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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Mar 03. 2020

운이 좋은 아이


나는 가끔 한동네 사는 고향 후배를 만나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합니다. 언니 동생 하며 흉허물 없이 지내다 보니 고민도 털어놓고 기쁨도 나눕니다. 그 후배에게는 듬직한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잘 생기고 체격도 좋고 사춘기 아이 답지 않게 부모와 관계도 좋습니다.


그런데 후배에게 고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아들은 뭐가 잘 안되네, 초년 운이 안 좋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뭘 해도 잘 안 돼” 하더군요.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고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느라 학교 결석을 오래 했고 담임 복도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 야, 말도 마 그런 거라면 우리 애는 운이 더 없었어 ” 하며 험난했던 지난날을 풀어놓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나 입시에 성공한 내 딸을 부러워하는  후배에게 그런 말을 해봐야 공감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다만 나는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하잖아”하고 웃어넘겼습니다.       


운이라는 게 동양적인 관습이나 사상에서 기인한 듯하지만 서양사람도 점성술에 의지해서 운을 점치거나  서로 행운을 빌어주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좋은 운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큰딸이 “엄마 나는 참 운이 좋아!”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왜 그렇게 생각하니?” 하고 물었더니  “지금까지 무난하게 잘 살아왔잖아.” 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내 딸들이 입시에 성공한 비결을 물을 때면 "그냥 운이 좋았어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입니다. 


하버드에 합격할 정도면 공부도 잘하고 좋은 환경에서 실패를 모르고 어디서나 환영받으며 승승장구했을 것이라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가 캐나다에서 7년을 살다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눈에는 내 큰딸이 캐나다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을 부러워합니다. 영어를 쉽게 배운덕에 무엇을 해도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한국에 돌아와 어렵지 않게 명문 고등학교를 다닌 것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나도 딸아이가 운이 좋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후배 아들이 겪고 있는 불운은 대부분 이미 제 딸도 경험한 것 들입니다. 돌아보면 다른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험난한 경험을 여러 번 했고 불운을 피할 수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감기를 달고 살더니 두 돌이 체 안된 어느 날  백혈병 검사를 해보자는 의사 말에 눈앞에 캄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만큼 허약한 아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캐나다로 이민 가 낯선 환경에서 친구를 사귀는 게 수월치 않아 마음고생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엄마인 가 중병을 앓는 바람에 학교도 중단하고 한국에 와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을 때는 다니던 학교에 자리가 없어 몇 개월 동안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학교에 통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 몸보다 더 크고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통학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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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 가족은 캐나다에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과 1 학년 때였습니다. 캐나다의 익숙했던 모든 것과 헤어지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 텐데 한국에서 새롭게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큰애가 두세 살 되던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평균 6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하거나 학교를 옮겼더군요. 이유는 다양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의 결정을 말없이 따랐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나는 아이에게 기숙사형 국제중학교에 지원해보라고 했습니다.

 한국말이 어눌한 아이가 동네 일반 중학교에 가면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불합격을 하고 말았습니다. 국제 중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준비도 없이 지원하고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나중에야 그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스펙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았습니다.


결국 동네 중학교에 들어가 초등학교 과정의 공백을 메꾸느라 힘겨워했습니다. 친구를 새롭게 사귀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였습니다. 같은 반 아이 하나가 저희 아이를 만만하게 봤던지 종처럼 부리면서 괴롭힌 일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내가  아이의 행동이 수상한 것을 눈치채고  담임선생님과 상의 후 원만히 해결했습니다. 그때 내가 딸에게 툭하면 내뱉었던 말이 "물러 터지니까 만만하게 보고 그런 거잖아"였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아이 탓만 했던 겁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아이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싶어 하더군요.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아 고민하느라 지원서 제출 마감일이 돼서야 출마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학생회장 출마 지원서를 제출하러 교무실에 갔더니 마감이 지났다고 하더랍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전달받은 마감 날은 분명  그날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때 공지를 제때 전달하지 않은 담임선생님은 사과 대신  “ 공부하기도 힘든데 학생회장은 왜 하려고 하니? 라고 말했다더군요.


공지를 전달받아 제때 지원서를 제출 한 다른 반 아이 혼자 출마해 투표 없이 회장이 됐고 저희 아이는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단독 출마하게 하려고 선생님들끼리 계획적으로 일을 꾸몄다는 음모론이 학교에 돌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부끄러웠습니다.



