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0월 9일
나는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집에서 막내로 컸지만, 성장과정에서 '조율자'역할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을 살피기보단, 눈앞에 벌어진 사건과 사건의 당사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감정은 늘 배제되어 있었다.
가정환경은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런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나의 패턴에 대해서는 개선할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인 패턴 파악을 위해 상황을 순서대로 나열해봤다 봤다.
사건이 터진다 →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각각 듣는다 → 사건을 파악한다 →당사자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름 이 상황을 해결해 보려 조율자 역할을 한다(벅참)→조율에 실패한다 →상황이 악화된다 →'내가 뭘 잘못했지' 생각한다.
대략 이런 패턴인데 여기서 발견되는 문제는 '타인과 나 사이에 그 어떤 선도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나는 사실 이 사건에서 빠져 있어도 된다. 더더욱 그게 집안에서 막내라면 말이다.
하지만 가족인지라, 당사자들은 나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 사건에 관여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상처받은 영혼은 내가 뱉는 단어 하나에도 감정이 상해 대화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난 너무 벅찼고,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내 기분과 감정은 어떤지에 대해서는 늘 뒷전이었다. 내 의도와는 달리 악화되어 버린 이 사건을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사건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 갈 때 안도감의 한숨은 쉬지만 내 기분이 묘했던 건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방치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나의 반복되는 이 패턴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떠오르는 생각은 '선을 긋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과 할 수 없는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타인이 나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려고 할 때, 혹은 내가 지나치게 타인의 문제에 간섭하려고 할 때 모두에 해당된다. 그럴 때 스스로 외치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그 이상 침범을 하면, 상황은 상황대로 악화되고, 나는 나대로 방치된다.
선을 긋고 생긴 여유공간으로 내가 해야 하는 건 하나다.
'나를 챙기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솔직히 어떤 생각이 들어?'
'지금 기분이 어때?'
'불안한 이유가 뭘까?'
사건과 타인들만을 향했던 나의 레이더를 자꾸 내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나의 새로운 패턴을 정리해 두어야겠다.
1. 시끄럽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일단 멈추는 것.
2. 그리고 모든 상황으로부터 선을 긋는 것. (타인이 나에게 기댈 때도, 내가 지나치게 관여하려 할 때도 stop)
3.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보는 것. (감정과 생각에 대해 질문하는 방법으로)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자꾸 연습해 나가야겠다.
오늘의 칭찬일기.
1. 오늘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마음이 좀 복잡했다. 그래도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니 생각이 정리되는 듯하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내가 나 자신과 사이가 좋다면 뭐든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신경 쓰이는 여러 가지로부터 선을 긋는 것. 지금 나에게 필요한 태도다. 그것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는 남은 에너지로 나 자신을 돌봐야겠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오늘 밤엔 바나나킥 하나 사서 영화 한 편 봐야겠다.
2. 오늘까지 연휴지만, 내가 일하는 빵집은 오늘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연휴라 그런지 손님이 없을 거란 생각과 다르게 사람이 많았다. 퇴근 시간 넘어서까지 일이 안 끝나긴 또 처음이다. 오늘 연휴인데 아르바이트 다녀온다고 고생 많았다 나 자신!
3.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를 다녀와서 영어공부를 곧잘 하다가 캐나다행을 포기하게 되면서 영어공부에 손을 놨었는데,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한다는 쪽으로 접근하기보단 친구를 사귀는 쪽으로 시작해 봐야겠다.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나 칭찬해!!
의도치 않게 약간 우울한 일기가 된 것 같다.
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하며 스스로 다독인다.
그럼 나는 이만 나를 챙기러 마트로 가봐야겠다.
(바나나킥은 정말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