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물어보는 편입니다.
늦게 시작해서 좋은 게 있을까? 첫아이가 1학년 입학하던 시기,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응애~ 응애~ 갓난아기와 늘 함께였고 더운 여름날에는 유모차에 태워 첫째 아이를 마중나가기도 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시키고(유일한 나의 낙원이었다!) 아이를 기다리기도 하고, 운동회 날에는 우주복에 꽁꽁 싸매어서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달리기 응원을 하러 가기도 했다. 지금 시기에는 회상하기에도 까막득한 오래전 일 같기만 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유치원다닐 때와는 다르게 아이는 일찍 온다. 보통 3~4교시를 하고 집으로 귀가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당연히 아이는 으레 통과의례처럼, 피아노, 태권도, 미술을 기본으로 친구따라, 학교 앞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방과후 놀 친구들이 없어서 학원에 가기도 한다. 엄마들은 학원을 알아보고 친구의 소개로, 추천으로 그렇게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나 역시 생각이 많았다. 그즈음 친하게 지낸 언니는 수학학습지를 시작했다고 했다. 진작에 해주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늦었다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내가 원한다면, 그리고 아이도 그런 과정과 학습이 필요하다면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시작해야 할까? 생각했다. 다른 엄마들은 여기저기 많이 보내고, 같은 반친구를 사귀고 함께 모여다니기도 했다. 나는 갓난아기와 늘 함께였고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왔다. 사실, 학원 하나를 보내는 데에도 쉽게 보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른인 나도 그렇다. 새로운 것을 하나 배우고 싶다고 한다고 아무곳이나 가서 등록하지 않는다. 상담을 받아보고 과정이나 비용, 분위기를 살펴보고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이다. 아이에게 학원을 보내는 데에도 좌충우돌을 겪었다.
다른 사람도 다 하는데.. 다른 아이도 하는데..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미술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전화를 상담예약을 하고 상담을 하고 아주 간단한 이유로, 친구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라는 생각으로 보내었다. 한두달 지났을까? 같은 반 친한 친구와 같이 다녀서 좋은 점도 있었다. 그런데 소묘, 데생 등으로 시작하는 미술수업 체계가 아이에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는 지루해했고 미술학원 가는 걸을 점점 싫어했다. 오늘 안가고 싶어.. 그래도 가야지~ 오늘만 다녀오자~
어르고 달래기도 여러번, 사실 내가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근처 주민센터에게 주민들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사실 미술을 시작하기위해 재료를 이것저것 사야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적은 비용이 아니다) 미술수업을 한다고 해서 등록했다. 40~50, 60대 넘는 어르신도 있었고 나와 같은 연령대도 있었다. 오래배운 사람, 나처럼 처음 입문한 사람 등등 다양한 연령대와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었다. 수업은 극도로 재미가 없었다.... 데생으로 시작하고 데생으로 끝나는.. 4B 연필로 주구장창 연습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긴 하지만 내가 원한건 그런 수업이 아니었다. 처음 성인미술이라서 등록은 했지만, 내가 원하는 류의 미술 스타일이 아니었던 거다!
2~3번 출석을 했을까? 바로 관두었다. 들인 비용을 생각하면 끝까지 해야했을까? 아닌 것 같다. 몇 번 가보면 내가 이곳을 계속 좋아하게 될지, 아니면 계속 가보았자 좋아지기는 커녕 미술과 더 사이가 멀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지 나에게 물어보고 행동했다. 내가 그렇게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되었다. 진도는 안나가고 매일 연필로 하라는 수업은 따분하고 재미없었을 거다. 아이도 나와 같은 성격과 스타일이었을까? 아이는 만들기를 원체 좋아했고 나처럼 아기자기 예쁜 소품을 다루는 걸 좋아한다. 그런 감각을 발견해주고 만들기를 하고, 아이의 눈이 반짝이는 곳을 찾고 싶었다.
3학년이 되었을 때 코로나의 영향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방학기간에도, 학교에 다니는 시기에도 온라인 수업을 듣고 늘 집에만 있었다. 일을 하느라 항상 같이 있어줄 수 없었다.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미술을 다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앞 새로 개원한지 얼마안된 미술학원에 발걸음 했다. 상담을 받았다. 가정에서 미술수업을 하다가 이곳에 개원을 했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미술작품이 있었고 다양한 색채와 재료들의 교구들이 나를 반겼다. 안경을 낀, 나와 연령대가 비슷해 보이는 원감님은 나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 아이가 스스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 나의 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 만들기와 꾸미기를 좋아하는 성향, 그리고 학원의 과정, 커리큘럼 등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엇보다 아이의 성향을 반가워하며 잘 들어주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고, 학원에서 수업하는 방식이 나와 아이가 원하는 방식과 너무 잘 통하여 바로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뒤로 아이는 미술학원 가고 싶어~ 오늘은 사과를 마무리 하기로 했어~ 해맑은 소리로 미술 주제를 이야기하고 선생님이 BTS노래를 좋아한다고 종알종알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양한 재료(점토나 클레이)를 이용해서 마스크거치대를 만들어 오기도 하고(도자기 구워야 해서 한달뒤에 받아왔다) 클레이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와서 보여주기도 했다.