생활기록부에 올릴 감투만 필요했던 전교회장은 학생회 실무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든 실무는 학생회 간부들이 도맡아 했습니다. 학생 인권 조례 행사 등 대외 활동에도 회장 대신 저희 아이가 참가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지원할 때도 담임선생님은 일관되게 나 몰라라 하시더군요.  특목고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왜 그 학교에 가려고 하느냐며  도와주지 않아 애를 태웠습니다. 결국 입시 정보와 지원 절차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는 일은 아이의 몫이었습니다. 서류 하나하나 준비하는 것도 아이 혼자 하다시피 했습니다. 나도 그때는 너무 바쁠 때였기에 아이를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생님도 바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오래 잊히지 않더군요.   


그뿐이 아닙니다.


저희 아이는 줄곳 해외 대학 진학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학비가 걱정이었죠. 그럴 때 해외 명문대학에 합격하면 학비 전액을 지원한다는 홍보문구가 매력적이었던 충남 소재 자사고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사학 재단인데 운영방식부터 학교에서 내세우는 교육 철학까지, 여러모로 꿈에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는 일종의 선 면접 제도를 시행 중이었습니다. 면접에서 1차로 지원자를 거르고 최종 서류 심사로 합격여부를 통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했던 자원봉사 활동내역과 아이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서류를 바리바리 싸들고 아이와 함께 그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입시담당 선생님은  수학 선행 학습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으며 지원조차 권하지 않았습니다. 불합격할게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절망했습니다.  스스로 수학 과목에 재능이 없는 것을 탓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네 잘못이 아니야, 아마 면접 본 선생님 눈에 엄마가 맘에 안 들었나 보다. 그 학교 학부모들이 요즘 학교를 상대로 모를 한다잖아. 네가 그 학교에 가면 내가  그 데모에 동참할 것처럼 보였나 봐." 하며  풀 죽어있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가 원어민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국제반 총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선생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그날 나는  근엄하신 선생님 앞에서 할 말 못 할 말 너무 많이 떠들어 댔습니다. 당시 그 학교는 학생 모집 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학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부모들 중에 항의 차원에서 행정 소송도 불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간혹 그 내용이 뉴스거리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선생님의 눈빛이 곱지 않았던걸 나중에서야 눈치챘습니다. 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나도 항의하는 학부모들에게 동조해서 소란을 피울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내가 눈치 없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게 회근이었습니다.  (만약, 어디서든 부모도 면접을 하는 상황이 생기면 단순히 형식적인 게 아닐 수도 있으니 부디 준비 잘하고 , 저처럼 푼수 없는 엄마 되지 마세요. 나는 그 후로 민폐 엄마 안되려고 정신 바짝 차라고 삽니다)


   



그뿐일까요. 돌아보면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순간도 었고 힘든 일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지난 과거가 돼버린 지금은 대부분 잊었거나 그때 그 불운 덕분에 지금의 행운이 찾아왔다며 웃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어릴 때 이곳 저것 이사 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먹은 덕에 지금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학교 폭력을 경험한 덕에 친구를 가려 사귈 줄도 알게 됐고, 여전히 마음이 여리지만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독한 척하는 기술도 습득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대처하는 법도 알게 됐습니다.


 학생회장이 제 할 일을 등한시 한 덕에 부회장이면서도 좋은 비교과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배운 것도 많습니다.


 저희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났던 담임선생님 덕에 어떤 일이든 자기 할 일은 직접 챙기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국제중학교에 불합격한 덕에 집 근처 중학교에서 한국식 공부를 원 없이 해볼 수 있었고, 특목고 진학의 꿈도 생겼습니다.  


