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일기 2-10. 내 몸은 알고 있다.

25년 10월 17일

by 정둘



얼마 전부터 불쑥 등장한 단어가 있다.

그건 바로 '시험'이다.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어떤 공공기관 직무를 소개받았다.

이 지인은 지금 그 직무에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데, 여자가 일하기 너무 좋다며 나에게 정말 추천해 준다고 하면서 알려줬다.


난 그런 직무가 있는지도 몰랐고, 공공기관이나 공무원 이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이토록 본인 직무를 추천하기란 쉽지 않은데 하는 마음에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정보를 수집했다. 이쪽 분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도 시험을 준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정보를 다 알려주는 친구한테 고맙기도 하고 이렇게 든든한 조력자가 있으니 괜히 시험을 보지도 않았는데도 합격할 것만 같았다.


이때부터였을까.

요 근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머리가 계속 아팠다. 밤에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2시 넘도록 잠이 안 왔다. 눈을 감아도, 음악을 들어도, 설교를 들어도 잠이 안 왔다. 그래놓고 아침 6시에 일어나 수영을 가니 잠이 부족해 머리가 아픈 건 당연했다. 조금만 해도 몸이 무겁고 숨이 일찍 차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원래 수영하면서 단 한 번도 수업이 힘들어서 언제 마치지 하고 시계를 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빨리 마쳤으면 하는 마음에 시계를 봤다. 분명 내 컨디션에 문제가 생긴 건 맞았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일기에 썼다시피 연휴 후유증인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쯤 드는 생각은 아마 이 '시험'을 준비하기로 한 결정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호주에 있으면서 내가 결심한 게 하나 있다.

'다시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지 말자'


나는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내 에너지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는데,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잘해내고 싶은 맘에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 다 써버린다.그러니 당연히 퇴근을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서 안다. 나는 직장생활과 내 일을 병행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퇴근 후 자기 계발하시는 분들 정말 리스펙 한다)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회사에 지원을 했다.

지원을 한 이유는 분명했다.

불안했다.

'이러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지?'

'어쩌면 이 회사는 다를 수 있잖아'

'예전에 하던 직무 말고 다른 직무니까 괜찮지 않을까?'

'내 주변 사람들도 다 직장생활을 하는데, 나도 그만 튕기고 회사를 다닐까'

'지난 7개월 동안 해보고 싶은 거 해본 걸로 만족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작성한 노트에는 그때의 다짐의 견고함을 보여주듯 아주 분명하게 쓰여있었다.

'절대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지 말 것'

과거의 내가 스스로 당당히 쓴 문장이었다. 이걸 쓸 때의 나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인데,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왜 이렇게 쪼그라든 걸까

호주에서 태닝 한 언니들 따라 까맣게 태웠던 피부는 조금씩 밝아지더니 내 원래 피부색으로 거의 돌아왔다.

피부색처럼 내가 결심했던 그 다짐도 조금씩 옅어지고 있는줄 몰랐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자고, 뭘 먹어도 배가 아파 화장실을 계속 가야했고, 며칠 사이에 살도 빠졌다.

혹시 이건 내 몸이 무언가에 반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에도 그랬다.

호주출국을 2주 앞두고 막상 진짜 가려니 너무 두려웠다. 그 스트레스와 긴장은 고스란히 몸에 나타났는데, 이전에는 나본적 없던 증상이 나타났다. 얼굴 전체를 꽉 채울 만큼 빨갛게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이다. 다행히 일주일정도 그렇게 있다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지긴 했다. 그 때 알았다. 몸은 정직하다는 걸.


지금 이 일기를 쓰고 있는 노트북 옆에는

내가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구매한 책 2권이 옆에 놓여있다.

아직 건들지 않은 새 책이다.


2025년 1월 1일 날 세웠던 올해의 목표가 있다.

'자연스럽게 사는 것.'

기계적으로 어디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고, 나를 좀 풀어줘 보자.

내가 가진 진짜 내 모습대로 한번 살아보자. 연습해 보자.

호주에서 배운 자유로움을 한국에서도 실현하면서 살아보자. 이게 내 목표였다.


이제 난 또다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사실 난 답을 알고 있다. 단지 두려울 뿐이다.

얼마 전 본 영화 '틱틱붐'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 자신한테 이걸 물어봐. 널 움직이는 게 두려움이야, 사랑이야?


그 누구도 멱살캐리해줄 수 없다.

내가 결정해야 한다.




오늘의 칭찬일기.


1. 오늘은 그 무엇에도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수영을 다녀오고 나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아르바이트 가기 전까지 누워있었다. 잠을 자고 싶었지만 잠이 안 왔다. 그래서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니 몸이 너무 무거웠다. 허리도 아프고 종아리도 아팠다. 집까지 갈 힘도 없어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었다. 그리고 커피도 사 먹었다. 요즘 지출이 많아서 돈을 아끼고 있는데, 그냥 힘들어서 사 먹었다. 먹고 기운 내야지 하고 싶지도 않은 날이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둬야 하는 날인가 보다.

2.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곧바로 에어팟을 끼고 내가 듣고 싶었던 팟캐스트를 듣는다. 지난번 일기에도 언급한 적 있는 '최성운의 사고실험'이란 유튜브 채널을 즐겨 듣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회차는 런베뮤 디렉터 '료' 님의 편이다. 몇 번이나 돌려들어도 들을 때마다 인사이트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나에겐 소중한 회차다. 몇 번이나 들었음에도 신기하게 잠자고 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수면 위로 툭툭 떠올랐다. 나답게 산다는 건 모두에게 어렵다는 거구나. 그래서 다들 발버둥 치고 있구나.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기다움을 지켜내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지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인터뷰였던 그 영상을 오늘 또 꺼내 들은 거 참 잘했다.

3.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선 소파에 앉아 내가 유튜브에 저장해 뒀던 음악 공연 영상을 봤다. 시간이 어찌나 잘 흘러가던지. 영상에 나온 플레이리스트도 다 저장해 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꼬박 3시간이 흘렀다. 신나게 듣고 싶은 음악을 보고 들으니 스트레스가 풀렸다. 처음 발견한 음악인데 너무 내 취향일 때. 이런 경험이 참 소중한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요 며칠간 스트레스가 풀릴 만큼 즐거웠다. 방구석에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나다웠던 세 시간이었다.



하루동안 느낀 감정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은 날도 드물 것이다.


당분간은 날 그냥 내버려 둬야겠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지 말고, 숨 좀 쉬게 내버려 둬야겠다.


내일도 일어나서

오늘 들었던 음악 또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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