시 내가 책방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다. 그리고 문자를 남겼다. 곧 오픈할 예정입니다. 찾아와 주세요!라고 말이다. 안개처럼 뿌옇게만 보이던 나의 책방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하나하나 새로운 곳을 만들어나간다는 기분을 느꼈다. 오롯이 나 혼자서 말이다!!


주위에 가족이나 (남편도 지방에 따로 일하고 있었다) 친척이나 아는 지인의 방문도 당시에는 없었다. 오로지 나 혼자서 견적을 받고 인테리어 작업에 조언을 구하고 받았다. 포스 기나 cctv도 일일이 알아보고 전화해 보고 더 나은 곳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모두 내 몫이었다. 이렇게 사업자가 되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책방의 면모를 갖추어나갔다. 책방 따라 하기도 해 보았다. 이전에 찍어둔 수많은 사진들이 있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보물지도에도 알록달록한 잘 진열된 책방의 모습들이 놓여있었다. 그런 책방을 보면서 작고 세세한 부분들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집에 있는 네모 식탁을 책방으로 이사당시 가지고 갔다. 그 식탁에 책들을 진열해 두었다. 지금의 최고그림책방 전면에 위치해 있다. 책방 관련한 책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들도 있었고 잡지에서 노란 색감의 책장이 예뻐서 실제 책방색지를 결정할 때에도 노란색지로 정했다.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발견한 '책방이 없는 동네는 영혼이 없는 동네다'라는 비슷한 문구를 발견하고, 책방을 여는 나의 사명감에 불을 지펴주었다. 어쩌면 하나의 계기만은 아니었을 거다. 내가 살아오면서 걸어오는 여정 내내 필연이거나 우연으로 가장한 많은 것들이 '나의 책방창업 일기'에 불을 지펴주었을 거다. 내가 목표하는 방향으로 가는 걸음걸음 내내 만나는 수많은 시도들, 사람들을 통해 나의 책방창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 혼자서였다면 이루어내지 못했을 거다. 책방이라는 큰 목표를 저 앞에 두고 하나씩 발견하는 기쁨, 만들어가는 즐거움, 알아가는 깨달음을 모두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 자그마한 결실이 나의 생일을 맞이하여 출간될 예정이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이전에 해보지 않은 창업이라는 길에 나서는 나는 불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저 책을 팔고 아이들과 함께 삶을 이루어내리라는 결단하여 나는 마침대 '책방창업'이라는 꿈을 이루었다. 단순히 책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책방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케팅이나 홍보도 이미 방문간호사와 다른 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있었던 것 같다. 간호사라는 직업도 웬만한 깡이 없으면 오래 하기 힘든 직종인데, 그러고 보면 내 나름대로 깡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고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무섭고 두렵지만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런 과정들이 지금의 나를 조금씩 만들어주는 듯하다. 책방일을 시작하고 매일 해보지 않은 일들과 부딪히고 고민한다. 더 잘할까? 보다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해내는 것'에 집중한다.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면서 다듬어나간다. 글이라는 것도 그렇다. 누군가 읽으면 부끄러울 정도의 글이라도 일단 써놓고 본다.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몇 자 또 끄적인다. 일도 글도 창업도 그렇다.


처음이기에 생소하고 어렵다. 글도 써보지 않으면 더욱 어렵다. 해보면서 다듬어나가자.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영어필사를 하는데 2024년이라는 글자가 아직은 낯설다. 매번 2023을 써놓고 지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지내다 보면 나만의 결이 생기고 나의 책방을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 엄마자존감 회사창업을 꿈꾼 내가 마침내 최고그림책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마들이 함께 독서를 하고 필사를 하고 글쓰기를 배운다.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고 엄마들의 성장을 이루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괜히 뭉클해진다.


목소리가 참 좋은 엄마, 공감을 참 잘해주는 엄마,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엄마,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아채는 엄마, 책을 잘 읽어주는 엄마, 독서의 재미를 알아가는 엄마, 추진력이 있는 엄마, 무지개 빛 그 이상의 다양한 매력으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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