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에게 며칠 전 영상통화가 왔고, 몇 차례 수업 관련 근황을 전하는 문자가 오갔다. 수강과목 중 환경에 대한 과목이 있는데, 과제로 북한의 환경, 물관련하여 자료조사해서 리포트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 활동한 비정부기구 3곳의 인터뷰도해야 했고(의무), 서치하여(자료가 부족하여 고생한 거 같았다), 메일을 보내, ‘줌’으로 두곳의 인터뷰는 진행했고, 한 곳만 남았다고 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교양과목인 듯한데 투입해야 하는 시간 및 노력이 상당한 거 같다. 겨우 학부 1학년 생이고 전공과목도 아닌데, 스케일이 크다.
나는그 비정부기구들이 막내가 보낸 메일에 반응하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미 ‘줌 인터뷰’ 두 곳을 끝냈다는 말에, 학부 1년생의 메일에 기꺼이 응하는 그 비정부기구들에게 고마운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4년을 보내면 역량이 강화되고 성장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봄이 되니 훨씬 바빠졌다. 지난주 이번주 내내 촬영이 있다며 촬영한 광고작품을 보내주는데 영상과 음악이 근사하다.둘째는 자기가 만든 작품이 자식 같다고 말한다. 결혼도 안 한 녀석이 자식 같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아는 가 싶은 생각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그제는퇴근 후 직장동료 들과 한잔하고 있다며안부를 전한다. 둘째는 희한하게 술이 조금 들어가면 충청도사투리가 나온다. 내내 사투리 없는 광역시에서 나고 자랐는데 특이하다. 나와 외갓집 식구들이 만났을 때 쓰는 사투리를 쓰는 거 같다.
큰애는며칠 전 저녁을함께 먹을 수 있다며 잠깐 와서, 저녁먹고,벚꽃도볼 겸, 밤 나들이를 했다. 큰애 일상이야 늘 병원에서 이뤄지니 특별한 에피소드랄 게 없는데,병실에 들어가면 큰애가 담당하는 할머니 환자분들이 "우리 잘 생긴 의사 선생님 오셨네" 한다고 말한다.또회진 돌 때면 교수님들 앞에서 환자들이 큰애 칭찬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한다. 큰애는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인트를 알고 얘기하는 거 같다. 걱정할 내용은 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병원생활 잘하는거 같아다행이고감사할따름이다.
벚꽃아래서 큰애와 남편과 찍은 사진을 친정부모님을 비롯해 3대가 소통하는 카톡방에 올렸더니, 친정엄마가 반가워 카톡문자를 바로 올리셨다. 큰 애는 외할머니로부터 이모티콘과 함께 날아온 카톡 문자의 매끄러움에 놀라며 "할머니 카톡솜씨가 언제 이렇게 느셨대? 이모티콘 선물을 보내드려야겠네" 라며 핸드폰을 만진다.
지난주 일요일엔 시어머님 장어를 사드릴 겸 야외로 나들이를 나가 커피까지 마시고 왔다.어머니는 집에서 나갈 땐 거동이 불편해 귀찮아하시는데, 막상 바람 쐬시면 좋아하신다. 기억안나는 것들이 많아져 두려운 마음이 드시는지, 자꾸 반복해서 이것저것 물으신다. 나는 어머니가 '기억함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들'을 잊으셔도 놀라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기로 작심을 했기에, 편안하게 응대해 드린다. 자꾸 '당신 자신의 정보(사시는 아파트이름, 동, 호수, 나이 등등)'에 대해 물으시는데, 잘 기억안 나신다고 걱정하시다가도, 내가 웃으면서, 퀴즈처럼 자연스럽게 물으면, 정답을 딱!맞히신다.맞았다고 말씀드리면 환한웃음을 터뜨리신다. 뇌건강,몸건강을 위해서 주간보호센터에서 친구들과 수다 떠시고 걷는 운동 꾸준히 하시라고, 유치원 아이에게 말하듯 눈 맞추고 또박또박 강조해서 말씀드리니, 아이처럼 웃으시며 "그래야겠네" 하셨다.
어제는 여동생과 엄마아빠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엄마는 딸들을 만나면 늘 피부관리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신다.(딸들이 늙어가는 게 보이시나 보다.) 오늘은 피부를 늘어지지 않게 하는 당신만의 노하우를 얘기하시는데, 매번반복되는레퍼토리다 보니동생은 질색한다. 막내인 동생은 반응이 즉각적이고 직설적이다.
친정엄마는 지난주큰애가 보낸 이모티콘선물이 무척 기쁘셨는지,당신 동생들에게자랑하셨다며, ' 그렇게 상냥한 외손주가 어디 있냐'는 말을 들었다고 만면에 뿌듯한 미소가 가득하시다.
젊은 아들들이 활기 있게 살아가는 삶을 보고 듣다가, 저물어가는 노을 같은 부모님들을 바라보면무상한 마음도 들지만, 오늘 이 순간 기쁘고충만하면 될 일이다 싶다.
나는물리적으론 젊었음에도 저물어 가는 사람 같을 때가 있었다. 젊다는 느낌은 때론 나이와 상관없는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봄이찬란할수록 더욱 침잠하는 날이 많았던 때가있었고, 심지어는 꽃이 피고 지는지, 계절의 변화를 전혀 체감하지 못할 만큼 육아에 극도로 지친 몇 년의 세월도 있었다. 어느 해 어느 날인가,꽃과 나무가 문득 눈에 들어왔는데, 왠지 모를슬픔이 차올라,주저앉아 펑펑울었던 날이 있었다. 또 어느 날 밤,흘러나오는 노래에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버린날도 있었다. 어느덧 청춘이 스러져버린걸 알아차린 후의 서러움과 깊은허무함이었을까.
이젠 그런 서러운 마음이 없다.대체로 평안하고평화롭다. 내 안의 평정을 유지하는 조절장치를 손 볼 줄 아는 기술을 좀 익힌 거 같다.