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강연기록] How to make hard choice
인생에서 몇 번의 공백기가 있었다.
재수.
취준.
워홀.
겉으로 볼 땐, '준비기간'이었지만,
내적으로는 크고 중요한 선택과 씨름했던 시간이었다.
무슨 학과로 진학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고,
어떤 회사를 지원할지 선택해야 했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인생은 나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나는 매번 선택을 할 때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래서 졸업도, 취업도 늦어졌다.
신중하고 생각이 많은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시간을 잡아먹었다.
많은 시간이 걸려 고심해서 선택했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내 생각과 달랐다.
A라는 장점을 보고 선택했던 곳은
A의 장점은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B라는 장애물이 있었다.
직접 체험하기 전까진 모르니
우선 빨리 결정하고 행동으로 움직이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아니다.
TED 강의 중 미국의 철학자 Ruth Chang의 강연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제목은 How to make hard choices (어려운 선택을 하는 법)이다.
계몽주의를 경험한 우리는 과학적 사고가 우리 세상의 모든 중요한 것들을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의 세계는 과학의 세계와 다릅니다. 과학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실수로 계량될 수 있지만, 가치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계량이 안 됩니다. 우리는 is의 세계, 즉 길이와 무게의 세계가 ought의 세계, 즉 당위의 세계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는
늘 각 선택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리스트업 했다.
그러곤 리스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교해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정이 어려웠던 이유를 루스챙이 설명한다.
그건 바로 리스트업 한 항목이
‘가치’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치항목은 과학의 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숫자로 표현될 수 없다.
숫자로 표현될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그건 저울에 놓고 무게를 재듯 더 크다, 더 작다, 똑같다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가치' 라는 건 애초부터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루스 챙이 말한 is-ought개념은 얼마 전 읽은
C.S. 루이스의 ‘인간폐지’에서 접한 터라
더 몰입이 되었다.
직장 선택 문제에 내 나름대로 이 개념을 적용해 봤다.
A직장에는 abc라는 장점이 있고 a’b’c’ 단점이 있다.
각 장단점은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 → 가족 부양할 수 있음
‘정시 퇴근’ → 퇴근 후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높은 급여’ → 자녀들에게 넉넉한 양육환경 제공하기
‘하고 싶은 일’ → 자아실현 및 성장하기
그럼 여기에서 ought는 무엇일까?
ought란 당위의 세계다.
즉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A직장이 가진 장점, 단점은 당위가 될 수 없다.
당위의 세계는 내가 스스로 규정해야 하는 영역이다.
문제의 실마리가 조금 보이는 듯하다.
그동안 나는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저울에 올려두고
끊임없이 저울질을 했다.
무의미한 저울질의 결과는 처참했다.
아무리 신중하게 결정했다 해도
느낌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어떤 날은 A선택이 더 좋아 보이고,
또 다른 날은 B 선택이 더 합리적 이어 보였다.
그렇다면, ‘가치’가 개입된 선택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루스챙이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더 좋다, 더 나쁘다, 같다고 말하는 것을 뛰어넘는 네 번째 관계를 소개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선택에서 진행되는 것들을 설명하게 됩니다. 저는 이 선택들을 “동등하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택이 동등하다는 말은 여러분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루스챙은 결정의 기준점을 자기 안으로 가져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엇을 선택할지 스스로 규정하라는 말이다.
즉, ought의 세계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고, 그 답에 맞는 선택을 하라고 조언한다.
모든 선택지는 저마다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지 저울에 올리는 순간,
잘못된 길로 접어든다.
루스챙의 말처럼, 보다 거시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내리고,
그 답을 따를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선택을 만났을 때 어떠한 선택이 더 나은 것인가 찾아내려고
벽에 머리를 부딪힐 필요가 없습니다.
최고의 선택은 없어요.
지금까지 어려운 선택을 마주했을 때,
그동안 내가 접근한 방식은 애초부터 잘못된 방식이었다.
최대한 정교하게 공기(air)의 무게를 측정해서,
1g이라도 더 무거운 걸 선택해야지
저울에 올려 둘 수 없는 걸 저울에 올린 순간부터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이다.
'가치'를 저울에 올리는 순간 탈출구는 사라져버린다.
루스챙이 말한 '최고의 선택은 없다'는 말은 무슨뜻일까?
모든 선택에는 어려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건
다른 레벨의 문제인 듯하다.
용기가 필요한 영역이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최고의 선택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될까?
어려운 선택에서 규정하는 힘을 발휘하지 않는 사람들은 떠돌이가 됩니다.
떠돌이들은 세상이 그들의 이야기를 쓰도록 허락해 버립니다. 그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보상체계나, 두려움이나, 선택의 쉬운 정도들이 그들이 할 일을 결정하도록 해버립니다.
규정하는 힘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가 내린 답이다.
이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다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지금까지 나의 선택을 돌이켜봤을 때
내가 가진 ‘규정하는 힘’을 발휘한 적이 있는가?
나는 그동안 불가능한 저울질을 하느라 바빴다.
정성껏 저울질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게는 매일 달라졌다.
기분에 따라, 혹은 가족의 말 한마디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하루는 고사하고, 아침식사만 해도 마음이 바뀌었다.
이토록 무의미한 저울질을 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한 것 같다.
이런 나에게 루스챙은 다음의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그러면 어려운 선택의 교훈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열정을 다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려운 선택을 통해 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두 번째 산’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말이 기억난다.
이력서를 위해 살지 말고, 추도문을 위해 사십시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나에게 주어진 이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멀리 보는 게 필요하다.
마치 서핑할 때처럼 말이다.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고 일어서러면
시선을 저 멀리 두어야 한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봐야
넘어지지 않고 보드 위에 설 수 있다.
루스챙의 이 강연은
선택을 할 때마다 힘겨울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잘못된 접근을 고쳐주었다.
그동안 수 많은 선택 앞에서 내가 힘겨웠던 이유를
난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각 선택지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혹은
내 환경이 불리해서
혹은
내 스펙이 부족해서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규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언제나
수학처럼 문제를 풀려고 꺼내들었던
저울은 넣어두자.
대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조용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어려운 선택의 공간에서
우리는 독특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어려운 선택들이
저주가 아니라
신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Ruth C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