한동안 국제중 불합격을 아쉬워했지만 어느 날 국제 중학교 불합격이 어쩌면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국제 중에 다니다 전학을 온 아이의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학교 분위기는 기대 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원조차 거절당했던 자사고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희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그 자사고가 해외대학 준비반 자체를 없애 버릴 정도로 쇠락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학교에 지원하지 말라고 말해준 입시 담당 선생님께 고마울 지경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난 게 행운입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우리 부부는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면서, 번 돈 보다 쓴 돈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 대학교 학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려면 재정지원이나 장학금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이가 능력 없는 부모 탓을 하거나 부잣집에 태어나 자기 실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누군가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가 " 필요한 만큼 재정 지원해주는 학교로 갈 거야.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같은 학교 가면 돼!”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내심 놀랐습니다. 기대보다 기원에 가까운 심정으로 아이의 고등학교생활을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무슨 오기로 덤볐는지, 아니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인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버드에 합격한 것입니다. 결핍이 가져다준 간절함 덕에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가난한 덕에 넌 하버드에 간 거야"  가끔 장난 삼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어릴 때 책을 좋아했습니다. 공부하기는 싫었지만 책은 재미있었습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책을 읽어 재낄 때, 나는 참새였고 동네 작은 서점은 방앗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사주풀이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나는 불운을 피해 갈 수 있는 초능력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예지몽 같은 것을 꾸지 못할까. 행운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운명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쉬워질까. ’ 하다못해 귀신이라도 나타나서 앞날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으니 작두 타고 내림굿이라도 하겠다고 설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그런 염원 덕에 재미 삼아 책장을 넘기다가 나중에는 그 분야 책을 두루 섭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한자로 된 책을 들여다보느라 한문 공부도 했습니다. 그 책에서 동양철학에 대한 설명을 읽고 연달아 '철학'이라는 제목이 달린 책 몇 권도 읽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활자 사이에서 헤매면서도 어렴풋이 인간사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은 없구나.’ 아이러니입니다만 운명을 가르쳐 준다는 책을 통해서 운명론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그때가 고작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무슨 대단한 통찰을 얻은 것은 아닐 테고 그저 ‘웃기고 있네.’하는 반항심이었을 겁니다. 그 나이 때는 뭘 조금만 알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깨달은 것 같은 자만이 생기고 모든 것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니까요. 그때 그 책을 읽은 것도 참 다행입니다. 늦은 나이에 사주풀이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어쩌면 나는 운명론을 믿고 그 세계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나는 그 후로 운을 점치기 위해서 ‘전문가’를 만나본적도 없고 요행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원치 않는 일을 당했을 때 ‘운이 없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가 그 원인을 모두 알 수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내 의지와 능력으로 바꿀 수 없는 원인과 결과를 만나면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요즘도 가끔 주변 사람들이 좋은 운을 타고 난 내 딸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이제 나는 운이 좋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몇 가지 원리만 터득하면 된다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첫째, 한두 번 불운이 닥쳤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 다음에는 크던 작던 행운이 찾아올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다만 불운이 계속된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무엇인가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언젠가 어느 맘 카페에서 자꾸 교통사고를 당하는 엄마가 하소연을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운이 없다며 장  탄식을 늘어놨더군요. 그런데 글을 읽은 많은 분들이 그건  운전미숙 탓이라며 다시 운전을 배우거나 위험하니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습니다.  너무도 명백한  상황을 본인만 파악하지 못하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습니다.      


만약 본인이나 가족에게 같은 불운이 계속된다면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살펴보세요. 뭐가 잘못됐는지 객관적인 조언을 들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아이의 학교생활과 관련된 일이라면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건강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 늦기 전에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안전사고와 관련된 일이라면 주변 환경을 점검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물론 세월호 사건처럼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무고한 사람이 불운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실수와 무지와 안일함을 점검하고 더불어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야 합니다. 공명정대하며 질서가 유지되는  투명한 사회에서는 '운'이 작동할 확률이 낮아집니다


둘째, 행운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심지어 복권에 당첨된 사람도 꾸준히 복권을 구입하는 노력을 했다더군요. 운이 나쁜 사람은 그만큼 많은 도전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늘 행운이 뒤따르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자주 불운을 대면하고 있을 겁니다.  


셋째, 주변에는 운명을  자기 뜻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운명을 관리하는 방법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입니다. 

https://brunch.co.kr/@jhj3211/149 


여전히 본인만 운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나요?  그렇다면 진짜 운이 없는 게 맞는지 확인해보세요. 큰 행운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작은 행운은 날마다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불운이 가져다준 행운을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오래전에 만났던 불운이 좋은 기회를 가져다줬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내가 딸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 아무도 죽기 전 까지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불운했는지 알 수 없다. 왜냐 하면 새옹지마는 누구에게나 적용되기 때문이다. 조심하고, 점검하고, 검토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때 그 불운이 얼마나 큰 행운을 가져다줬는지를 깨닫고  감사할 날이 올 것이다."


행운과 불운을 합산해보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이득이 남기도 하겠지만 죽을 때쯤 정산해봐야 결과 값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요즘  딸들이 불운을 피하지 못할까 봐 두렵기보다는 그 뒤에 따라오는 행운을 눈치 채지 못하거나 찾아온 행운에 만족하지 못할까 봐 걱정됩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 너는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그러니 감사하며 웃으면서 살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결정 적인 순간은 언제나 일상 속에 숨어 있다 하더라. ”  행운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불운을 타고 넘어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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