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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Jul 29. 2020

일단 한 줄부터 쓰자.

엮어야 보배다

하얀색 여백과 커서. 글을 쓰려고 할 때 제일 처음 마주치는 녀석들. 무슨 말을 할까? 무슨 말을 쓰지. 고민하다가도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하얀색 바탕 위에 녹아나는 내 글씨를 한 글자, 한 줄 적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준다면, 나의 감정과 마음을 끄덕끄덕하며 들어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누가 알아주건 몰라주건 이 곳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나의 보잘것 없는 글을 보고 배울 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글쓰기에 관한 짧은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다.


글쓰기는 엉덩이다

묵직한 엉덩이다. 아주 무거운 엉덩이여야 한다. 아침 출근길이긴, 퇴근길이긴 카페에 자주 들렀다. 노트북에 전원선을 연결할 수 있는 자리를 잡는 것 부터 시작했다. 왜냐하면 한 번 앉으면 1~2시간은 버티어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도 몰랐는데, 글쓰기 책에서든, 책쓰기 수업에서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좀 긴 문장들이 필요했다. 이전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끄적인 적도 있었다. 그 때는 정말 내가 그래도 글을 꽤 잘 쓰는 줄 알았다. 어느 눈 밝은 편집자의 눈에 띄이기를 간절히 원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허황된 바램이었다. 나의 글은 간결하고 짧았다. 그저 한 번, 두 번 생각낼 때마다 끄적인 것이 전부였다. 내용 자체가 짧았다. 책으로 한 권을 엮기 위해서는(아무리 간단한 에세이집이라도) 어느정도의 글의 분량이 많이, 어느 경우는 아주 많이 필요하다. 생 날 것의 글을 편집자에게 들이미는 순간, (내용이 좋다면 일단 오케이는 받을 수 있지만) 어마어마한 가지치기가 들어갈 수도 있다.


글쓰기는 가지치기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두서없이 적는다. 이런 글, 저런 글, 이런 말, 저런 말, 이상한 대화체도 그냥 막 써붙인다. 물론 모든 책을 쓸 때 그렇지는 않지만, 이 곳에 쓴 글은 그랬다. 그저 날 것의 아무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로 출판사에게 들이밀었다. 내용과 구성만을 봐주세요~ 하고 그 몰골로 들이밀었는데, 어쩌다보니 (정말 감사하게도 이런 누추한 나의 글을 알아봐주시고) 계약까지 이르게 되었다. 글쓰는 일은 묵직한 엉덩이로 일단 한 단어, 한 줄, 한 문장, 한 단락, 한 페이지를 이끌어냈는데 이제는 편집과정이 들어가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모든 출판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작가에게 적용되는 것 또한 아니다. 어느 책은 거의 수정사항이 없이 나오기도 하고, 또 어느 책은 정말 많은 가지치기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 계약한 원고를 다듬으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많이 들었다. 글쓰기는 가지치기다. 두서없이 내 멋대로 흐르는 생각을 적었을 뿐이지만, 이런 나의 글이 탐탁치 않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책이란 가치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쨌든 독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고, 독자의 생각과 공감을 얻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첫 글들을 보면(물론 개 중에선 꽤나 잘 적었네, 오! 좋아. 하는 글들도 가끔 눈에 띄이지만) 대부분은 아무 상관없는 글을 이어 붙이기도 했고, 이런 걸 독자가 궁금해할까? 싶은 내용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매일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잔가지, 조금 큰 가지들을 툭툭 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가장 나다운 것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무얼까 생각해보았다.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던 요즘이었다. 두 아이의 안전과 끼니를 챙기면서 집안일을 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고 또 퇴근해서는 다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다. 24시간 중 유일하게 내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은 글쓰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아, 그때 기분이 정말 안좋았겠다.

너 괜찮니?


나를 있는 그대로 꺼내보이는 것, 그건 바로 글쓰기였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나와 대화하는 시간에는 그리 외롭지 않았다. 일이 고되고 힘들때, 환자에게 기분 안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머릿 속이 뒤죽박죽 일 때, 가슴이 답답하고 공허한 기분이 들 때 나는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나에게 내 일상을 토로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글을 썼다.


글쓰기는 내려놓음이다

있는 척 해보이지 않고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게 글쓰기였다. 사진으로는 온갖 휘황찬란한 부러움을 자아내는 순간들이 있다. 멋스러워 보이는 공간, 화목해보이는 가족들, 고급스러운 옷과 신발들. 겉으로 화려해보이는 사진들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과 싸우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겪는 매일의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나의 직업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으며, 나의 일상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글쓰기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부끄럽지만, 민망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꺼내보이기로 했다. 나의 주관과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알고,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음을 알기에 그저 나를 공감해주는 단 한사람을 위해 나를 꺼내보이기로 했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나의 있는 일상을 그대로 꺼내보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진 않을까' 글을 적다가도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그저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와 같은 사람도 있음을 글로 적어내려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면 솔직한 글쓰기를 할 수 없다. 살다보면 속상한 일이 참 많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실수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일을 하다보면 '아, 그때 그렇게 할 걸..'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상의 매 순간이 실수투성이 인데 좋게 포장해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실수투성이고, 말을 잘 못한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말하는 기술 또한 늘었는데, 언젠가 한번은 엄마가 나에게 말을 잘 한다고 칭찬해주었다.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적나, 노트북만 바라보면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일단 한 줄이라도 시작하니 두 줄이 되고 세 줄이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를 정도로 커서의 움직임이 빨라지기도 했다. 편집이야 나중에 생각하고, 가지치기는 추후에 생각하고 그냥 내 있는 멋대로 떠들었다. 바로 글쓰기로.


어제도 두 아이를 친정에 맡겨놓고 오는 길, 기차에서 이 글을 적기 시작했다. 기차에서 노트북을 켜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커서의 깜빡임을 따라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글을 썼다. 아이를 돌보아주시는 부모님 생각도 하면서 , 엄마를 기다리는 딸아이 생각도 하면서 기차에서 눈물도 흘렸다. 어느 공간에서건 나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 있는 것 같다. 기차에서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일상의 잔잔한 호수 속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적어놓는다. 그 줄을 따라 나는 엮어가기만 하면 된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공간을 찾는 것도 좋다. 나에겐 그 곳이 카페였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글을 적었다.

나는 온라인서점에 신간 들여보기를 참 좋아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책을 놔두고 이 책 저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차에서도 움직이는 떠다니는 생각 꾸러미를 적어놓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소스가 되고 레시피가 된다. 글을 쓰기 위한 레시피다. 오늘은 무얼 만들까? 어떤 글을 탄생시킬까? 이 모든 과정의 바탕에는 내 삶이 녹아져 내려있다. 그 바탕의 본연에는 나의 경험과 삶이 함께 어우려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 살아봐야 한다. 더 많은 다채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나의 글쓰기도 더욱 다채로워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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