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비용 계산하기
요즘 진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좀 더 단단해 질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요즘 너무 흔들린다. 진로, 미래, 믿음까지.
답답한 마음에 또 책을 펼쳤다.
본 책은 C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의 마지막 챕터(실언)를 읽고 쓴 글이다.
이 챕터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기
일시적인 것들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전에는
영원한 것이 닿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제 안에서도 끝없이 되살아나는 유혹입니다.
p194
성경에서는 100년 남짓한 이 생 자체가 일시적이라고 말한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굵직한 주제 몇가지로 줄여볼 수 있을 것 같다.
진로, 결혼, 재정, 육아, 관계 정도 될 듯 하다. 개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하고 신중해야 할 영역이다.
이것이 바로 루이스가 말한 일시적인 것들이 아닐까? 저마다 인생에서 중요한 영역들이 안정권에 들어올 때까지 어떤 일을 하기를 미루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말이다.
루이스 자신도 이 유혹에 계속 노출되고 있다고 했다.
이 유혹은 원칙적으로 영원한 세계의 권리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라가려고 어느 정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최소한의 요구만 받아들이고 싶은 유혹입니다.
p195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의 요구가 무엇일까.
아마 주일날 두어시간 내서 예배에 출석하는 것 정도?
또는 교회 내에서 섬김이 활동을 하는 것 정도일 듯 하다.
신은 우리에게 최대치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 - 진로, 결혼, 재정, 육아, 관계- 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신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나 관심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의 모든 시간과 모든 관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P196
왜 신은 일주일에 하루, 2시간정도 내어 예배에서 얼굴도장 찍는 것으론 만족을 못하시는 걸까?
루이스는 말한다. 신은 우리의 시간을 원하는게 아니다.
그분은 ‘우리 자신’을 원한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느껴지는 게 있다.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보다, 신이 인간에게 다가오고 싶어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거다.
내 입장에서는 ‘하나님 이정도 했으면 됐지요? 저 이제 가볼게요!’ 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아니, 주일날 세금납부하듯이 제출하는 2시간이 아니라, 난 너 자체를 원한다!’ 고 하신다.
성경에서도 선악과를 따먹은 순간부터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다고 나와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나 같은 인간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로부터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매일 싸워야 할 적은 ‘우리 소유’의 것,
하나님도 손댈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대하여 권리 주장을 하십니다.
P197
그가 이토록 권리 주장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루이스는 말한다.
그분이 우리를 소유하시기 전에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없다고 말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각 사람에 대한 모든 권리를 주장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접근하지 못하는 ‘나만의 영역’이 곧 죽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모든 걸 드린다는 건 ‘올인’한다는 거다. 그래서 참 어렵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잘 계산해보고 올인하라고 말이다.
놀랍게도 이 주제에 대해 천국과 지옥은 한목소리를 냅니다.
유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심해. 이 좋은 결심, 이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할지 잘 생각하라고.”
그리고 그와 똑같이 우리 주님도 비용을 계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p198
이상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결심을 하면, 가난해질 것만 같다.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온 걸까. 하나님은 분명 아신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먹고 사는 문제는 기본중에 기본이 아닌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를 만든 신이 자기가 만든 인간을 굶게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셨다.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 도대체 당신의 자녀를 굶게 한다니.
그건 말도 안된다.
하나님을 가장 따르지 못하게 만드는 건 내 안에 있는 ‘불안함’이다.
왜 불안할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죄성이 내 안에 있음을 본다.
자기 주장의 태도는 매일 밤 새로운 껍질이 돋듯 다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p199
어제는 괜찮았다가 오늘은 또 싱숭생숭한 기분에 나의 믿음을 맡기다보면,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에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한다.
정말로 하나님을 따를 거라면, 정확하게 비용을 계산해보고 주님께 다 내어드리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 이 비용을 계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