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꼬핀. 벽지에 흔하고 쉽게 꽂을 수 있는 꼭꼬핀. 쉽게 살 수 있고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생활 곳곳에서 필요한 곳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나는 꼭꼬핀을 매우 애정했다. 달력을 꽂아두기도 하고, 마스크를 걸어두기에도 편했다. 수면등을 꽂아두기도 하고, 거울을 걸어두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는 꼭꼬핀을 찾았다.
그래서였을까? 내 주변으로 꼭꼬핀이 번식하기 시작했다. 알게 모르게. 최근 거실벽지와 작은 방 벽지를 도배하기로 했다. 도배를 하려면 사전에 벽에 걸어두었던 짐들을 정리해야 한다. 벽지를 뜯어내야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에 사전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가 꼭꼬핀이었다. 거울을 드러내니 나타나는 꼭꼬핀. 달력을 들추니 또 드러나는 꼭꼬핀. 악세사리나 다양한 잡동사니들을 치우니 꼭꼬핀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하나 둘씩 쌓여가는 꼭꼬핀을 보면서 순간 흠칫했다. 엇! 이렇게나 많았다고? 이거 너무 심한데? 이정도로 벽을 헐뜯었었나? 꼭꼬핀을 장착하기는 쉽다. 꼭꼬핀의 뾰족한 부분을 벽에다 대고 살짝 걸쳐두면서 사선방향으로 벽과 벽지사이에 꽂는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잡으면서 주욱 밀어나가면 된다. 그럼 벽과 벽지 사이에 꼭꼬핀이 고정이 된다. 잘 맞물리는 순간이 있는 반면에 왜 이렇게 잘 안들어가?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벽과 벽지가 너무 찰떡같이 붙어있거나 벽과의 공간사이가 틈이 없으면 꼭꼬핀이 들어가지않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럴 때는 송곳자국만 남기고 다른 곳을 또 파기 시작한다. 살짝 기울여보고 느낌이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른 공간을 찾아헤맨다. 이곳 저곳을 뚫고 다녀서 벽에는 송곳자국들이 자리한다. 보기가 좀 그렇다.
꼭꼬핀이 또 필요할 지 모르니 한군데 모아둔다. 통한쪽면이 가득찬다. 꼭꼬핀도 모양이 제각각이다. 동그란 원형모양도 있고 둥근사각형 모양도 있다. 생김새도 아주 미묘하게 조금씩은 다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기도 하고, 다이소와 같은 매장에서 사두기도 했다. 한꺼번에 사기도 하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사기도 했다.
하나둘 사모으기 시작했던 꼭꼬핀들은 집한쪽 벽면을 온통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벽에는 이런저런 물건들로 가득해져갔다. 도배작업을 위해 모든 꼭꼬핀을 빼두니 마음이 정말 홀가분했다. 벽이 아팠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벽도 참 시원해보였다. 필요해서 벽에 고정했지만, 좀 적당히 할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오늘 내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내 주변에는 꼭꼬핀이 몇개나 붙어져있는지? 너무 많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은지? 가끔은 벽에 여유를 두는 것도 좋겠다. 벽을 좀 쉬게 해두어보자. 도배를 마치고 깨끗해진 벽면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부드럽고 편안해진다. 뭔가가 가득차있던 벽지를 거둬내니 말끔하고 시원한 공간이 생겼다. 살면서 한번쯤은 시원한 벽지를 마주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