만약 가기싫은 곳을 억지로 강요에 의해 계속 가라고 재촉했다면 아이는 아마 미술과는 멀어졌을거라 생각한다. 3학년에 시작하면서 아이는 만화,그림, 다양한재료에 눈을 뜨고 있었고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는 것은 큰 행운이고 소중한 경험이 된다. 오히려 저학년 시기에 잘 모르고 지나갔던 것들이 지금 시작해서 마음에 와닿고 눈길이 닿는 것이 아니었을 까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다. 7살부터 10살까지? 이 역시 통과의례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배워야 하는 것 중 하나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때는 피아노 교재는 거의 정해져있었다. 초급 바이엘, 하농, 소나타, 오래 배우면 체르니.. 보통 체르니 100까지는 배우고 많이 관두는것 같다. 그 당시 내가 저학년인데도 피아노를 그래도 꾸준히 배웠는데, 부모님이 피아노를 선물로 사주었다. 중간에 그만두어서 제대로 배우진 못했고 그 뒤로 피아노 악보, 반주책을 보고 피아노를 치는 데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페달 밟는 방법 조차 배우지 못했다. 이후 나는 대학병원 간호사를 할 때, 교대근무 짬짬이 시간을 내어 집 근처 피아노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 때 아마도 페달을 배웠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치는 소리를 좋아했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내가 피아노를 치면 엄마는 좋다고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에 시간이 날 때마다 반주책을 보고 피아노를 치곤 했다.
사실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좋았던 기억보다는 집에서 칠 때의 기억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1학년이 되어도, 2학년이 되어도 피아노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복작복작한 수업실에서 너무나 많은 학생들 틈에 끼어 수업을 들었던 어릴 때의 기억은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 학교 근처에도 피아노 학원이 많다. 상담을 받으러 가기도 했었는데, 내가어릴 때 배우던 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학생들이 왔고 일대일보다는 테스트하는 식으로 짧게 짧게 지도하고 연습하고 집에 갔다. 콩나물 시루처럼 한 교사가 너무 많은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상황이 꼭 보내야 해? 보내야 할까? 내 마음에 진심으로 와닿지 않았다.
상담을 하러가면 아이의 의견을 꼭 물어보는 편이다. 아주 어릴 때는 엄마의 생각과 주관, 의견으로 따라가지만 7살이 넘어가면서 아이의 의견을 듣고 학원을 보내거나, 관두기도 했다. 내가 느낀 생각과 비슷하게 아이도 느끼고 있었다. 남들이 다 하니깐, 남들도 다 하는데~ 내 아이도 보내기는 싫었다. 물론 학원에 가면 많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고 매일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학원에 보내고 싶은게 엄마 마음이었다.
고심하다가 또 다른 곳을 발걸음 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에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편 거리에 있는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이었다. 아이와는 (코로나이전에) 자주 다니던 작은 도서관이 있는 위치의 건물이었다. 생긴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고 아이도 학교 앞 보다는 거리가 있는 곳을 원한다고 했다. 오히려 피아노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인데, 같은 학년 3학년의 아는 친구들이 자기보다 잘 치거나 훨씬 많이 진도를 앞서 나가고 있다면 마음이 어떨까? 빨리 시작하는 게 좋은게 아닌 것을.. 하지만 자주 만나고 옆의 친구가 치는 것을 계속 보게되고 나는 왜 자꾸 틀리지? 나는 도.레.미 부터 시작하는데 친구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들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는 친구들이 많은 학교 앞보다는 거리가 떨어져도 오히려 모르는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다니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에 나도 동의했다.
