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데이트에서

엄마 간호사의 성장일기

by 정희정

며칠 째 내린 비로 공기가 습하다. 어제 남편은 늦게 들어왔다. 평일에는 경기도 김포에서 서울 강남까지 출퇴근하는 거리를 알기에, 하루쯤은 술 한 잔 마실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힘들었다. 나는 일곱 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육아 중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컴퓨터방에서 있는 걸 좋아해서 집에 있어도 거의 대부분은 내가 아이들을 돌보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자신의 생각이 생기고 고집 또한 생기는 나이 세 살. 지금 딸아이 곁에는 첫째 아이도 있다. 첫째 아이는 3학년이 되니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았다. 그래서 어제 잠깐 외출한 틈을 타서 준비물을 샀다. 실로폰과 리코더. 음악 악기 준비물을 샀는데 딩동~딩동~ 두들기면서 둘째 아이도 너무 좋아라 했다. 잘 가지고 노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저녁에 실로폰 막대기로 탕탕 치다가 첫째 아이의 팔을 세게 치기도 하고 손톱으로 긁기도 하면서 상처를 냈다. 첫째 아이도 참을 만큼 참는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분유를 타 주니 바닥에 이불에 질질 흘리기까지 했다.

첫째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 새도 없이 나의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이들 끼니까지 챙겨야 하고 밀린 설거지 거리가 눈에 또 들어왔다. 급기야 설거지를 달그닥 달그닥해야 조금이라도 진정이 될 것 같았다.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할 일이 눈에 자꾸 들어오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해놓고 아이가 우니 첫째 아이가 다가가 돌봐주었다. 그 사이 비빔면을 끓여 첫째 아이에게 가져가서 먹으라고 했다.

분유가 흘러 버린 이불은 세탁기에 걸쳐놓고 설거지는 대충 끝냈다. 저녁도 그럭저럭 해결했고 둘째 아이도 분유를 먹였다. 이제 잠잘 시간. 거실은 난장판이다. 공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식탁의자도 닦아야 한다. 기다려도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밉긴 했지만, 그 사람 속은 또 어떠랴 싶었다. 거실에서 요즘 잠을 자는 남편 이불을 바꿔주고 잠자리를 정리해주었다. 널브러져 있는 공들을 제 자리에 집어넣었다. 식탁 위와 거실만 정리하니 그래도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카톡으로 전했다. 내일 아침에 나갈래. 오늘 너무 힘들었어. 했더니 남편이 그렇게 하라며, 몇 시에 나갈 건지를 묻는다. 아침 열 시? 그래.


정말 오래간만에 아이와 외출을 나왔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비가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우산을 가지러 집에 다시 다녀왔다. 하늘은 우중충하지만 나오니 좋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손을 잡고 걸으니 좋았다. 지하철에서 아침에 덜 잔 잠을 자느라 꾸벅꾸벅 졸았다. 김포 롯데몰에 도착했다. 지난번 생각해 둔 떡볶이 집에 가보고 싶었다. 아이도 좋다고 한다. 떡볶이와 볶음밥 하나를 주문하고 망고 에이드도 아이를 위해 함께 주문했다. 망고의 맛과 시원한 에이드의 맛이 좋았다. 아이도 좋아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떡볶이를 보면서 아이에게 잘 익은 떡 하나를 건네주었다. 조금 있다가 식으면 먹어~ 내가 먹기에도 약간 매운데 맛있다며 냠냠 먹었다. 볶음밥도 약간 매운데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어주었다. 망고 에이드도 마시면서. 오랜만에 느긋하게 단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떡볶이도 먹으니 그 시간이 행복하다 느껴진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또 저녁에 다시 그 시간을 생각하니 참 좋았다 싶다.

