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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Aug 07. 2020

엄마가 이해되는 나이, 그리고 그런날

철저한 고독을 맛 본 오늘

유독 힘이 들었다. 비가 참 많이도 왔다. 서울의 올림픽 대로도 넘쳐나는 빗줄기로 차단이 되었다. 환자의 집을 가려다가 여기도 막혀, 저기도 막혔다. 그런 와중에 네비게이션도 길을 잃었다. 올림픽 대로는 막혔는데 (경찰이 떡 하니 지키고 있었다. 못 들어오게.) 다른 길을 알려주지를 않는 것이다. 이런.. 맙소사. 환자의 방문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비는 오고 길은 막혔다. 헤매고 돌고 돌았다. 1 키로가 5키로가 되고 10키로 되었다. 그나마 가까운 길이라 생각했는데 돌고 또 돌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김포로 가는 버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 길로 따라가다 보면 네비게이션도 제대로 길을 찾아주겠지? 생각했다. 김포로 가는 익숙한 6427 버스 뒤 꽁무니를 졸졸 따라갔다. 운전이란 건 참 피곤하다. 온갖 신경을 집중해야 하니 말이다. 그 날처럼 비가 억수로 퍼붓고 길을 헤매는 날은 더욱 그렇다. 그렇게 버스를 따라가다보니 마침내 나가는 길이 나왔다. 아휴. 정말 다행이다!


비는 퍼붓고 내 마음도 퍼부었다. 어제는 철저한 고독을 맛 본 날이었다. 깜깜한 저녁 길, 퇴근 길이었다. 하루종일 아주 머나먼 길을 여행했다. 비도 온 덕분에 길을 막히고 가까운 거리를 2배, 3배 되는 외곽 순환도로를 따라 빙 둘렀다. 100키로만 충분했을 거리일 텐데, 오늘 하루 500키로는 족히 뛴 것 같다. 아. 맙소사.

사무실로 가는 오전 출근길부터 말썽이었다. 경기도 김포 끝자락에 사는 나는 사무실을 가려면 일찍 나서야 한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본사 사무실은 자주 가기 어려운 거리다.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한 나는, 인천은 거쳐 산본, 군포, 과천을 빙 두르는 거리를 장거리 여행을 했다. 가까운 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도로를 통제해서다. 가끔 네비게이션은 나에게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이 길로 가면 될 것 같았는데, 전혀 생뚱맞은 새로운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빠르고 편한 길을 안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아는 길이라면 찾아 갈텐데 요즘 같은 날씨에는 더욱 믿을 수가 없다. 한꺼번에 차량이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대로 가니 더욱 그럴 것이다.


김포에서, 강남사무실로, 그리고 오후 방문은 경기도 일산으로 또 외곽을 주욱 빙~ 둘러서 장거리 질주를 계속했다. 할 일을 마치고 나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진다. 일산에서 서울 관악구 환자의 집으로 방문해야 하는 거리. 한 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거리가 30분, 1시간 연이어 이어진다. 환자에게도 문자를 보냈는데, 30분만 늦을 것 같았던 거리가 족히 한 시간이 더 넘게 걸렸다. 보호자에게 전화가 올까봐 조마조마하다. 더군다가 카페에서 사 먹은 커피의 신호가 온다. 찌리리.찌리리. 정체된 거리는 만만치 않다. 조금더 빠른 길을 네비게이션으로 재 설정해보지만, 여기도 막히고 저기도 막힌다. 배관을 확 뚫리길 바라는 마음처럼, 길이 뻥 뻥 뚤리기만을 바랬다. 그마저도 나에게는 사치였다. 화장실을 가고 싶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급한 신호가 왔다. 이럴 때는 괜히 커피를 마셔가지고! 란 말이 절로 나온다. 안 되겠다. 일단 어디라도 찾아봐야 겠기에, 지난 번 경험(정말 쌀 뻔했다!) 을 더듬어내며 제일 가까운 주유소를 경유지로 찍었다. 마구마구 달리고 싶은 나의 마음은 외면당한 채 도로는 더욱 꽉 막혔다. 주유소까지는 2키로 남짓 남았는데 몇 십분이 그냥 후다닥 지나갔다. 


한 시도 편안한 날이 없던 오늘 하루였다. 저녁 방문이 늦었지만, 다행히 환자와 보호자는 너무나 너그러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서울 관악구 깊숙한 골목, 찾기어려운 집 위치에 있어서 나를 마중나와준 보호자가 고마웠다. 나의 설명을 정성껏 들어주고 나 역시 무호흡이 심한 환자에게 상세하게 정확히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부터 편안하고 깊은 숙면을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가는 길까지 찾아가기 어렵다며 카트를 밀어주시는 보호자에게 감동받았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 마음이 가볍다.