집에서 도보로 10여분이 걸리는 거리이고 가는 중간에 신호등 횡단보도도 건너야 해서 매번 같이 갔다가 올수 없는 상황에 결정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O샘 피아노학원의 원장님을 만나보고 함께 처음 왔을 때 아이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아이에게 말을 하고, 아이의 손길을 피아노와 접목시키는 모습을 보고 나는 굉장히 인상에 남았다. 보통의 대다수의 피아노학원에 가면 레퍼토리 대로 제일 초급 피아노교재를 가지고 짜여진 각본대로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세련되고 말끔한 차림새의 남자 원장님이 직접 아이의 손가락과 피아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면서 진심으로 아이를 일대일로 마주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옆에서 아이가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하나하나 수줍지만 따라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안심했다. 나의 느낌대로 아이는 피아노학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닌지 250일이 되어간다고 며칠 전 아이가 말했다. 그런것도 기억하고 있었어? 내심 놀랍고 고맙다. 함께 가주었을 뿐인데. 그리고 오며가며 10여분의 거리지만 초반에 함께 갈수 있는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란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오며가는 길이 즐거웠다고 이야기를 했다.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매주 두번씩 가는 아이의 보금자리다. 늘 무언가 배운다는 것은 설레기도 하면서 때로는 부담으로 느껴질때가 있다. 어느 부분이든 꾸준히 배우고 연습하면 계단식의 모양대로 부쩍 한단계씩 성장하는 시기가 온다. 내 아이를 바라볼 때 나는 매번 느낀다. 연습을 하고 싶다고 하며, 진짜 피아노 대신 연습용 전자피아노를 집 한켠에 마련해두었다. 피아노와는 다르게 건반자체가 얇고 가벼워서 오리지널 피아노를 치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매일 피아노 앞에 붙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칠 때 기분좋아하고 또 새로운 곡을 배워 새로 연습하다 부딪히는 날에는 잘 안된다고 하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또 피아노 앞에 앉는다. 이런 모습에는 나는 아이의 끈기를 보고 관심을 느낀다.
아이가 말할 때 까지 기다려주었다. 뭐든 내가 알아서 상담받고 결정하고 아이를 보내면 될 일이지만, 아이의 의견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아이가 다니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집에서 마냥 놀아도 보았고 지루한 시간을 지내도 보았다. 엄마가 집에 없으니 심심했을 것이다. 메마른 땅에 시원한 폭우가 내려 땅을 촉촉히 젖어주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에도 맑고 시원한 샘물이 퐁퐁퐁 샘솟았다. 그것이 피아노와 미술을 배우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 잘하고 싶은 갈증, 더 많이 알고 싶은 갈증을 아낌없이 적셔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내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혼자서 갔고 또 집에 오면 피아노 앞에 앉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엄마가, 아빠가 아이의 성향과 스타일을 잘 안다. 그리고 부모의 관심이 아이의 관심을 증대시킨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나이, 호기심이 마구마구 샘솟는 나이, 바깥에 가고 싶지만 친구를 제대로 만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빨리 배우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내 아이처럼 느리고 천천히 배우는 아이가 있다.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수학 문제를 빨리 못풀거나,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앉히기도 많이 했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기 싫다고 했고 숙제이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강제성도 필요했다. 내 아이를 가르치면 사이가 많이 멀어진다고 한다. 온라인을 매일매일 하는 상황에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이를 앉히고 정해진 페이지까지 풀도록 했다. 눈물을 흘려도 해야하는 건 해야 하는 거니까. 자유로움에는 어느정도의 의무도 필요하다.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아이와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나역시 너무 소모되지 않게 엄마와 딸 사이에 조금씩이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잔소리도 하고 강요도 하고 자유로움도 주었더니 지금은 어느정도 자신의 시간을 지켜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수학과제나 학습지도 너무 힘들어하고 싫어하더니 지금은 많이 틀리고 연습해서인지 눈에 띄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수학문제처럼 많이 틀려보아야 보인다. 다시 풀면 되고 다시 하면 되니까. 인생의 경험도 그렇다. 많이 틀려보고 많이 부딪혀보는 40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이에서 전보다 조금씩 성장하는 내모습이 보인다.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고 연습해보는 과정, 그리고 틀려도 좋으니 지금 잘 안보여도 좋으니 일단 한번 해보는 거지뭐. 그냥 걸어도 보는거고 뛰어도 보는 거지. 처음은 아주 간단히 가볍게 시작하는 게 좋다. 내 아이가 미술학원에 가게 된 계기가 친구를 만나서였고,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였으니까.
나이 마흔에 어쩌면 조금더 일찍 나도 피아노를 다시 배울지도 모르겠다.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 단지 그 이유 뿐이다. 요즘처럼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날, 필사를 시작했다. 글쓰기가 막히고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준비가 된 시점에 내 마음이 동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더 애틋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조금더 윤곽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 아이가 그랬듯이,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나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