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기도, 그 사이

기도와 노력, 둘 중 무엇이 삶을 이끄는가

by 정둘





1. 오늘의 질문

보통 교회를 다니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기도했더니 ~에 합격했어요’

‘기도했더니 문제가 해결됐어요’


난 교회에 다니지만, 솔직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반감이 생겼다.

그 사람이 합격한 건 하루에 4시간씩 자고 몸에 카페인을 쏟아부으며 공부했기 때문이고,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던 건 남몰래 흘린 눈물과 치열하게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앉아서 기도만 해서 된 게 아니란 말이다!


난 왜 이토록 위의 발언에 반감이 생긴 걸까?

‘기도’의 결과로 합격했다면, 그 일을 이루기 위한 개인의 노력은 헛것이란 말인가?

개인의 피나는 노력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게 못마땅했다.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기도를 들어주는 신은 어떤 생각인 걸까? 기도만 하고 살라는 건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어떤 일(시험 합격, 문제해결 등) 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혀야 한다.


사건을 발생시키는 건 기도(외부적인 요인)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노력하거나 포기하거나) 때문일까?




2. 책에서 발견한 것

C.S. 루이스의 책에서 한 예시가 나온다.


“가엾은 여자야. 사람들이 저렇게 말할 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어. 저 여자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아들이 아른험 전투에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해. 그녀의 아들이 살아남은 진짜 이유는 그가 총알에서 약간 오른쪽 내지 왼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건 너무 무정한 일일 거야. 그 총알은 자연법칙이 정해준 노선을 따라가고 있었어. 그를 맞출 수 없었지. 그는 우연히 총알의 경로 바깥에 서 있었던 거야…. 그날의 모든 총알과 모든 포탄 파편에 대해서도 그랬지. 그의 생존은 그저 자연법칙 덕분이었다고.” -피고석의 하나님 <챕터 8. 자연법칙>


위 예시를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어떤 여자가 자신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건 자신의 기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걸 들은 상대방(화자)은 속으로 생각한다.

‘ 그건 기도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이 운 좋게 약간 옆에 서 있어서 총알이 빗나가 살 수 있었다고’


Q. 여기서 여자의 아들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A. 총알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총알이 빗나갈 때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여자의 아들 위치

-방아쇠를 당긴 총잡이의 위치

-바람의 방향

-총알의 궤도


대략적으로 나열해 보면 이 정도 될 것이다. 그럼 각 요인들 중 자연법칙에 해당하는 게 무엇인지 밝혀봐야 한다. 우선 여자의 아들위치는 그 아들의 움직임에 따라 달려있으므로, 자연법칙이 아니다. 이건 한 인간의 자유의지다. 두 번째로, ‘총잡이의 위치’ 또한 그 사람의 움직임이므로, 자유의지다. 세 번째, 바람의 방향은 자연이긴 하지만, 어떤 법칙이 아니라, 그 순간에 일어난 외부적 요인으로 봐야 한다. 네 번째 총알의 궤도 자체는 자연법칙이다. 바람이 불지 않고, 외부적 방해가 없는 중력만 받는 상태라면 말이다. 하지만 총알이 날아가는 순간 바람이 불거나, 총잡이의 자세가 흔들린다던가 하는 외부적인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총알이 날아가서 여자의 아들을 맞추기 위해선 자연법칙 외에 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개입되지 않은 예시에선 어떨까?


당구공 A와 당구공 B가 있다고 하자. 이때 파도가 쳐서 배가 흔들려 당구공 A가 B를 친다.


이 예시에서 보이는 자연법칙은 ‘당구공 A가 잃어버린 운동량은 B가 얻은 운동량과 정확하게 일치한다’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물리법칙이 당구공 A를 움직이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리법칙은 하나의 틀로써, 당구공이 서로 부딪히는 ‘사건’이 발생한 후 당구공이 따르는 ‘패턴’이다.

그리고 사건을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아무리 외부적인 요인을 제하려고 해도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사건의 트리거로 당구채를 손에 든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파도라는 자연물을 끌어들여와도 사건의 일으키는 건 여전히 외부적인 힘이다. 왜냐하면 파도는 자연물이긴 하지만, 바람의 방향과 세기, 다른 파도의 영향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자연법칙’은 사건 자체를 일으키는 트리거로서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이는 사건 이후에 작동하는 ‘패턴’ 이자 ‘틀’로써 존재함을 알 수 있다.




3. 내가 빠졌던 오류

초반에 제시했던 화제로 돌아가보면,


‘기도했더니 ~에 합격했어요’

‘기도했더니 문제가 해결됐어요’


이 문장을 오늘 배운 내용인 자연법칙과 외부적인 요인으로 나뉘어서 살펴봤다.

여기서의 자연법칙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절대적인 시간과 공부량이 필요하다.’이다.

그렇다면 외부적인 요인은 뭘까?

평소에 미친 듯이 공부했지만, 시험 당일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실력 발휘를 못 할 수도 있다.

또는 지나치게 긴장을 많이 해 실수를 많이 할 수도 있다.

또는 시험장에 신경 쓰이는 무언가가 있어서 집중을 못 했을 수도 있다.


좋은 성적을 위해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지만, 그 외에 예측과 통제가 되지 않는 변수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건 자연법칙 외의 영역이다.


내가 오해한 것은 ‘기도했더니~’라는 말에 내포된 의미였다. 마치 열심히 하지 않아도 기도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자연법칙을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도’라는 건 인간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적인 변수, 설명 불가의 영역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언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글의 초반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사건을 발생시키는 건 기도(외부적인 요인)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노력하거나 포기하거나) 때문일까?


어떤 ‘사건’과 관련된 요인을 살펴보면 크게 2개의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 축은 자연법칙이라는 축이고,

또 다른 한 축은 외부적인 요인으로써, ‘기도’와 같은 초월적 외부요인과 ‘운’이라 일컬어지는 자연적 외부요인이 속해있다.


위 질문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의 관계에 있지 않다. 자연법칙이 아래에, 그리고 외부요인은 이 자연법칙에 ‘개입’한다는 구도로 보는 것이다.

즉 자연법칙은 모든 현상에서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질서이고, 외부요인은 이 질서의 흐름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보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4. 지금의 삶에 적용해 보기

소위 말하는 성공에도 어떤 법칙이 있다.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절대적인 시간

-노력의 양

-실패의 양

-인내의 양

-유혹에 빠져본 경험

-올바른 방향성

-운

-네트워크

-자기 성장


이 모든 걸 알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이뤄내는 사람과 이루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의지가 약해서, 유혹에 약해서, 주변 사람들 소리에 휩쓸려서, 자신에 대해 확신이 부족해서, 당장 생계가 시급해서, 두려움에 빠져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빠졌다 하더라도 다시 올바른 노선을 타는 사람이 있다.

진실한 친구의 조언, 책에서 만난 멘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강사의 강연 등 다양한 리소스를 통해서 극복할 방안을 발견하고 다시 노선에 오른다. 이건 변수다. 사람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건 자연법칙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외부적 개입이다.


그렇게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운’이 좋았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건 디폴트다. 이건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운이 좋았어요’는 겸손한 척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다. 진짜였던 것이다.

'운이 좋았어요'라는 말속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던 많은 변수들이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줬다는 의미가 담긴 표현이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다는 말은 겸손이 아니라 진짜 현실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 힘과 운의 여백, 그 사이에 놓인 나의 하루를

진심을 다해 살아가는 것

결국 그것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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