화장실을 급하게 찾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마지막 방문까지 끝냈다. 주차를 한 곳으로 가니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차를 빼달라고 자기에게 전화가 왔단다. 이 아저씨가!! 정말? 주차요원이 8시까지는 오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답변한 상태였는데 그 사이를 못참고 남편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그 분은 일찍 퇴근이 하고 싶으셨나보다. 깜깜한 저녁길, 또 돌고 돌아가는 길, 저녁시간은 이미 늦어졌다.

아이들 생각도 나고 남편 생각도 난다. 엄마 생각도 난다. 캄캄한 거리, 어두운 도로를 눈을 반짝이며 손을 꽉 쥐며 운전을 한다. 녹록치 않은 거리다. 서울, 경기 지역을 통틀어 돌아버린 오늘이었다. 인천의 외곽도로를 한없이 운전하면서 철저한 고독을 맛 본 오늘이었다. 캄캄한 터널에서 차의 반짝이는 등만을 의지한채 한 곳을 바라보며 나는 차를 몰았다. 


비 오는 날 발 밑을 조심하세요!

운전으로 한없이 몸이 무겁고 지친 오늘.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아이들 생각이 났다. 이미 남편은 도착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기로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두어야지. 내일도 사무실행이라 늦게 오는 날이 될 것이다. 아이는 방학이라 온 종일 집에 있으면서 간식이라도 먹여야지 생각했다. 핸드폰은 들여다보며 비가 와서 축축한 거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솜 처럼 푹 젖어있던 나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걸으면서 서서히 펴지는 기분이다. 너무 화면에 집중했던 걸까? 뭔가 물컹~ 한게 밟혔다! 응? 뭐지? 뒤돌아보는데, 아뿔싸! 살색의 아주 커다란 지렁이가 꾸불꾸불 한 껏 몸을 뒤틀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지렁이를 밟은 건가? 으악!!!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이, 속으로 삼켰다. 지렁이를 밟다니. 그 물컹한 느낌. 생각난다.


이전 엄마와 차를 타고 컴컴한 도로를 달릴 때였다. 엄마가 운전을 했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던 걸로 기억난다. 그날도 비가 왔었는지 도로가 젖어있을 때였다. 자동차를 몰고 가는 데 물컹한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차가 도로를 달리는 도로에 개구리가 있었다! 차를 통해 온전히 느껴지는 물컹한 느낌. 그리고 감정. 그 기분을 오늘 제대로 다시 느꼈다. 비오는 날은 정말 발 밑을 조심해야겠다.


남편은 코를 골고 아이들은 안자고

아이들이 다가와 반겨준다. 엄마 엄마! 부르는 이쁜 나의 아이들 그리고 남편. 엄마를 하루 종일 기다렸을 아이들을 한껏 안아주고 비에 온통 장거리운전으로 땀에 흠뻑 젖은 나의 몸을 제대로 펼 시간이었다. 땀에 젖은 옷들을 벗었다. 뒤늦은 저녁, 아니 많이 늦은 저녁. 편의점에서 사온 캔터키 소시지를 꺼낸다. 설명서를 보니 뜨거운 물에 담그란다. 기름으로 튀기는 것 보다 삶는게 건강에 좋으니까! 끓는 물에 소시지를 담근다. 둘째 아이 입에 살포시 넣어주니 냠 냠 잘도 먹는다. 한 개, 두개, 그렇게 먹어댄다. 배가 고팠나보다. 첫째도 소시지를 맛보더니 맛있게도 먹는다. 내일 아침도 이걸로 준비해두어야 겠다. 


그 사이 남편은 코를 곤다. 남편은 매일 강남에서 김포로 출퇴근을 한다. 기사를 보니 비가 많이 와서 자차운전도 운전이지만, 덕분에 대중교통 인원이 늘어 지하철도 사람이 더없이 많이 붐볐다고 한다. 남편도 힘들었겠지. 나만큼 온 힘을 다해 바깥에서 일을 하는데, 힘이 들겠지. 새로산 구두 뒤축이 발 뒤꿈치를 찔러 살이 움푹 파인, 남편의 발. 가장의 무게와 책임감이 전해진다. 남편은 드르렁 코를 골고 첫째는 아빠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자겠다며 나온다. 자신의 방으로 가서 이층침대에 누운 첫째. 수면등을 켜고 책을 보며 잠을 청한다. 잘 자라 딸~


지금도 한 때가 되겠지. 하루 24시간 중 유일한 나의 시간, 그리고 엄마가 이해되는 그런 날이다.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시간이 부족한 엄마였을 것이다. 나도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그리고 아이들로 또 하루의 기운을 선물받는 기분이다. 하루가 지나가면 또 다른 하루가 온다. 오늘은 해가 뜨고 뽀송뽀송하게 펴진 마음과 몸으로 기지개를 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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