아이는 한 켤레의 신발을 매일같이 신어 너덜해져서 이번에 새 신발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늘 방문을 다니다 잠시 들르는 이 곳에서 점찍어둔 곳이 있었는데, 그 신발 가게 앞을 함께 가보았다. 어떤 게 마음에 들어? 물으니 하얀색 단색 운동화를 골랐다. 대번에 신어보자고 하고 230 주세요 했다. 신어보니 약간의 여유도 있고 쿠션감도 있어 마음에 쏙 들어했다. 나도 매일 신는 운동화만 신고 방문을 다니다 보니 많이 헤져서 이번 참에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검은색 운동화, 아이는 흰색 운동화를 함께 신고 매장을 나왔다. 아이가 말했다. 화이트 룩~! 이란다.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딸아이를 위해 몇 켤레씩 되는 운동화를 진열해주고 싶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이 운동화 하나로 매일매일 신고 다닐 거다. 하루 종일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한, 두 켤레는 더 사서 번갈아 신고 다닐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서점에 들렀다. 김포공항 롯데몰은 그나마 김포에서 발길 닿는 곳 중 제일 큰 서점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탈 때면 늘 방문하는 곳이다. 서점에서 나는 아이스 라테를 주문하고 아이는 책을 고르러 갔다. 우리는 늘 이런다. 아이는 책을 고르고 펼쳐보고 만져본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라테를 주문하고 아이가 고르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아이에게 손을 흔든다. 자연스러운 움직임. 편안한 모습이다. 엄마 이 책 사도 돼요? 원래 3권을 사기로 했는데 오늘도 권 수를 넘쳤다. Why 책 시리즈가 재미있다고 말하며 교과서 연계책이 나와서 그것도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위인전 인물 책도 사고, Go fish 게임 중 사회 국가, 인물 시리즈도 샀다. 3만 원이 넘으면 사은품으로 주는 액자도 받아왔다. 그리고 나는 내 책을 고르러 간다. 이미 전날에 알라딘 어플에서 점찍어둔 책이 있었다. 검색하니 서점에도 재고가 있어서 확인하고 살 수 있었다. 단 몇 줄만 읽어도 지금의 내 마음을 콕 찍어 읽어주는 것 같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아이에게 신나게 자랑한다. 엄마가 최근에 고른 책 중에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든다. 제일 마음에 들어~


등산을 온 것처럼 책이 든 내 백팩은 이미 거북이 등짝처럼 무거워졌다. 돌아오는 길에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거북이 등처럼 되었다고. 아이도 오는 길에 먹고 싶었던 수박 한 통을 사 오면서 미안했는지 수박을 같이 들자고 한다. 자기가 한 통을 두 팔로 껴안아 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나 수박이 먹고 싶었구나~ 집에 와서 좀 쉬고 싶었지만, 아이에게 수박을 잘라주고 실컷 맛있게 냠냠 먹는 모습을 보니 그래.. 수박이 정말 많이 먹고 싶었구나. 많이 먹어. 하영아. 속으로 생각했다. 둘째 아이도 언니 덕에 맛있는 수박을 얻어먹었다. 자신에게 커다란 수박 한쪽을 들고서 수박 즙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재미있고 웃겨서 또 사진으로 남겼다.

보기좋게 자른 수박의 즙을 기분좋게 먹는 둘째아이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오늘의 하루도 쏜살같이 흘러갔다. 나는 오늘 첫째 아이와 간만의 데이트를 했고 남편은 둘째 아이와 근처 카페에도 가서 데이트를 즐겼다. 각자의 데이트를 마음껏 즐기고 피곤했는지 남편은 지금 일찍 잠이 들었다. 이렇게 각자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또 4명이 저녁에 함께 모였다. 지금도 남편은 안방에서 잠을 자고 첫째 아이는 자기 방 이 층 침대에서 노트북 영상을 보고 나는 거실에 앉아 글을 쓰고 둘째 아이는 내 곁에서 동영상을 보고 있다. 하는 일은 모두 다르지만, 우린 또 오늘 가족의 시간을 느꼈고 가족의 사랑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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